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시작한 네 번째 직장 생활. 창고 검품 업무부터 온라인 쇼핑몰 운영까지, 현장의 경험을 쌓으며 SEO 컨설팅 교육으로 성장해 나간 기록입니다.
2018년 12월 중순, 도쿄도 겨울 추위가 찾아왔다.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좀처럼 없지만 익숙해지니 몸이 오들오들 떨린다. 입김이 나오는 아침 출근길. 도쿄 고탄다에 4번째 (이직) 회사가 자리 잡고 있다. 나는 EC(온라인 쇼핑몰) 팀 소속으로 합류하는 중고신입이다.
일본 4번째 회사 이야기
이번 회사는 일본 홈쇼핑에 벤더사 역할을 하고 있는 한인기업이다. 먼저번과 비슷하게 사내 일본인 비율이 낮지 않다. 대기업 출신 임원도 있고 입사 제안을 한 선배도 있다. 온라인 쇼핑몰 컨설팅도 받기 시작했다고 하니 지난 직장만큼이나 보고 배울 게 많겠다는 판단이 섰다.
첫 출근과 함께 몸을 쓰기 시작했다. 도쿄도매센터(東京卸売り センター)라고 이름 붙여진 대형 건물 지상층에는 오피스, 지하에는 창고가 있었다. 창고에는 홈쇼핑에 나가기 전 검수가 필요하거나 반송된 상품, 온라인에서 판매할 상품 재고들이 쌓여 있었다. 잿빛으로 둘러싸인 벽과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내부. 첫 업무는 이곳에서 검품을 돕는 일이었다.
작업대를 펼치고 접이식 수납장 검품을 진행했다. 철근이 들어있어 제법 무게가 나간다. 사방이 막혀 있고 먼지와 지하 특유의 쾌쾌한 냄새까지 나서 숨 쉬는 게 편하지만은 않다. 12월이라고는 하지만 금세 땀이 나기 시작한다. 나를 포함, 대략 5명 정도가 수일에 걸쳐 작업을 반복했다. 몸을 쓰는 일은 고되지만 정신은 편했다.
검품 작업은 한국계 직원들이 담당했다.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부터 입사 경유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금세 친해졌다. 작업 후 근처 생선 정식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저녁에는 맥주 한잔 걸치기도 했다. 사무실 책상보다 창고에서 일하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군에 있을 때 행정반 업무보다 야외 훈련받는 쪽을 더 선호했던 것처럼.

검품 작업이 끝나면 본업인 온라인 쇼핑몰 업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인 리더(대리), 한국인 디자이너 두 명, 그리고 선배와 나. 이렇게 5명이 한 팀을 이루었다. 전 직장에서 말문이 트인 덕에 일본어로 업무를 하는데 부담이 없었다. 오랜만에 라쿠텐이며 아마존, 야후재팬 쇼핑 등 일본 온라인 쇼핑몰 관리자 페이지에 접속했다. 예전 생각이 난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다.
이번 회사의 온라인 쇼핑몰 주력 상품은 양면 프라이팬. 홈쇼핑을 통해 선공개하고 일반 판매개시와 함께 온라인으로 판매 중이었다. 제품은 양쪽 채널 모두에서 호평을 얻고 있었다. 매출도 월 0백만엔 단위. 한 달에 고작 몇 개 팔릴까 말까 했던 쇼핑몰만 접하다 규모가 있는 사이트를 접하니 설레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다름 아닌 재고관리. 재고 데이터와 쇼핑몰 판매 데이터 간 연계가 안되다 보니 주문은 들어왔는데 물건을 보내지 못하는 이슈가 더러 발생했다. 재고 또한 홈쇼핑과 공유해서 사용하다 보니 이론 재고와 실재 재고 사이 오차가 생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온라인 쇼핑몰 재고를 별도로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점. 재고 관리는 지난 반년 간 영혼을 갉아 넣어가며 익혔던 일이다. 내가 분명 강점 있는 일이지만 처음부터 나서지는 않았다. ‘슈하리 (守破離:しゅはり, 수파리)’ 원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다.
일본 EC 컨설팅 받고 매출 신기록까지
이 회사에 들어오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쇼핑몰 컨설팅.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와 함께 교육을 받으러 도쿄 유락쵸로 향했다. 순백색 벽에 시원하게 펼쳐진 널찍한 오피스. 그곳에는 EC (온라인 쇼핑몰) 컨설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개별 회의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 한 곳에서 컨설팅 교육이 진행되었다.
컨설턴트는 20대 중반즈음으로 보이는 남성. 아마도 대학 졸업 후 회사 교육을 받고 이 일을 하고 있는 듯했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연륜은 없어도 회사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가 있을 테니 믿어보기로 했다. 맨 먼저 월별 커리큘럼에 맞는 교육이 진행되었다. 책으로 익혔던 내용들도 더러 있었지만 컨설팅 회사에서 수집한 내부 데이터를 바탕으로 디테일한 노하우 전수가 이어졌다.
가장 알고 싶었던 부분은 쇼핑몰 검색엔진최적화(SEO). 인터넷상에는 카더라만 있던 시기다. 지난 5년간 풀지 못했던 숙제를 드디어 풀었다. 뿌연 안개가 걷히고 드디어 시야가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내가 짓고 싶은 상품명이 아니라 고객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를 반영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그걸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매월 1가지 주제에 대해 교육이 이루어지고 다음 미팅 전까지 실전에 적용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평소에는 챗워크(Chat work) 메신저와 유선을 통해서 컨설턴트와 진행사항 공유 및 피드백을 받았다. 처음에는 선배가 주도로 진행했고 이어 나와 업무분담이 이루어졌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차츰 매출도 늘어났고 팀원도 증원되었다.
3개월에 한 번 있는 대규모 할인 행사인 ‘라쿠텐 슈퍼세일’에서는 역대급 매출 신기록을 달성했다. 골칫거리였던 부동 재고를 상당수 판매 할 수 있었다. 이때 지난 직장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사내에서 출하작업까지 전부 담당했는데 대량 주문을 처리해 본 경험자가 없었다. 출하 예정 상품을 수량별로 구분하고 그에 맞게 포장할 수 있도록 재고와 주문서, 운송장을 사전에 구분해 두었다. 만일 작업이 끝나고 남는 수량이 있다면 휴먼 에러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대부분의 물량을 오배송 사고 없이 처리해 낼 수 있었다.

어느덧 회사 입사한 지도 1년이 지났고 컨설팅 교육도 마무리되어 갔다. 매출도 꾸준히 상승하면서 사내에서 팀에 대한 신뢰도도 커졌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연봉도 올라갔고 일에 대한 자신감도 상승했다. 동료들과도 친해졌고 출퇴근이 두렵지 않았다. 이대로만 간다면 금세 일본 영주권을 받는 날이 올 것 같았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순탄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어느덧 해는 2020년으로 바뀌었다. 일본에 온 지도 7년째. 1월 말에 한국에서 부모님을 초대해 가족여행을 즐겼다. 와이프와는 다가올 봄 여행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그때 일본은 물론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건이 닥쳐오고야 말았다. 바로 코로나 19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