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내외 백일장에서 이따금 상도 받았다. 대학 문예창작학과 문을 두드려보기도 했다. 군 복무시절 병영문학상에 입선했다. 대학생때 블로그 세계에 입문했다. 단순 계산으로 글쓰기 경력 20년 이상 베테랑이다.

글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핑계로 쓰고 싶은데로 썼다. 블로그는 여기에 최적화 된 툴이다. 온라인 마케팅이 업(業)이 되니 구글, 네이버 같은 검색엔진에 검색 되는 키워드에만 집중했다. ‘쓰고 싶은데로 쓰기 + 키워드’라는 어색한 조합이 체화 되었다. 상의는 후드티, 하의는 정장 바지, 신발은 슬리퍼인 우스꽝스러운 모습. 그동안 나의 글쓰기 모습이었다.


모든 장르에 통하는 강력한 글쓰기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다. 2022년, 개그맨 고명환이 2022년 펴낸 책이다. 유튜브에서 인터뷰 하는 모습을 봤는데 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 후 책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 지금은 연매출 10억을 올리는 식당도 운영하고 있고 책도 쓰고 강연도 한다. 책에서도 강력한 내공이 느껴진다.

“나도 내공 있는 글을 쓰고 싶다!”

YES24 검색창에 ‘글쓰기’ 키워드를 입력했다. 7,600건에 달하는 검색결과. 어떤 책을 고를까 마우스 휠을 내리던 중 1페이지 6번째에 있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기자의 글쓰기. ‘기자’는 글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아니던가. 저자는 박종인 기자. 기자는 어떻게 글을 쓰는지 궁금하다.

기자의 글쓰기 표지
기자의 글쓰기 표지

책 제목 밑에는 ‘모든 장르에 통하는 강력한 글쓰기’라고 당당히 적혀 있다. 이를 뒷받침 하는 팩트로 ’31년 기자 경력’, ’12권 베스트셀러가 보장’이라는 마케팅 문구가 들어가 있다. 책소개와 목차를 살펴 본 후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음날 책이 도착했다. 책은 실제로 펼쳐봐야 그 맛을 안다. 서문부터 ‘개정판에 부치는 건방진 서문’이다. 본판 서문은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데 이마저도 ‘악마도 감동하는 글쓰기’다. 소위 ‘후킹’을 제대로 시전했다. 헤드라인을 맛깔나게 뽑았다.

글은 [1장. 글에 관한 세가지 이야기]에서 [10장. 너라면 읽겠냐?: 퇴고]까지 총 10장 343페이지 구성이다. 정말 모든 장르에 통하는 글쓰기가 담겨 있을까?


글쓰기 상식 뒤집기


글쓰기를 각 잡고 공부해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블로그 글쓰기 관련 책이나 강의들을 보기는 했지만 검색유입을 늘리기 위한 스킬이다. 나는 보통 이상 글을 쓴다는 출처 모를 자부심에 습관처럼 글을 썼다. 그러다가 서문에서부터 종아리를 쎄게 맞았다.

「어이, 박종인씨, 당신 글에서 ‘의’자와 ‘것’자를 좀 빼보지?」

일본에 10년을 살면서 일본어 영향을 많이 받아 ‘의’나 ‘것’을 문장에 달고 살았다. 저자도 다른 이유에서 의심 없이 이를 썼을 것이다. 선배기자 지시에, 고작 5분정도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6시간 25분이나 걸렸단다. 의자와 자자를 빼야 하는 이유는 ‘리듬감’ 때문이다.

기자의 글쓰기 서문 한구절. '의'자와 '것'자
기자의 글쓰기 서문 한구절. ‘의’자와 ‘것’자

말은 입으로 전해진다. 글은 말소리를 문자로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소리내어 읽어도 막힘없이 읽혀야한다. 그런데 위 두 자는 흐름을 방해한다. 읽어보니 알겠다. 문맥상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삼가는 것이 백번 천번 낫다.

그리고 또 하나. 저자가 시종일관 주장하는 바가 있다. ‘글은 상품이다.’는 점이다. 독자가 읽고 만족하지 않으면 그 글은 ‘잘못된 글’이라고 일침을 날린다. 이러저러한 감흥을 주지 않는 글은 상품성이 없는 글이라고 평가한다. 문득 내 글들을 살펴보았다. 이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 올렸던 글 들 중 대부분은 조회수, 공감수도 얻지 못했고 문장이 어렵다. 잘못된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기자의 글쓰기 본문 한구절. 상품성이 없는 글
기자의 글쓰기 본문 한구절. 상품성이 없는 글

따라서 상품성 있는,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제조과정’을 거쳐야 하고 ‘재미있게’ 써야한다. 리듬과 팩트가 있는 기승전결 구조를 가진 글이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퇴고’ 과정을 거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글쓰기 상식이 바뀌고 기자의 글쓰기 패치가 된다.


글쓰기가 정말 나아질까


이 책은 저자의 경험과 주장만 담지 않았다. 박종인 기자가 운영한 글쓰기 교실 참가자들 초고와 완고도 실려있다. 왜 수정 했고 무엇이 좋았고 부족했는지 분석도 담겨있다.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다. 주제도 수필, 에세이 등 다양하다.

초고라고는 하지만 이미 기자의 글쓰기 수업을 받은 덕인지 초고임에도 글쓰기 내공이 장난이 아니다. ‘2015년 설날 아침의 독백’, ‘빛깔 좋은 밤’, 바퀴벌레의 복수’ 등 제목부터 압권인 글들이 많다.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다.

“이게 정말 초고라고?!”

초고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짜임 있고 읽기 쉬운 글들이다. 소재도 기발하고 스토리를 풀어가는 문체이며 단어 선택, 묘사들까지 기가 막힌다.

「제사가 중국에서 온 풍습이가? 중국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나? 과거에 그렇게 했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하나? 옆집 귀신은 자손 덕분에 온양온천에, 용평스키장에, 괌에도 두루두루 다녀오셨다는데 우리 집 귀신들께서는…(이하 중략)」

예시 중 가장 재밌게 읽은 ‘2015년 설날 아침의 독백’ 후반부 내용이다. 글 쓰신 분은 60대 이상 된 것 같다. 제사 문화에 대한 회의감을 담았다. 초고를 읽으며 껄껄껄 웃었고 완고를 읽으며 ‘그래, 진짜 제사는 이런거지!’라고 큰 공감을 했다. 여기에 박종인식 노하우가 첨가되면서 보급형에서 고급형 상품으로 진화했다. 세상에는 글쓰기 고수가 정말 많다.

기자의 글쓰기 예시문 초고
기자의 글쓰기 예시문 초고
기자의 글쓰기 예시문 분석
기자의 글쓰기 예시문 분석

총평과 목차


Ai시대가 되면서 글쓰기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챗GPT도 마찬가지다. 프롬프트에 명령을 입력할때 Ai조차 알아 듣고 이해하기 쉽도록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기자의 글쓰기는 ‘모든 장르’에 통하는 글쓰기가 맞다!

책을 구매하고 나서 한번 주욱 읽고 2회독때는 초고와 완고를 담은 예시문을 먼저 읽고 다시 이론부를 읽었다. 초고가 완고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페이지를 오가며 봤다. 미세한 변화지만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아졌다. 어떤 스승을 만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기자의 글쓰기 본문 한구절. 글 제조 과정
기자의 글쓰기 본문 한구절. 글 제조 과정

아쉬운점도 있다. 책이나 글을 읽어보면 글쓴이들마다 색깔이 있다.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초고와 완고 여러편을 읽다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박종인식’향기었다. 사실 모든 예문 저자는 박종인이었다고 해도 믿겠다. 말 잘 듣지 않는 학생 글도 한, 두개쯤 들어가 있었다면 한방 훅 치는 책이 되었을지도.

[도서명] 기자의 글쓰기 : 모든 장르에 통하는 강력한 글쓰기 전략 (2023)
[저자, 출판사] 박종인 와이즈맵,
[크기] 148*218mm 쪽수 344쪽

목차 살펴보기
  • 개정판에 부치는 건방진 서문
  • 서문_악마도 감동하는 글쓰기
  • 1장. 글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쉬움 | 짧음 | 팩트
  • 2장. 준비: 글보따리 챙기기
    메모와 아카이빙 도구들
  • 3장. 글쓰기 기본 원칙
    글은 상품이다 | 글을 쓸 때 지켜야 할 원칙들 | 좋은 글이 가지는 일곱 가지 특징
  • 4장. 글 디자인에서 생산까지
    글 제조 과정 | 장르별 특성과 차이점 | 두괄식과 미괄식 그리고 제목 | 장르별 예문1_여행 에세이 | 장르별 예문2_역사 평론 | 장르별 예문3_인물 에세이
  • 5장. 리듬 있는 문장과 구성
    리듬 있는 문장 쓰기 | 한국말의 특성: 외형률과 리듬 | 구성도 리듬 있게 | 또 ‘팩트’ 이야기: 주장이 아니라 팩트를 쓴다 | 글을 쓰기 위한 읽기-낭독
    리듬감과 팩트를 보충한 글들의 전과 후 | 예시문 1 | 예시문 2
  • 6장. 재미있는 글 쓰기1: 리듬
    고수는 흉내 내지 않는다: 삐딱한 관점 |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 쉬운 글 | 글의 구성요소-내용과 형식 | 글은 이야기다
    리듬감과 팩트를 보충한 글들의 전과 후 | 예시문 3 | 예시문 4 | 예시문 5
  • 7장. 재미있는 글 쓰기2: 기승전결
    왜 ‘서론-본론-결론’이 아닌가 | 기승전결이란? | 기승전결 구성에서 유의할 세 가지
  • 8장. 재미있는 글 쓰기3: 원숭이 똥구멍에서 백두산까지
    팩트를 스토리로 둔갑시키는 방법
    리듬감과 팩트를 보충한 글들의 전과 후 | 예시문 6 | 예시문 7
  • 9장. 관문: 마지막 문장
    여운은 문을 닫아버려야 나온다 | 식스센스의 반전 | 글 문을 제대로 닫는 방법: 마지막 문장 다스리기
    리듬감과 팩트를 보충한 글들의 전과 후 | 예시문 8 | 예시문 9 | 예시문 10 | 예시문 11
    분석과 총평이 필요 없는 글들
  • 10장. 너라면 읽겠냐?: 퇴고
    글을 고치는 다섯 가지 기준
    품격 있는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