18개월간의 짧고도 긴 여정이 끝이 났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3월 31일부로 EC팀장(리더)로서 근무하던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갈증을 느껴왔던 일본 회사에 대한 궁금증과 저 스스로의 역량과 방향성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2013년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6번의 퇴직이니, 반년 남짓 근무 후 퇴사한 곳을 제외 하면 한 회사당 평균 2년 정도의 기간 근무를 한 셈이 됩니다.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짧은 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이직과 전직 회수만큼이나 생각의 깊이를 더해간 시간이었다고 봅니다. 특히나 6곳의 조직을 경험하다보니 각 회사마다의 장・단점에 대한 저만의 판단 기준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회사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보았다면 이제는 좋았던 점, 그리고 나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 또한 발견할 수 있게도 되었죠.

6번째 회사 면접날(좌). 퇴사를 얼마 앞둔 날(우)
6번째 회사 면접날(좌). 퇴사를 얼마 앞둔 날(우) 늙어버렸다…

그렇다면 이번 6번째 회사는 저에게 어떠한 곳이였는지 풀어 볼까 합니다. (실제로 이 내용은 퇴사일 인사팀에게도 전달했던 것들이기도 합니다.)

#장점①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 (상품군)

이번 6번째 회사의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어느 업계에서나 핫 한 IP(intellectual property)를 잘 활용했다는 것이죠. 중고가 브랜드의 라이센스를 활용한 핸드폰 케이스가 메인이었는데 제품 1개당 1만엔(십만원)대 이상으로 저렴하지 않은 가격임에도 꾸준히 팔려나갔습니다.

특별한 광고나 마케팅 활동 없이도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매월 수천, 수억 이상의 매출이 나오고 있으니 재고만 있다면 알아서 팔려줍니다(!) 물론 매년마다 각 브랜드 정책에 따른 디자인 제작이나 제조공장 컨트롤 등 어려운 부분들도 있습니다만, 인지도 (고정 팬)가 이미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매출은 보장 된 다는 것이었죠.

다만, 이런 구조를 만들기까지 회사의 경영진들은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갔을 것은 분명합니다. 라이센서(Licensor)의 요구에 맞는 매출계획이나 상품기획을 해야하고 그들의 승인이 없이는 마음대로 판로를 정하지도 못하죠. 또한 최악의 경우 계약이 해지 될 수 있는 리스크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성공 사례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면서 라이센스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고 저는 그 최종전선에서 매출을 만드는데 일조를 할 수 있었던 것에 큰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장점② 퇴근, 휴가는 자율적으로!

복리후생과 관련해서 사실 가장 현실적인 것은 바로 퇴근 시간과 휴가에 대한 보장일 것입니다. 적어도 이 회사는 이 두가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터치가 없었습니다. 퇴근도 업무종료시간인 18:30에 칼 같이 하면 됩니다.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 없고 필요하면 잔업신청을 해서 수당을 받으면 되었습니다. 휴가도 마찬가지로, 특별히 팀 업무에 지장이 안가는 선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경험했던 직장들에서는 휴가도 그렇지만 특히 퇴근에 대해서 상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습니다. 정시 퇴근 자체가 어렵기도 했거니와 상사도 퇴근하지 않았는데 후배가 먼저 퇴근 하는 것에 대해서 암묵적으로 비난을 받는 분위기였기 때문이었죠. 그런면에서 퇴근과 휴가가 자유로웠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걸 왜 아직도 안하는 회사가 많은지…?)

회사의 직원 모집 공고에도 등장했던 나 ㅎㅎㅎ. 일본 리쿠루토 마이나비 모바일 화면
회사의 직원 모집 공고에도 등장 했었던 나 ㅎㅎㅎ

#장점③ 내부에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는 외부의 힘을 빌린다!

어느 회사든 모든 부분에 전문인 것은 아닙니다. 강한 부분이 있다면 약한 부분도 있겠죠. 예를 들어 제가 속해 있던 EC팀의 경우 기본기는 있었지만 전문적인 스킬, 관리능력, 플랫폼, 광고 운영에 대한 지견(知見)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에서는 외부 전문가 집단에 컨설팅이나 외주를 맡기는 일에 주저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비용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부 리소스에 의존해서 해결하는 것 보다 (최소한) 속도면에서라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죠.

저도 외부업체와 일을 하면서 사이트 구축, 플랫폼 이벤트 대응, 최신 트렌드, 일 하는 방식 등 제가 그동안 갖지 못했거나 또는 내부에서 볼 수 없었던 부분들을 직간접 체험을 할 수 있었고 그것 또한 저의 새로운 자산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부에서 해결하려고하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해결 되지 않는 문제를 끌어안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직원의 스트레스는 말도 못할 것입니다.

#단점① 성과를 달성해도 급여가 안오른다?

이번 회사에서 가장 서운 했던 (?)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직이나 전직을 하면서 몸 값을 올리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번 회사 이직으로 오히려 연봉이 줄어들었습니다.. 다만 성과 달성 하면 급여를 올릴 수 있고 6개월에 한번씩 인사고과 평가를 하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 연봉도 입사 이후에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고 거기에 응했습니다…..만, 저의 실수였습니다.

초기 KPI 목표를 달성하였고 6개월 후 평가에서 팀 리더급으로 승격을 하긴 했는데… 왜인지 급여는 플러스마이너스 제로(0)였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일전에 있었던 기타 수당(?)이 없어지고 대신 기본급과 직급수당만 올라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기본급이 올라갔기 때문에 상여급도 이전보다 높은 금액을 받을 수 있었기에 특별히 문제 삼지는 않았었습니다만, 결국 재직 기간 내내 급여합계는 단 돈 1엔도 오르지 않는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밤 늦은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는 회사 입주 층 . 유락초 밤거리
밤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는 회사 입주 건물.

#단점② 현실과 괴리가 큰 KPI

지난번 포스팅 [KPI란 무엇인가? KPI 활용사례와 장단점]에서도 다루었습니다만, 현실과 괴리가 큰 KPI는 직원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결국 회사에게 마이너스를 안겨다 줄 뿐입니다. 제가 초기 KPI를 120%대로 달성한 것이 원인 중 하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두번째 반기 KPI 중 매출목표가 전기 대비 200% 넘는 수준으로 형성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잘 팔리고 있는 플랫폼은 퇴출 수순으로 가고 가장 잘 안 팔리는 자사몰을 가장 팔리는 채널로 육성시키라는 미션도 있었죠.

그러나 먼저 획기적으로 매출을 증가시킬 만한 상품, 마케팅이 없는 한 매출을 두배로 늘린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동일한 조건에서 낼 수 있는 매출 최대치가 100인데 200으로 만들라고 한들 (노력은 하겠지만)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애플도 출하대수를 줄이고 있는 판인데 핸드폰 케이스만 유독 매출을 성장시킨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급작스럽게 높아진 매출목표 탓에 두번째 반기 KPI는 간신히 80% 후반대로 마무리 짓게 되었고 상여급도 이에 준하는 수준으로 차감되어 받게 됩니다. 단점①에서는 그나마 상여라도 더 들어오니 참을만 하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아니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단점③ 권한제로. 복잡한 승인체계

팀 리더로서 1년을 근무했습니다만 특별히 저에게 주어진 권한은 없었습니다. 팀 멤버들의 잔업이나 휴가승인을 해주는 정도가 전부였죠.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전부 품의서(링기쇼:稟議書)에 의해 최소 3step 이상의 결재권자 동의를 받아야만 진행 할 수 있었습니다.

SNS 촬영에 필요한 샘플을 구매하기 위해서도 단 돈 1원이 들지언 정 이러한 과정, 보고서 작성이 필요했고 그 이후에도 사내 업무공유 채널에 다시 내용을 보고하지 않으면 구매는 불가능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승인에 걸리는 시간이라도 짧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1Step 당 적게는 수일, 길게는 1~2주 이상이 소요되다 보니 품의서 작성에 지치고 승인결과 기다리는데 지치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직원들이 되도록이면 품의서가 필요 없는 방법을 선택하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서 특별히 새로운 액션을 취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직 전체 인원이 40명대로 그리 크지 않음에도 내부에서 취하고 있는 프로세스는 대기업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했습니다. 좀 더 유연하고 스피디한 방향으로 프로세스를 정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느 회사든 최고는 없다. 그건 나도 만들지 못한다.

이렇게 적는 동안 지난 18개월간의 회사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특히나 마지막날까지 함께 했던 팀 멤버들의 얼굴이 선하군요 ㅎㅎㅎ 어찌 되었건 어느 회사든 내 마음에 100% 맞는 회사는 없다는 점은 이번의 경우도 절실히 느꼈습니다.

점심시간경 히비야 미드타운 1층내 자유 스페이스에서 일 하는 사람들
점심시간경 히비야 미드타운 1층내 자유 스페이스에서 일 하는 사람들

만약에 내가 (회사를 경영)한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텐데… 라는 부분이 많이 있고 물론 앞으로 그러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퇴사를 결심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꾸어 이야기 하자면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만스러운 부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어느 회사든 (구글이건 애플이건 삼성이건) 내 마음에 드는 최고의 회사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이직이나 전직을 생각하시는 분들도 앞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회사의 좋은 점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고,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단점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미리 생각을 해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파라노이드(비관적) 낙관주의] 적 사고가 그것이죠!

6번째 회사를 비롯해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좋은 점은 받아들이고 나쁜 점은 개선한 회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앞으로 저의 미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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