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회사까지 얼마나 걸리더라…?’ 🤔

집을 구할 때 최우선 고려대상은 출/퇴근에 편리한지 여부다. 전철을 타고 1시간 이내라면 출퇴근 허용범위 안에 들어간다. 역까지 도보 10분 이내라는 조건도 빠질 수 없다. 한번은 역까지 도보 20분이 걸리는 곳에 살았었는데 비나 눈 오는 날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버스 정류장이 바로 집 앞에 있어서 선택한 곳이었는데 사무실을 옮기면서 어쩔 수 없이 역까지 걸어야만 했다. (대신 건강을 얻었다.)

회사들이 있는 도심은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교외지역으로 멀어졌다. 자연스럽게 상업시설 수도 줄어들고 크고 작은 주택들만 들어서 있다. 소위 잠만 자고 출근하는 베드타운이다. 최소한 마트 한개 정도만이라도 있으면 당장 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다. 일본에서 사회생활을 하던 10년동안 이러한 기준으로 집을 정했다.


다양한 생각이 멸종되는 사회


일본생활을 마치기 전 잠시 한국에 들어와 살 집을 구하러 다녔다. 일본에서는 보통 인터넷에 집 구조도와 함께 실내사진이 올라온다. 방안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태로.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금 달랐다. 사진이 한장도 없는 경우도 있고 실내사진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사진이 있는 경우도 이미 세입자가 살고 있는 상태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일본 부동산 정보 화면. 빈 집 상태 사진이 올라온다. (출처: HOMES)
우리나라 부동산 정보 화면. 집 구조도가 전부인 경우가 많다.(출처: 네이버 부동산)

인터넷으로 어느정도 살 집에 대한 상상이 가능했던 일본과 달리 집을 보러가는 순간까지 베일에 감추어진 우리나라에서는 집 구하기가 더 어렵게 느껴졌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 아파트 단지들 중 내가 살 곳은 어디란 말인가. 6월 무더위 속에 땀을 흘리며 한강을 넘나들며 집을 보러 다녔다. 집은 괜찮은데 법적인 문제가 있거나 주변환경이 좋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집 컨디션이 별로인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고 계약까지 성공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조금씩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을 무렵 문제가 생겼다. 다름아닌 ‘층간 소음‘이었다. 뉴스로 층간소음으로 인해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종종 접했다. 일본에서는 사회적 이슈로 언급된 적이 없었기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내가 다름 아닌 층간소음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층간소음이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는 윗집 아랫집간 골조두께가 얇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파트에서는 소리가 벽을 타고 전해져서 다른집 소음까지도 층간소음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한다. 지은지 얼마 안된 아파트라서 안심했는데 여기저기 하자도 많은 모양이다. 소음방지 슬리퍼를 착용하고 지내고 있고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밤에도 시끄럽다는 항의 전화(인터폰)가 걸려왔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님은 ‘지금은 아파트 복도를 사이에 두고 소통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고어(古語)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차를 타고 이동하고 SNS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대. 층간소음도 실상은 소통단절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사는 (곳) 문제가 어느때보다 크게 와닿는 요즘이다. 집, 아파트 단지, 지역상권, 교통편, 공원, 편의시설 등 어느것 하나 놓쳐서는 단란한 신혼생활도, 2세가 있는 미래도 꿈꾸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지내야하지? 그런 기준이 없으니 혼란스럽다.

어디서 살 것인가 책 표지
어디서 살 것인가 표지

이때 읽어 보면 좋은 책이 바로 ‘어디서 살 것인가‘다. 이 책에서는 도시와 공간을 읽는 방법을 제시한다. [제1장, 양계장에서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에서부터 [제12장, 공간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건축과 공간에 대한 유현준 교수님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제1장은 ‘우리나라 국민의 60퍼센트는 똑같이 생긴 아파트에 산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마 해외에 있다가 온 사람들은 더 크게 공감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전부터 아파트가 많기는 했지만 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도 똑같은 모습을 한(직각으로 길게 뻗은) 아파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전에 중국 출장때 똑같은 모양새를 한 아파트들이 대규모로 여기저기 지어지는 모습을 보고 놀랬었는데 우리나라가 그렇다.

이런 현상은 학교 건축물에서도 나타난다. 네모 반듯한 교실과 학교건물, 그리고 운동장. 어느 지역을 가건 다르지 않다. 이웃나라 일본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12년동안 움직여야 하는 양계장 같은 학교 건물에서 창의적인 인성을 가진 사람이 나오기 어려운게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그래서 건물은 낮게 만들고 자연과의 접근성을 높이고 천장을 높고 다양하게 만들어 아이들이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 한구절
교도소와 학교 건물 모습을 비교한 사진. (출처, 어디서 살 것인가. 책 27쪽)

제4장에서는 쇼핑몰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는 이유를 살펴본다. 1백 미터를 걸어가면서 내가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는 가게 입구 숫자를 ‘이벤트 밀도‘다. 서울 유명 거리는 보통 1백미터랑 30개 가게 입구가 있다고 하는데 아파트 단지는 6백 미터에 입구 하나 정도. 이제는 걷기 보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이런 도시 구조에서는 쇼핑몰과 같은 복합/대형 쇼핑몰이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으로부터 격리되다 보니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없다보니 대대적인 인테리어 리모델링이나 컨텐츠가 수시로 변화는 멀티플렉스 극장을 도입하게 되었다고.

이 외에도 과거와 현재 건축물들이 가지는 특징이나 우리 도시가 더 좋아지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 삶의 변화에 따라 건축물이 어떠한 이유에서 지금과 같이 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장소, 부동산을 넘어 인문학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정말, 어디서 살 것인가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 생각은 ‘건축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고층 건물이 생길 수 있었던데에는 강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고층건물이 생기니 고층에도 쉽게 오르 내릴 수 있는 엘레베이터가 발명 되었다. 요즘도 건축물들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다. 이제는 IoT, Ai 기술까지 접목되기 시작했다.

한편, 책 밖 현실 세계로 돌아와보면 ‘자본‘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떠오른다. 건축물, 특히 주거공간으로서 주택으로 보면 진화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진화를 명목으로 더 많은 ‘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치겠지만 같은 (아파트)건물 안에서도 리모델링 정도에 따라 수천만원 이상 가격 차이가 난다. 신축 건물은 연봉이 억대 이상이거나 자산이 어느정도 뒷받침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먼나라 얘기다. 현대판 계급사회가 따로 없다.

그렇다고 마냥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최신시설이나 접근성이 조금 부족한 대신 주변에 큰 공원이 있다거나 이벤트 밀도가 높은 지역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음 거주지를 알아 보고자 주말이면 지역탐방을 나가고는 하는데 경기도 남양주나 일산 서구, 경상남도 마산도 매력 넘치는 지역이다.

거리를 돌아보며 건물이나 거리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살피다보면 단순히 ‘집값’을 기준으로 바라볼때보다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살 것인지를 정하기 전에 어떻게 살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보자.


목차 살펴보기
  • 여는 글 | 다양한 생각이 멸종되는 사회
  • 1장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
    학교 건축은 교도소다 | 학교 종이 땡땡땡 | 지식은 책에서, 지혜는 자연에서 | 축구와 공부 | 스머프 마을 같은 학교 | 건물은 낮게, 천장은 높게 | 바뀌지 않는 학교 건축 | 새로운 학교 건축이 미래다
  • 2장 밥상머리 사옥과 라디오 스타
    잡스의 차고 | 천재를 키우는 공간 | 어떤 사옥이 바람직한가 | 고층형 사옥 | 밥상머리 사옥 | 수평적 사옥 | 애플 사옥의 장단점 | 라디오 스타 건축 | 경계의 모호성 | 시대정신과 건축 공간
  • 3장 힙합 가수가 후드티를 입는 이유
    쥐 이야기 | 1인 가구가 사는 도시 | 뉴요커가 좁은 집에 살아도 되는 이유 | 중력의 법칙과 공원의 거리 | 우울한데 엘리베이터나 탈까? | 보행 친화적 서울 만들기 | 도시의 공생활과 사생활 | 모텔 대실 | 힙합 가수가 후드티를 입는 이유 | 화장실 개수 | 중학생과 편의점 | 툇마루 계단실 | 1인 가구와 단기 임대 주거
  • 4장 쇼핑몰에는 왜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는가
    도시와 익명성 | 공공의 적, 상가 건물 | 쇼핑몰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는 이유 | 다도해 같은 도시 | ‘배달의 민족’이 바꾸는 도시 | 점 대신 선으로 | 핫플레이스의 변천과 스마트폰 | 사람 중심의 공간, 골목길 | 교통수단과 도로망 크기 | 풍경의 변화와 걷기의 즐거움 | 골목길은 갯벌이다 | 순진한 생각은 버려라
  • 5장 더하기와 빼기, 건축의 오묘한 방정식
    건축물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 진화의 몸부림 | 부활하는 건축 자재 | 제약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건축 | 건축의 대화 | 재즈와 리모델링
  • 6장 파라오와 진시황제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로마는 천 년 이상 지속됐는데 몽골제국은 150년 만에 망한 까닭은 | 고인돌은 왜 지었을까 | 로마의 벽돌과 그 이후 | 모아이 석상과 부르즈 할리파 | 낭비가 과시다 | 피라미드와 원자폭탄 | 권력의 위치에너지 | 위치에너지와 주가 총액 | 헤어스타일과 권력 |
  • 7장 현대인이 SNS를 많이 하는 이유
    건축vs 문자 | 상가 교회는 실리콘밸리의 차고 창업 | 남녀공학과 교회 | 단상 위의 사람은 왜 권위를 가지는가? | 그리스 민주 사회를 만든 극장 | 왜 정치 집회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가 | 권력은 좌우대칭에서 나온다 | 현대인이 SNS를 많이 하는 이유 | 높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 | 권력을 창출하는 계단 | 우리에게 제국이 없는 이유 | 엘리베이터가 죽인 계단
  • 8장 위기와 발명이 만든 도시
    현대 도시를 만든 백만장자 | 고층 건물의 아버지, 카네기와 오티스 | 전기의 시대로 | 등유에서 휘발유로 | 조선업 불황과 건축 | 동굴부터 아파트까지 | 왜 수메르인이 최초의 문명을 만들었는가 | 빙하기와 도시 | 기후와 건축 재료와 건축양식 | 유리창 이야기 | 창문과 종이 | 창문세와 쇼윈도의 등장 | 유리창의 미래
  • 9장 서울의 얼굴
    3차선 법칙 | 보톡스 도시 | 조선 vs 대한민국 | 첼시 재개발이 쉬운 이유 | 삼성동 타임스 스퀘어 | 갤럭시와 서울역 고가공원 | 냉장고를 부탁해
  • 10장 우리 도시가 더 좋아지려면
    서울숲 다리 | 공원의 담을 없애자 | 숨바꼭질 공원 | 마을 도서관 | 강남을 꿈꾸는 개발 | [블랙 팬서]의 메시지
  • 11장 포켓몬고와 도시의 미래
    보일러 빅뱅 | 인터넷 빅뱅 | 여행 vs 만화 | 물질에서 정보로 | 관계의 증폭에 의한 창조 | 네트워크를 만드는 원시적 방법: 언어 | WWW | 텅 빈 도로와 주차장 | 지하 농장과 도로 발전 | 새로운 엘리베이터 | 포켓몬고와 공간의 경계 | 공유 경제 = (사회주의 × IT 기술) ÷ 자본주의 | 중추신경계의 완성 | 유시민과 정재승
  • 12장 공간의 발견
    벽 | 창문 | 기둥 | 지붕 | 길 | 다리 | 징검다리 | 다리 밑, 영원의 공간
  • 맺는 글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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