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코로나19 발생 후 발생한 마스크 대란과 사재기 속에서 드러난 일본 사회의 민낯, 그리고 이어진 ‘한국산 핸드젤’ 불신 사태 속 일본 소비자와의 전쟁을 담았습니다.
코로나19가 바꿔 버린 일본 일상
2020년 2월,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로 뒤덮었다. 일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약간의 감기증상만으로도 마스크 쓰는 게 자연스러운 일본. 그런데 마스크가 ‘의무’가 되어 버렸다.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마스크는 필수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도시, 도쿄는 무거운 발소리와 거칠어진 숨소리로 가득 찼다.
코로나 공포는 생활 전반에 스며들었다. 당장에 마스크 대란이 시작되었다. 100장에 1천엔(1만원)대 하던 1회용 마스크가 삽시간에 5천엔대를 넘어섰다. 온라인에서는 계속 프리미엄이 붙었고 오프라인에는 재고가 바닥났다. 마스크 재고가 있다는 소문이 난 드럭스토어 앞에는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루었다.
마스크 품귀현상은 일본 전역을 공포로 물들였다. 마스크를 구할 수 없게 되자 1회용 마스크에 거즈를 덧대어 사용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거즈마저 고가에 팔리기 시작했고 이런 현상은 생활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가장 절정에 다다른 것은 도시 봉쇄, 즉 록다운이 시행되는 순간이었다.

하늘길은 둘째치고 지역 간 이동도 불가능해졌다. 도쿄 사람은 도쿄, 오사카 사람은 오사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통행이 제한되었다. 이는 곧, 전국 유통망에도 영향을 미쳤다. 생필품은 물론 식료품 수급도 원활히 이루어질 수 없었다. 모든 마트며 편의점 매대는 대부분 텅텅 비었다.
‘예의 바른’,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문화를 공유한다고 믿었던 일본. 코로나는 이 모든 것을 단번에 깨버렸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재기를 해댔다. 쌀부터 시작해서 물, 음료, 과자, 통조림 할 것 없이 모조리 다 털어갔다. 돈 주고 하는 약탈이었다. 그나마 ‘신라면’ 하나 건졌다. 한국인으로서는 참 감사한 순간이었다.
한편, 이 현상을 두고 모 한국 매체에서는 한국식품 차별론을 꺼내 들었다. 거기에 동조하는 댓글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신라면이 한국인에게야 소울푸드겠지만 일본 사람들(외국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끓는 물에 신라면 수프를 넣는 순간부터 집안에 매운 향이 가득 찬다. 그 향에 기침을 멈출 수 없던 적이 여러 번이다. 당시는 신라면 일본 유통이 막 확대되는 때라 인지도가 낮았다. 아무리 배고파도 모르는 음식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던 탓에 신라면만 남겨두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료품 품귀 현상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집단 감염사례 속출 등 뉴스가 터질 때면 다시금 사재기가 기승을 부렸다. 일부 마트에서는 출입인원수이나 개당 구매개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식당들도 영업시간을 단축해야 했고 일부는 무기한 휴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일상에서 오는 피로감은 직장생활에까지 이어졌다.
일본 소비자와의 전쟁
전날 착용 했던 마스크를 다시 쓰고 집 밖으로 나선다. 역까지 가는 길은 물론이고 역 안에도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콩나물시루 같이 빡빡했던 출퇴근길은 옛말. 매일 같이 의자에 앉는 호사도 누렸다. 재택근무는 기업 자율이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전 사원 출근을 택했다.

당시 회사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소독’과 관련된 수요를 읽고 일찍이 소독용 핸드젤을 한국에서 들여올 계획을 세웠다. 준비는 순조로웠고 일본 대형 유통망 출신인 일본인 고문을 통해 이온 등 대형 쇼핑몰 납품도 확정 지었다. ‘메이드인 코리아’가 새겨진 핸드젤은 삽시간에 일본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매출 침체로 분위기가 침울했던 회사에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핸드젤은 온라인을 통해서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팀에서 관리했던 야후 쇼핑몰에 저녁 8시경에 핸드젤 상품을 공개했는데 하룻밤사이에 1천만원 이상 매출이 나왔다. 평소에는 파리조차 안 꼬이던 사이트였으니 핸드젤 수요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 가능 했다. 매일 같이 택배전표가 책상에 한가득 쌓였다. 몸은 피곤했어도 실적이 올라가니 기분 좋았다.

그러던 5월 어느 날, NHK에서 뉴스 속보를 내보냈다. ‘한국산 핸드젤 알코올 표시 함량 미달 제품 판매’라는 자극적인 제목이었다. 한 업체에서 판매했던 핸드젤 라벨에 ‘알코올 71%’라고 표기했는데 실제로는 5~30% 정도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이미 한 달 전부터 보도들이 있어서 회사에서도 알코올 테스트를 마친 상태였다. 느닷없는 NHK 방송에 웬 뒷북인가 싶었다.
그러나 국영방송 뉴스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뉴스 보도 다음날 아침 9시부터 회사에 수백 통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뉴스 봤다, 너네꺼 제대로 된 것 맞냐?…” 사내 모든 내선전화는 통화 중 표시로 바뀌었고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다음 전화가 걸려왔다. 문제가 된 곳과 무관하다 설명했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라서 불안하다고 했다. 전화는 오후 업무가 끝나는 저녁 6시까지 계속 울렸다.
당시는 알코올 함량 표기와 관련된 일본 내 법적 기준이 모호했다. 그래서 실제 함량을 대놓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소독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기준인 60% 이상 함유되어 있으며 증빙 자료도 있다고 하는 수밖에. 모 인플루언서는 회사 제품에 직접 불을 붙여보는 실험도 했다. 당연히 불은 붙었지만, 일본 소비자들의 불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전화를 받는 사람이 외국인(한국인) 아닌가. 때로는 일본인 바꾸라고 억지를 부리는 소비자도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 주문처리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전화에 시달렸다. 마스크를 끼고 전화통화를 한다는 게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간혹 타지에 와서 고생이 많다, 힘내라고 응원 인사로 끝맺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사건이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내부에 있었다. 바로 임원의 무관심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 재택근무로 전환하는 가운데서도 출퇴근을 고집했던 회사. 가장 큰 이유는 직원관리의 어려움이었다. 그리고 전화대응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러다 말겠지라고 판단 했던걸까. 몇몇 직원이 하소연을 했지만 조금만 참으라는 말만 되풀이되었다. 한 달 가까이 지나서야 전화 대응을 전담할 아르바이트생을 일부 고용했다. 그마저도 한국인…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 소비자를 달랠 일본인이 필요했다.
이후 알코올 함량 표기 기준이 완화되었고 공공기관에서 문제없음 판정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지난 3개월간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버렸다. 위기에서 진면모가 나오는 법이라고 일본인, 그리고 회사가 싫어졌다. 일본에 온 지 7년, 평생 살 생각이었던 일본과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는 순간이 다가오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