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참 잘 간다. 벌써 4일 차다. 그래서 여행은 적어도 4박 5일 이상은 해야 한다. 익숙한 곳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근처 세븐일레븐에서 커피를 사 왔다. 회사 출근 전에 꼭 세븐 커피를 사서 들어갔었는데. 일본 편의점 커피 중 가장 진하고 내 입맛에도 맞다.
히로시마 츠케멘 맛집 마루토치비

에어비엔비 숙소에서 오전업무를 마무리하고 점심을 먹으러 이케부쿠로(池袋)에 왔다. 복잡한 신주쿠와 시부야를 피해 이곳에서 약속을 잡고는 했었다. 세이부 백화점이 공사 중인걸 제외하면 1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오늘 이케부쿠로를 찾은 것은 일본에 살면서도 한 번도 못 가봤던 곳에 가기 위해서다. 간판이 달려 있지 않아서 몇 번이나 주변을 헤매였다. 영업 중(商い中)이라는 팻말을 보고 이곳임을 직감했다.

다름 아닌 히로시마풍 츠케멘 전문점이다. 다행히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니 이곳이 맞다. 매콤함이 매력 있는 츠케멘으로 와이프가 대학 교환학생 시절 히로미사에서 맛본 이후로는 잊지 못한다는 그 맛!

이곳 이름은 히로시마츠케멘 ‘마루’ 토 ‘치비’ (마루와 치비). 점포명에 고양이 이름으로 추정되는 마루와 치비를 넣었다. 주인아저씨가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것 같다. 간판견(犬), 간판묘(猫)라고 가게 마스코트를 동물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은 후자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로 딱 3시간이다. 그래서 항상 시간을 못 맞추었는데 다행히 자리도 여유 있었다. 우리는 매장 안쪽 테이블석으로 안내받았다. 검은색 일회용 앞치마가 올려져 있다.

자리에 앉으니 마스터(주인장)가 와서 오더 시트를 건넸다. 메뉴는 히로시마 츠케멘과 마제소바(일본식 비빔면) 두 가지. 토핑에서부터 매운맛 레벨, 뺄 야채, 추가 토핑 등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맵기 10배(中辛)에 도전!

주문 후 10분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드디어 영접한 히로시마 츠케멘! 자주 갔던 오쿠보(大久保) 히로시마 츠케멘 가게와 비주얼은 비슷하다. 보기만 해도 시뻘건 국물에 데쳐 나온 면과 차슈, 야채들.

이 국물이 히로시마 츠케멘의 맛을 좌우한다. 매콤 새콤한 특제소스에 깨가 인정사정없이 부어져 있다. 국물을 한번 먹어보면 깨가 들어간 이유를 알 수 있다. 깨가 있기에 매운맛이 중화된다.

면은 탱글탱글 잘 삶아졌다. 거기야 삶은 양배추, 차슈, 파채가 올려져 있다. 삶은 계란도 히로시마 츠케멘과 잘 어울린다. 토핑으로 추가하는 것도 추천!

이제 면과 야채를 함께 집어 소스에 한껏 적셔보자. 한번 담갔다 뺐을 뿐인데 면과 야채가 금세 붉게 물들었다. 씹자마자 입안에 매콤 새콤함과 고소함이 함께 팡팡 터진다. 가히 중독성 강한 맛이다.

면 따로, 야채 따로, 그리고 차슈 따로 찍어 먹어도 맛있다. 한두, 세입 먹다 보면 금세 혀가 얼얼해지기 시작한다. 맵부심이 있던 때는 맵기(辛さ)를 맥스로 선택한 적이 있었는데 정신이 몽롱해진 이유로는 무조건 중간맛을 선택한다.

중간맛도 꽤 맵다. 하지만 특유의 중독성에 젓가락을 멈추지 못한다. 결국 넙직한 접시 위에 올려져 있던 모든 건더기는 다 먹었다. (레몬만 빼고.)

히로시마 츠케멘 국물도 절반 이상을 먹었다. 마음 같아서는 남은 국물을 싸가서 더 먹고 싶을 정도. 남기기 아깝지만 이것까지 다 먹었다가는 분명 속에서 불이 날거야.
일본에 살면서도 못 풀었던 한을 오늘에서야 풀고 간다.
📍히로시마츠케멘 마루토치비 広島つけ麺 まるとちび
주소: 東京都豊島区西池袋3丁目26−6 (*주소 클릭하면 지도 이동)
영업시간: 오전 11시 – 오후 2시 (화, 수 휴무)
코멘트: 영업시간이 짧고 매장도 좁아 가능하면 오픈런하는 것이 좋다. 매콤 새콤한 히로시마 츠케멘의 진수를 볼 수 있다. 맵부심 부리다가 혼쭐난다.(★★★★★)
일본 서점 구경하기
놀랜 속을 진정시키며 다시 JR야마노테선을 타고 다카다노바바로 왔다. 세이부선으로 갈아타기 전 오랜만에 역 건너편에 있는 서점에 들렀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근처에 서점이 없어 큰맘 먹고 가야 하는데 도쿄에는 곳곳에 중대형 서점이 많이 있다. 이곳은 호린도, 돈키호테 건물 3~4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약속 기다릴 때도 자주 들렀었다.

일본서점에서는 만화, 소설은 물론 다양한 논픽션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부적절’이란 게 뭐였지? ’라는 재미난 제목과 일러스트 표지가 눈에 띈다. AI 문학자, 쟈니스 문제와 옥음방송 등 일본 내 사회적 이슈를 풀어쓴 책인 것 같다.

또 다른 책은 ‘마누라보다 오래 살게 되어서…’. 돈은 없지만 여유가 있고 노인 혼자 쾌적하게 살고 있어요라고 재미있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별 후 살아가는 노년 남성의 스토리가 담긴 듯하다.

경제 관련 코너를 보다 보니 여기에도 호기심 가는 책이 있었다. ’ 현역 87세 트레이더, 시게루 씨의 가르침’이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아직도 차트를 보며 주식 트레이딩을 하다니, 정말 대단해!
이렇게 재밌어 보이는 책들이 많다 보니 서점은 항상 나의 놀이터였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달에도 여러 권 책을 사고는 했다. 일본어로 읽다가 막히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호린도 다카다노바바점 (芳林堂書店 高田馬場店)
주소: 東京都新宿区高田馬場1丁目26−5 3・4F Fi빌딩 (*주소 클릭하면 지도 이동)
영업시간: 오전 10시 – 오후 9시
마을 온천 오후로노 오사마

열심히 서점을 둘러본 후 다시 세이부선에 올라탔다. 바로 숙소로 들어가지 않고 오랜만에 온천에 가기로 했다. 세이부 신주쿠선을 타고 하나코가네이(花小金井)역에서 내리면 된다. 전에 살던 곳과는 두정가장 차이여서 한 달에 한 번씩 가고는 했다.

하나코가네이역에서 내려서 온천으로 가는 길목은 양 옆으로 나무가 우거져 있고 길 포장도 잘 되어 있어 조깅, 산책,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주변도 조용해서 이 동네로 이사 오고 싶었다.

역에서부터 대략 10여분 걸었을까 거리 끝에 익숙한 모습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주택가에 온천이 있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일본 사는 매력 중 하나였다.


드디어 도착한 오늘의 목적지, 오후로노 오사마(お風呂の王様). 한국말로 하자면 ‘목욕의 왕’쯤. 건물 밖에서부터 온천 특유의 냄새가 난다. 벌써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다.
※실내 사진 촬영이 제한되어 이하 공식 홈페이지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이곳은 실내외 온천과 암반욕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암반욕(찜질방 비슷)은 추가요금 800엔을 내야 해서 보통은 온천만 하고 간다. 요금은 평일 1,050엔 주말 1,300엔. 온천은 실내는 물론 노천도 있다. 나는 노천파!

특히 노천탕 중에서도 항아리탕(사진상 5번)을 가장 좋아한다. 뜨끈한 온천수가 가득한 통 안에 들어가 다리를 올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 그러면서 사색에 잠기고는 했다.

그러고 나서는 노천탕 안쪽에 있는 킹스 사우나를 꼭 했다. 습식 사우나인데 사우나 입구에 소금 항아리가 있다. 소금을 온몸에 바르고 자리에 앉아 땀을 쭈욱 뺀다.
5~10분 이내로 사우나를 하고 나와서 자연바람으로 몸을 식히고, 다시 항아리탕으로. 이런 식으로 한 시간을 반복했다.

오랜만에 온천을 해서 기분이 좋아진 우리. 이곳에는 실내 레스토랑도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땀도 뺐으니 수분도 보충하고 허기도 달래자.

타꼬 카라아게(タコ唐揚げ. 문어튀김)에 시원한 생맥주 한잔! 이 맛에 온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땀까지 빼서 맥주가 벌컥벌컥 잘 넘어간다. 이런걸 꿀맛이라고 하는거지.
📍오후로노 오사마 하나코가네이점 (おふろの王様 花小金井店)
주소: 東京都小平市花小金井南町3丁目9−10 (*주소 클릭하면 지도 이동)
영업시간: 오전 9시 – 심야 0시
코멘트: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형급 온천. 여러 온천을 다녀봤지만 이곳이 가장 편하고 퀄리티 있는 온천을 즐기기 좋은 곳인 것 같다. 시간이 된다면 암반욕도 해보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