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일에는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글로 형상화하고, 문장을 다듬는 일렬의 행위가 이어진다. 순식간에 써지는 날도 있는가 하면 한 시간 동안 한 문단조차 쓰기 힘들 때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IQ84, 해변의 카프카 등 다양한 명작 소설을 써낸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다.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그의 작품을 여태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다.
소설만 썼을 것 같지만 의외로 에세이, 인터뷰집, 여행기 등 다양한 장르의 책도 펴냈다. 때마침 아내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달리기’아 ‘무라카미’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흥미로운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인 ‘누가 믹 재거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에서 시작해, 마지막 장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는다’까지 260여 페이지에 걸쳐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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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와 글쓰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연결고리
달리기에 관해 이렇게나 할 말이 많을까? 그런 궁금증을 자아낸다. 하와이, 도쿄, 케임브리지, 홋카이도, 뉴욕, 가나가와, 니가타 등 무라카미 본인이 달리기를 위해 또는 글을 쓰기 위해 선택한 장소에서 러너로서 달려온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달리면서 신체와 정신건강을 단련했고 그때 느낀 감정들을 섬세하게 다듬는 과정을 거쳤다.
“사이클로 한 시간 이상 격렬하게 계속 써온 근육이 여전히 ‘영업 상태’이기 때문에 달리는 데 사용하기 위한 근육이 원활히 움직이질 않는다… 물에 빠지지도 않고, 펑크도 나지 않고, 못된 해파리에 쏘이지도 않고” (책 253p~254p)
매일 10km를 달리는 루틴을 세워 계속해서 달려왔고 트라이 애슬론 경기에 참가할 정도까지 수준급 선수로서의 역량도 가지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그와 함께 달리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무라카미가 되어 풍경의 변화를 체험하고 시간에 따른 몸 상태의 변화도 경험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꼭 달리는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전업 소설가가 되기 전, 그러니까 재즈 클럽을 운영하던 시절 이야기도 등장한다. 아침부터 한밤중에 이르기까지 녹초가 되도록 일하던 모습도 생생히 그려져 있다.
그러다 1978년 4월 1일 오후 1시 반 전후, 도쿄 진구 구장 외야석에서 맥주를 마시며 야구 관전을 하던 중 문득 소설을 써보자는 생각을 떠올리며 전업 작가로서 길을 걷게 된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신주쿠의 기노쿠니야 서점에 가서, 원고용지 한 뭉치와 1,000엔 정도의 세일러 만년필을 사 왔다. 참으로 조촐한 자본 투자였다.” (책 53p)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나서 한 첫 행동이 원고지와 만년필을 산 것이다. 이 대목은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일본에 살면서 나 역시 신주쿠 기노쿠니야 서점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방문했었다. 장소에 대한 기억이 있어 무라카미가 이곳에서 어떤 표정과 모습으로 물건을 구매했을지 비교적 또렷하게 그려진다.
무라카미의 글쓰기 철학과 ‘달리기를 말할 때’의 의미
무엇보다 서점을 방문하는 같은 행위이지만 사람에 따라 그 결과가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기노쿠니야 서점을 갔던 사람 중 한 사람은 전 세계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이 글을 쓰는 내가 되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른 모습의 사람이 되어 있겠지.
책 전체에 걸쳐 이처럼 달리기와 글을 직업으로서 가지면서 겪게 된 이야기들이 적정한 비율로 담겨 있다. 그래서 무라카미가 어떤 작가인지, 그의 인간성이나 철학에 대해서 이해하기도 좋은 책이다.

반면 쉽게 읽혀 나가는 책이 아니기도 하다.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직역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딱딱한 문체가 곳곳에 등장한다.
“내가 상당히 완고하다는 것과 같을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 근육은 완고하다. 근육은 기억하고 인내한다. 어느 정도 향상도 된다. 그러나 타협은 하지 않는다. 융통성을 부리지도 않는다.” (책 132p)
또한 달리는 행위 하나의 주제가 이어지다 보니 다소 지루한 면이 있다. 성장 과정이라기보다는 그 순간순간의 단편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된 에세이다. 시점도 현재에서 과거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달릴 때만큼 호흡이 가빠져 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책이기도 하다. 글을 쓰기도 하고 적어도 3km를 달리고자 했던 나에게 자극이 되는 영양보충제 같은 작품이었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 (역) 임홍빈
원제: 走ることについて語るときに僕の語ること (2007)
출판사: 문학사상
출간일: 2009년 01월 05일
장르: 에세이, 자전적 이야기
평가: 무라카미의 달리기나 인생철학에 대해서 알고 싶거나 그의 다른 소설을 읽기전/후 한텀 쉬어가는 용도로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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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살펴보기
- 서문│선택 사항으로서의 고통
- 제1장│2005년 8월 5일 하와이 주 카우아이 섬
- 누가 믹 재거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
- 제2장│2005년 8월 14일 하와이 주 카우아이 섬
- 사람은 어떻게 해서 달리는 소설가가 되는가
- 제3장│2005년 9월 1일 하와이 주 카우아이 섬
- 한여름의 아테네에서 최초로 42킬로를 달리다
- 제4장│2005년 9월 19일 도쿄
-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 제5장│2005년 10월 3일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 만약 그 무렵 내가 긴 포니테일을 갖고 있었다 해도
- 제6장│1996년 6월 23일 홋카이도 사로마 호수에서
- 이제 아무도 테이블을 두드리지 않고 아무도 컵을 던지지 않았다
- 제7장│2005년 10월 30일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 뉴욕의 가을
- 제8장│2006년 8월 26일 가나가와 현에 있는 어느 곳
- 죽는 날까지 열 여덟 살
- 제9장│2006년 10월 1일 니가타 현 무라카미 시
-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
- 후기│세상의 길 위에서
- 역자 후기│하루키의 문학과 마라톤 그리고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