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문학에 관심이 있던 건 아니다. 어릴 적 서태지 노래를 즐겨 들었다. 그의 음반 자켓 속 가사들은 또 다른 즐길 거리였다. 분명 한글로 적혀 있는데 쉽사리 뜻이 이해되지 않았다. 미로 같이 나열된 문자들의 조합이 일종의 퍼즐과도 같았다. 각종 평론가는 물론 팬들도 가사를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사과에 꽂혀버린 색연필에겐 단지 저고리에 숨어버렸어’

중학교때 발매되었던 그의 첫 솔로 앨범, take2에 나오는 가사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가사를 담은 멜로디에 흠뻑 취했던 중학교 시절. 자연스럽게 뜻을 함축한 글쓰기에 재미 들였다. 자연스럽게 ‘시 짓기’에 빠져들었다. 시간날때면 틈틈이 시를 썼고 교내외 크고 작은 백일장에도 참가했다. 간간이 작은 상 몇 번 받기는 했지만 두곽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려던 목표는 대입 백일장에서 입선조차 하지 못하면서 접어버렸다.

서태지 9집 앨범 가사집. 내가 애정하는 ‘숲 솦의 파이터’. 역시나 가사는 쉬운듯 쉽지 않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얼마간은 시를 썼다. 가끔 미니홈피에도 올리기도 했다. 그러다 대학 생활 중 누구나 한 번쯤은 써보게 될 ‘리포트‘를 쓰게 되면서 문장으로 풀어쓰는 글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 비해서 꽤나 술술 문장이 풀렸다. 잘 쓰고 못쓰고의 문제가 아니다. 일종의 놀이와도 같았다. 대학 1학년 때 수업 중 소논문을 쓰는 과제가 있었는데 대략 40페이지 정도 불량을 하룻밤 사이에 써냈었다.

그러다 블로그와 연이 닿은 것은 대학교 4학년 무렵. 친하게 지내던 선배 형이 때마침 블로그 체험단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강릉에 있던 한 횟집 포스팅이었다. 모둠회를 먹으려면 못해도 6~7만원 나온다. 특별한 수입이 없는 대학생인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이따금 사회생활 하는 선배가 와서 사줄 때나 얻어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모둠회를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먹을 수 있다니! 대신 사진 열심히 찍고 식당에서 원하는 키워드를 넣어 문장을 만들어서 블로그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거기에서 수입도 발생한다.

그렇게 선배 형을 도와 몇차례 포스팅 알바를 하면서 블로그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때 받은 돈으로 운영을 시작한 것이 지금의 블로그 hmstory.net이다. 이때부터 리포트에서 벗어나 쓰고 싶은 글을 인터넷 세상에 올리기 시작했다. 마케팅 수업 조별 평가에서 1위 했던 자료를 소개하기도 하고 교내 UCC 공모전에 입상했던 자료를 공유하기도 했다.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소소한 일상 기록과 함께 일본 도쿄의 곳곳을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다만 여러 차례 플랫폼을 옮기는 과정에서 과거에 작성했던 글들을 소실하면서 2019년 이후부터 작성한 250여편의 글(포스팅)과 카카오 브런치에 올린 100여편의 글만이 공개되어 있다.

요즘은 글을 ‘잘’ 쓰고 싶어 글쓰기와 관련된 책도 보는 중이다. 박종인 작가님의 ‘기자의 글쓰기’, 김영하 작가님 책 한 구절에 나와 읽게 된 노아 루크먼의 ‘플롯 강화’는 글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이 책들 덕분에 과거의 글들보다 많이 다듬어졌다고 느낀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문장을 풀어가는지 보고자 다양한 책들도 읽어 보는 중이다. (이런 시각으로 글을 읽다 보면 작가가 괜히 작가가 아님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플롯 강화의 한구절. 글이 갖는 위력에 대한 부분이다. 이번 포스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꼭 이루고 싶은 인생 목표가 하나있다.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는 것이다. 보고 느낀 바를 글로 공유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가며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삶.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이 글들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아 간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어릴 적 꿈이 있었다. 그 꿈을 교단 위에서가 아닌 글로서 이루어 내고 싶다. 그래서 계속해서 글을 쓴다.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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