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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생활 7년 차의 코로나 시기 향수병과 재취업기. 일본 회사 면접과 합격 과정, 팬데믹 속 외국인으로서의 고민과 새로운 목표를 담은 일본 취업 이야기.
향수병에 걸리다
코로나19로 인해 하늘길은 완전히 막혀버렸다. 한국은커녕 일본 안에서도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마스크를 매일 같이 쓰는 생활은 좀처럼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재기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식료품 수급은 불안정했다. 이 와중에 한국산 핸드젤 이슈로 비상사태에 들어간 회사.
일본에 처음 왔던 2013년부터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일본생활이 즐거웠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생활이었고 첫 직장 적응실패로 반도피성으로 왔던 도쿄. 인턴으로 시작해서 정사원에 채용되고 매년 급여도 올라가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다. 하루하루가 꿈같았다. 일본어 선생님이라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대신 일본에서 사회생활 하는 모습을 만들었다.
향수병 또는 홈시크. 외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겪게 된다는 증상이 나에게는 없었다. 간혹 뜨끈한 순대국밥이나 집밥이 그립기는 했지만 매년 2~3차례는 한국에 왔다 갔다 했기에 그런대로 해소가 되었다. 군생활 2년 (휴가) 경험이 이런 데서 도움이 되었다. 일본에서 평생 사는 것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180도 달라져버린 일상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봉쇄, 그리고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함. 마트 매대가 텅 비어버린 모습에 아연실색했던 순간들. 더욱이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더욱 골치가 아파진다. 형제라도 있다면 그나마 나으련만. 한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PCR 검사부터 일주일 이상 격리에 위치 보고까지.

이런저런 불안함이 엄습해 오면서 일본 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은 한국산 핸드젤 이슈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일이었다. “한국산이라 믿음이 안 간다, 내가 이래서 한국이 싫다, 한국사람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 “등등. 수화기 너머로 일본인(소비자)들을 상대하면서 느꼈던 모습은 이전의 좋은 추억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등학생시절 참가했던 일본 홈스테이. 길을 물어보는 우리 일행을 목적지까지 바래다주었던 사람들.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아 일본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고 은혜에도 보답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일본에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세 달간의 경험이 이를 재고하게 만들었다.
일본 재취업 준비
일본에 온 지 7년째만에 한국행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일본살이도 원 없이 했겠다, 일본어도 말문이 트였겠다 일본행 첫 계획 때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었다. 더는 여한이 없다고 생각할 때 한 가지 해결되지 않은 갈증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일본회사 근무.
일본 생활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회사는 모두 한국계 회사. 일본인 직원이 있지만 대표를 비롯해서 한국인 구성원이 많았다. 한국인 멤버들과 지내다 보면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헷갈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무실을 벗어나야 비로소 일본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일본을 떠나기 전에 (대표가 일본인인) 일본 회사에서 근무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간다면 평생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았다. 일본회사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계 회사와는 어떤 것들이 다를까, 나는 그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이런저런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년 전처럼 다시 전직 사이트에 접속했다. 예전에 올렸던 온라인 이력서를 수정했다. 경력사항에 추가할 내용도 많아졌다. 핸드젤 이슈로 매출을 급성장시킨 경험까지. 때마침 일본에서도 온라인 쇼핑몰 수요가 증가되면서 관련 경력자 채용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력서는 내가 제출할 수도 있지만 회사에서 제안을 해오기도 한다. 내 경력에 매력을 느꼈는지 일부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그중 한 곳은 모바일 액세서리 회사로 이전 직장과 동종업계. 규모도 제법 있는 곳이었다. 내 능력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일부러 엔트리 리스트에서 제외했는데 제안을 받을 줄이야. (그것도 때마침 내 생일에.)
면접 일정이 잡혔고 본사가 위치한 도쿄 유락쵸(有楽町)로 향했다. 역에서 도보 2분 거리에 위치한 오피스. 널찍한 공간에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절반은 사무공간, 절반은 회의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사팀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에서 인적성 검사를 받고 본격적인 면접이 진행되었다.

1차 면접 상대는 사내 임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얼핏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그래서였는지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면접동안 그동안의 경험담, 실적에 대한 에피소드, 그리고 전직하려는 이유까지 심도 깊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분위기는 물론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절대 안심할 수 없는 법.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진땀 빼는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2주 후 임원 면접이 잡혔다. 이번에는 등기 임원. 사장은 아니지만 내가 속하게 될 영업부 전체를 총괄하는 임원이었다. 그로부터 회사의 현황과 비전에 대한 설명과 함께 1차 면접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회사에서는 집행임원(執行役員)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는 초고속 승진으로 2년 만에 임원급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승진의 기회가 열려있다는 말과 함께.
2차 면접까지 마치고 며칠 후에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았다. 2021년 10월부터 첫 출근이 결정되었다. 이때 일본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한 가지 더 생겼다. 기왕 하는 거 나도 임원까지 올라가 보자! 향수병에서 출발한 일본회사 전직이었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나에게 남겨진 일본 생활 마지막 미션이라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