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아 있던 일본 비자가 지난 2월 24일로 종료가 되었다. 지난 2014년 첫 비자를 시작으로 3번의 비자 갱신이 있었다. 일본을 떠나는 순간, 비자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렸다.
지난 10여 년간 일본에서 살면서 정말 많은 추억들이 쌓였다. 대학 졸업 후 1년 후 도쿄로 떠났고 30대 중반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일본에서 얻은 게 무엇이었는지 되뇌어 본다.

일본어 울렁증이 사라지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일본어 공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손에 굳은살이 배길 정도로 깜지를 써가며 외웠다. 남들 수능공부할 때 일본어 공부를 하는 바보 같은 짓을 했지만 후회는 없다.
대학 전공은 일본학(그리고 경영학). 모범생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는 했지만 JLPT N1, JPT 800대, 성적 장학생, 원어연극 주연 등 크고 작은 성과들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어로 말할 기회가 부족했던 탓에 스피킹이 언제나 발목을 잡았다. 회화수업만으로는 입과 귀를 트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첫 회사도 일본 해외영업직으로 뽑혔는데 일본 바이어 미팅 때 인사말고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얼마뒤 사표를 내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 가면 말문이 트일 줄 알았는데 한인회사에 있다 보니 한국어 사용빈도가 높았고 일본어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일본 생활 5년 만에 전혀 새로운 곳으로 이직을 했다. 한인 회사이긴 했지만 일본인으로만 구성된 팀에 속했다. 이때 처음으로 24시간 일본어에만 빠져 살았다.
직원들끼리 대화도, 전화통화도, 생각도 모두 일본어로 해야만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내뱉지 못할 때는 너무 답답했다. 한국어로 생각할 시간도 아까웠다. 점심 휴식시간에는 일본 소설을 읽고 단어나 문장까지 외우고는 했다.
다행히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일본어 울렁증은 사라졌다. 일본어로 꿈을 꾸기도 하고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먼저 튀어나기도 했다. 마지막 회사는 온전한 일본 회사였는데 팀 리더가 되어 일본인 직원들을 이끌기도 했다.
그렇다고 일본어가 원어민 수준은 아니다. 여전히 모르는 단어 투성이다. 현업이 바빠 예전만큼 일본어 공부를 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정도의 실력이 되었음은 충분히 입증이 되었다.

전문 분야가 생기다.
대학 졸업 전에는 막연히 ‘취업’하는 게 목표였다. 내가 뭘 잘하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았다. 전공 살려 일본어를 쓸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 해서 생각한 게 해외영업이었다.
막상 해외영업으로 취업해 보니 세상에는 모르는 것 천지였다. 일본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첫 회사는 섬유 상사. 섬유 용어부터 제조공정, 무역용어, 영문 이메일 등 하나에서 열까지 새로 배워야 했다. 거래처 영업 다니고 접대하는 게 영업맨이라고 착각했었는지도 모른다.
일에 흥미를 붙이지 못했고 수습기간을 마치고 일본 한국계 기업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한국 중소기업 상품의 B2B 홍보를 담당했다. 바이어들에게 제공할 자료를 일본어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B2C 채널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이때 처음으로 일본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상품 판매를 접하게 되었다. 당시 사내에는 홈페이지(HTML)를 다룰 줄 아는 게 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멘땅에 헤딩하기.

주말에도 공부회(벤쿄카이)를 열어 학습했고 유튜브 등에 올라온 관련 세미나 영상, 서점에 나와있는 책들을 파헤쳤다. 그럼에도 좀처럼 온라인 쇼핑몰이 손에 익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4번째 회사에 이직하게 되었다. 일본 TV홈쇼핑 벤더사였던 곳으로 온라인 쇼핑몰에 투자하고 있었다. 때마침 전문 컨설팅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매달 한 가지 주제를 배웠고 남은 기간 동안 실행하고 피드백받아 수정하는 일을 반복했다.
지금까지 몰랐던 것들, 놓치고 있던 것들을 컨설팅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었다. 거기에 사내 인프라와 직원들끼리 협업이 맞물려 매출이 성장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 번은 악성재고로 남아있던 20만 원대 전동 걸레를 완판 하기도 했다.
다음 회사에서는 온라인 쇼핑몰 운영으로 이직을 했다. 매일 같이 상품을 올리고 주문처리하고 고객 대응을 했다. 30만 원대 중저가 5G 핸드폰을 맡았는데 아마존재팬 랭킹 1위에도 올랐다. 재고는 전량 소진되었고 성과를 초과 달성해 승진의 기회도 얻었다.
이후 온라인 쇼핑몰을 기반으로 한국에서 창업을 했고 벌써 3년이 넘었다. 일본에서, 온라인 쇼핑몰 운영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면 지금쯤 무얼 하고 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다.
일본 생활 초기에는 정말 행복했다. 관광처럼 며칠만 있다가 떠나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여유롭게 일본(도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평일에는 회사, 주말에는 관광객 모드였다.
이런 생활을 대략 1년쯤 했을까. 일본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보다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한국에 있을 때 라면 가끔 친구들 만나 술도 한잔하고 놀러도 갈 텐데. 일본에는 그럴 상대가 적었다.

다행히도 회사에서 유독 잘 챙겨주는 선배가 있었다. 퇴근길 방향이 비슷해서 같은 버스를 타는 일이 잦았다. 둘 다 술을 좋아했다. 함께 이자카야를 가거나 선배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돈도 많이 없던 시절이었는데 모든 걸 선배가 부담해 줬다. 나는 대신 잡일(설거지 등)을 해주었지만. 덕분에 일본생활 초기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는 사이다.
한편, 한국에서 알고 지냈던 일본인을 통해 사람을 소개받았다. 한국 유학 경험이 있는 연상의 형이었다. 그는 자주 한국 유학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모와 홈파티를 열었다.
주말이면 이 모임에 참석했다. 함께 요리하고 간단히 술 한잔 즐기며 이야기도 나누고 하며 즐겁게 지냈다. 제법 친해졌다 생각했다. 일부와는 모임 외적으로도 교류를 이어가고 싶었고 번호교환을 요청했다. 그러나 거절당했다.
이때부터였을까. 겉 모습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였는지 정이 식기 시작했고 모임 참석 빈도도 줄어들었다.
그 무렵 재일교포 선배들이 운영하는 무역스쿨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이미 일본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어른들부터 이제 막 건너온 내 나이또래 친구들도 제법 있었다. 일본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팀워크를 이루며 활동하는 게 제법 재미있었다.
이때 다른 팀이었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겼다. 지금의 와이프다. 이 당시에는 큰 연은 없었지만 비슷한 일을 하고 있어 몇 차례 마주칠 일이 있었다.

와이프가 일본 워홀비자에서 취업비자로 바꾸는 과정에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먼저 취업비자를 받아본 경험이 있기에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취업비자를 발급받았고 사례로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게 연이 되어 몇 차례 더 만남을 이어갔고 연인으로 발전했다. 연애를 시작한 지 8년이 지난 2023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지금은 한국에서 함께 사업을 운영 중이다.
일본에서 지낸 10년 동안 이보다 많은 희로애락들이 있다. 만약 일본에 가지 않았다면, 오래 살지 않았다면 이러한 성과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불가능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때 미처 하지 못했거나 소홀했던 것들이 생각난다. 전국 일주도 못해봤고 마음이 통하는 일본인 친구도 만들지 못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지난날을 밑거름 삼아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래서 일본 이주를 고민 중이거나 일본에서 적어도 워킹홀리데이, 유학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적극 추천한다. 살아보고 맞지 않으면 그 경험을 밑천 삼아 다른 방향을 선택하면 된다. 실보다 득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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