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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 투표를 마친 뒤 NHK와 인터뷰 했던 이야기. 그리고 일본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한국의 정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NHK 뉴스에 나오다
일본에 살고 있지만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 나라의 중요 선거들은 재외국민 투표가 시행된다. 2022년 2월 23일, 제20대 대통령선거 또한 그랬다. 인터넷을 통해 사전투표 신청을 하면 권리행사를 할 수 있다. 일본에서 대선 투표하는 건 지난 19대에 이어 두 번째.
도쿄 아자부주반(麻布十番)에는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영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 집에서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약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왕복 3시간이니 결코 만만한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앞으로의 5년이 달려 있으니 절대 간과할 수 없다.
선거 준비물은 한국에서 발급받은 여권이나 주민등록증 또는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 확인 후 검문 게이트를 통과하여 대사관 안으로 들어갔다. 대사관 안팎으로는 유권자를 비롯해서 한, 일 언론사 취재진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빅 이벤트인 만큼 언론의 관심도 많은 듯하다. 이미 선거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했다.
선거장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한번 신분 확인을 마친 뒤 투표용지를 발급받았다. 사표가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정 위치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깔끔하게 도장을 찍었다. 대한민국이 더욱더 발전해 나가길 염원하며.

투표를 마치고 대사관을 나서는 길, 느닷없이 일본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손에는 마이크를 쥐고 있다. 그의 뒤로는 커다란 방송국 카메라를 들고 있는 촬영 기자가 있었다. 카메라에는 NHK라고 쓰인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투표하셨나요? 혹시 잠깐 인터뷰 괜찮을까요?”
무엇에 이끌렸는지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OK’ 사인을 보냈다. 일본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현재 한국의 정세, 일본과의 관계,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 등 점차 심도 깊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나저나 상대방은 일본 국영방송 NHK.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신상이 탈탈 털려서 마녀사냥을 당할지도 모른다. 일본 생활에 대해 글을 써오면서 이따금씩 매국노라느니, 친일파라느니 하는 무차별적 댓글 공격을 받았었다. 기자도 특정 답변을 원하는 것 같은 눈치였다. 일본에서 익숙해진 에둘러 말하기를 활용해 인터뷰를 이어갔다.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앞으로의 한일관계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다. 일본에 처음 왔던 2013년은 한일관계가 상당히 냉랭했었다. 한인타운 신오쿠보에는 일본인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로부터 3년 후 트와이스의 T.T가 일본인 중고생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고 치즈 닭갈비가 인기를 얻으며 다시 한류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치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경직되어 있었다.
“한일 관계가 보다 좋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NHK 방송을 살펴보았다. 재일 한국인들의 대선 장면을 다루는 뉴스가 나왔다. 잠시 뒤 낯익은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바로 나였다. 약 5분여간 진행했던 인터뷰 대부분은 통편집당하고 마지막, 한일 관계 개선을 기대한다는 멘트만 짧게 8초가량 송출 되었다. 투표한 사람(投票した人)이라는 이름과 함께.

향수병 달래기
NHK 뉴스 인터뷰 이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보냈다. 내심 회사 사람 중 누군가 뉴스에서 봤다고 말 걸어올까 싶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무도 보지 않았거나 또는 관심이 없었거나. 반응을 보여줬던 건 SNS를 통해 내 소식을 접한 한국 지인들 뿐이었다.
주변 신경 쓰지 않고(피해 주지 않고) 내 앞길만 묵묵히 잘 헤쳐나가면 되는 게 일본생활 메리트다. 그런데 지나친 무관심이 때로는 고독함을 불러왔다. 코로나19 팬더믹과 오랜 기간 이어진 재택근무는 이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향수병, 정확히는 한국의 정이 그리워진 것이다.
한국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단연 음식이었다. 현연 군인 시절, 휴가 나가면 꼭 먹고 와야 할 리스트를 정해두고는 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가면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으리라.
그나마 다행인 것인 전철로 30분만 나가면 한인타운에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백종원 새마을 식당을 시작으로 다양한 한식집과 서울시장, 장터 등 한국마트가 즐비해 있었다. 와이프와는 2~3주에 한 번씩은 가고는 했다. 홍콩반점에서 쟁반짜장과 찹쌀탕수육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서 떡볶이부터 한국 과자를 쇼핑봉투가 터질 정도로 구매했었다.

김치만 예외적으로 집 근처에서 구매했었다. 일본에 처음 갔을 때는 한국산 김치를 파는 곳이 드물었다. 그러다 2020년 무렵부터 일본마트에서도 한국산 김치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내가 자주 갔던 ‘코푸’라는 곳에도 한국산 농협(맛)김치가 냉장 매대에 항상 진열되어 있었다. 300~400g짜리 한통사면 얼추 1주일 정도 먹었다. 라면과 함께 먹기도 하고 김치찌개나 김치볶음밥을 만들기도 했다.
김치 외에도 떡볶이, 순두부찌개 소스, 농심 라면, 냉면, 고추장 등 한국산 식품 범위도 늘어났다. 일본 마트에서 신라면과 김치 하나 사서 집에서 끓여 먹을 때면 마치 한국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향수병을 달래는 특효약이었다. 일본에서 이보다 더 한국적인 게 있을까.
향수병이 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본에서 비자를 받은 순간부터 여기서 평생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가끔 지독한 향수병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었지만 0.1%도 공감이 되지 않았었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일본 생활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던 것만은 분명했다.

‘친절한 일본인’이라고 믿었던 생각은 사재기 이슈를 겪으며 산산조각 부서졌다. 다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면 언제고 극단적으로 변할지 몰랐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신뢰도 흔들리고 있었다. 성과를 내면 급여를 올려주겠다던 약속과 달리 급여는 동결되었다. 여기에 더해 다음 분기 목표는 비현실적인 수치가 하달되었다. 임원은커녕 당장 팀 리더 자리도 위태위태했다. 나는 왜, 일본에서 이런 고초를 겪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