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OVE 2015 수기부문 수상작
#좌절 그리고 또 한 번의 시작
나는 이미 취업에 성공했었다. 27살이 되던 지난 2013년 봄, 한 섬유계열 중견기업의 해외영업사원으로 근무 했었다. 대학시절 4년간 가져왔던 ‘한국과 일본의 가교역할을 하는 해외영업맨이 되고 싶다는 꿈이 이루어 졌다는 사실에 하루하루가 두근거림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한국과 일본을 건너다니며 바이어들과 교섭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업무량 중 일본과 관련된 일은 고작 5% 남짓이었다. 이유인즉, 회사가 주력을 두고 있었던 시장은 미주, 유럽권이였으며 나는 미주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일본은 원가절감을 위하여 원단 생산 공장들을 중국, 베트남 등으로 이전을 한 경우가 많았으며 일본에 출장가는 일은 거의 손에 꼽힐 정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과의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한번은 일본 M패션사의 담당자가 한국출장을 와서 미팅에 참가 한 적이 있었는데, 극도의 긴장감과 더불어 여태껏 겪어보지 못했던 비즈니스 장벽에 가로막혔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채로 소중한 기회를 보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일본에서의 체류경험이 여행을 통한 3박 4 일정도가 고작이었던 지라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도 원인이었다.
비슷한 일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으며 무언가 결단을 내릴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래서 결심하게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일본에 가보자!’ 라고,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 찾아보던 중 6개월간 진행되는, 정부해외인턴사업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짧지만 길었던 해외영업 사원의 모습을 버리고 다시 취업 준비생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인턴으로 살아간다는 것
2013년 7월, 서류전형을 시작으로 면접, 온라인교육, 합숙교육, 기업매칭을 통하여 일본에 있는 (주)해피식품 일한월드센터에 내정이 확정되었다. 일한월드센터는 민간 코트라 (KOTRA)같은 팀으로서 우리나라 중소기 업들의 일본진출을 컨설팅 하는 곳이다. 한국과 일본사이의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는 내 이상과 마케팅 + 무역업무를 일본에서 경험해 보기에 최적이었다. 그리하여 같은 해 9월 9일자로 일한월드센터의 인턴으로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인턴으로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목표했던 바가 하나 있다. 정사원이 되었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자! 그래서 6개월 후에는 정사원이 되어있자!’ 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한대로 이루어짐을 체험 해 보고 싶었다.
인턴으로 있으면서 수행했던 업무는 1) 시장조사, 2) 판촉회, 3) 무역사절단, 4) 전시회 참관, 5) 홍보 마케 팅, 6) 온라인몰 관리 등이었다. 대기업과 같이 다양한 부서간의 협업체제 를 구축하며 사업을 운영해나가는 것을 경험할 수는 없었지만, 이제 갓 업무를 시작한 나의 의견 하나도 반영이 되고 또한 그것이 실제 결과물에 반영될 수 있었다는 것은 중소기업에서 느껴볼 수 있었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조직도 유연했다. 프로젝트 사안에 따라서 선임들과 팀을 이루기도 하고 인턴들끼리 구성되어 일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배경이 주는 긴장감과 신선함이 내 주변을 감싸면서 하루하루가 너무도 즐겁고 유익했다.
하지만 매번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역시나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의 비즈니스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회사가 일본에 있지만 한인기업으로서 우리 팀에 소속되었던 일본 원어민 직원은 단 1명뿐이었다. 그마저도 업무량이 많다 보니 일본어 공부를 도와달라고 말할 처지도 아니었으며, 한국어도 수준급이어서 상대방이 오히려 한국말로 말을 걸어 올 정도였다. 가끔 거래처 바이어나 문의전화가 오면 받아야 할 경우도 있었는데,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대답을 하면 좋을지 막히기 일쑤였다. 책을 펼치고 공부도 해보고 문장도 외워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극복하지 못할 시련은 없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방법을 고민하던 중 머릿속으로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직접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는 바이어로부터 용건을 전달받아야 하는 것들이어서 심적인 부담감이 컸다. 내가 역으로 그 입장이 되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했고, 업무와 간접적으로 관련된 곳에 전화를 걸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피력하고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때 사용하는 표현이 어떤지를 유심히 들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이조차도 힘들었지만 횟수를 거듭할 수록 전화를 하는 데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으며 언제부턴가 막힘없이 내 의견을 상대 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 비즈니스 언어를 익히기 위해 선택한 것은 드라마 대사를 따라 하고 익히는 것이었다. 이때 선택한 드라마는 은행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한자와 나오키’ 였다. 은행 내부는 물론 여러 기업들을 돌아 다니며 교섭을 하는 내용으로 비즈니스 일본어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탄탄한 드라마 스토리 속에서 정확한 배우들의 발음, 상황에 맞는 경어표현을 동시에 익힐 수 있었다. 매일 배우들의 대사를 그대로 소리 내면서 따라 했고 출퇴근길이나 자기 전에는 음성만을 틀어놓고 귀에 지속적으로 노출시켰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으면서 인턴 2~3개월 차부터는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도 큰 어려움 없이 받을 수 있었으며, 사무실에 방문하는 바이어를 상대로 컨설팅 제품에 대해 설명하며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고, 직접 전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바이어 발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0명의 지인을 만드는 것에도 성공했다.
#목표가 낳은 또 다른 목표
무엇보다 가장 큰 결실은 바로 정사원 제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매년 2~6명 이상의 인턴이 오갔던 곳이었지만 그 중에서 정사원 제의를 받은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목표 했던 6개월이 끝나는 시점으로 정식으로 일본에서 취업비자를 발급 받아 2014년 3월부터 (주)해피식품 일한월드센터의 정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정사원이 되어서는 기존의 하던 일에 책임감이라는 것이 더해졌다. 그리고 새로 들어오는 후배 직원이나 인턴들의 업무지시, 교육 등을 담당했다. 더 많은 일본인들을 만나 비즈니스를 진행하기도 했고 한번은 일본 거대 기업인 B사와의 업무 담당을 맡아 그들이 요구하는 품질과 가격에 맞는 한국 제품을 찾는 일도 진행했다.
점점 일본에서 비즈니스 초년생으로서 탄력을 받아갈 무렵 한가지 고민이 생겼다. 전문성을 기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하던 일도 분명 전문적인 일이었지만 범위를 한정해서 몰두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인턴을 하며 경험했던 온라인 몰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결단을 내리게 되었고 2015년 5월 29일부로 회사를 떠났다. 현재는 약 3개월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일본 최대의 온라인 몰인 라쿠텐에 샵을 오픈하여 운영고 있으며, 다행히도 나의 뜻을 받아들여준 지인의 도움을 받아 금년 9월부로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완생으로 가는 길
돌이켜보면 다소 무모할 수도 있는 일본행이었지만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신념으로 지난 2년간을 달려온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미생이다. 그러기에 더 많이 부딪혀보고 넘어져보고 극복도 해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이러한 이야기들은 개인 블로그(http://hmstory.net)를 통해서도 공개하고 있다. 간혹 나와 같은 꿈을 갖고 있거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이들에게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내 글에 도움을 받아 현재 일본에서 무사히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을 때의 느낄 수 있는 그 뿌듯함이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다. 비록 일본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해외취업을 꿈꾸고 있고 그리고 시작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내려 왔다. 나 혼자만이 아닌 모두의 완생을 만들어 갈 수 있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이 글은 제가 지난 2015년에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진행하는 해외진출 성공수기에 응모하였고 가작을 받았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