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인턴 첫 미션, 일본 시장조사 하기
6개월 과정 일본 인턴으로 도쿄에 건너왔다. 도쿄에는 이미 일본 IT취업으로 건너온 대학 선배들이 여럿 있었다. 주말이면 그들과 만나고는 했다. 일본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아직 배고프던 시절, 그들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도쿄 생활에 순탄하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 덕분인지 모른다.

하지만 한인 기업 일본 인턴으로 온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 업무 분야도 IT가 아닌 마케팅 분야.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회사에서 부딪히며 익히는 수밖에.
정식적인 일본 취업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으로 ‘나는 인턴이 아니고 정사원이야’라고 여러 번 되뇌었다. 그것이 필승 구호였다. 사실 함께 근무하는 다른 인턴생들은 대학 휴학 중이거나 취업 준비생이었다. 취업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에 비한다면 나는 중고 신입이자 인턴.
내가 속한 회사(본사)는 한국 상품을 판매하는 유통 회사였다. 도쿄 코리안 타운인 신오쿠보에 슈퍼매장도 가지고 있었다. 국제전화카드 판매로 사업을 시작해 회사 이름에 통신이 남아 있었다. 다만 인턴근무를 하게 된 오다이바팀은 본사와는 별개로 한국 중소기업의 일본 진출 컨설팅을 전담하는 곳이었다.
인턴에게 맡겨진 주요 업무는 일본 시장조사, 전시회 및 상담회 운영 보조, 상품 판촉회 등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민간 버전이다. 일본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한국기업을 대신해 일본시장에 대해서 알아보고 제안하는 일. 한일 간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던 작은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 시장조사는 주로 인터넷 리서치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일본어 커뮤니케이션은 서툴렀어도 글을 읽거나 쓰는 대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대학 전공 공부가 이때 도움이 되었다. 정보를 찾고 그래프를 만들어 넣고 경쟁사 상품을 분석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한 편의 시장보고서가 완성되었다.
부족한 정보가 있다면 직접 발로 뛸 수 있다. 그것이 일본 현지에 있다는 가장 큰 장점 아닐까. 오다이바에는 일본 최대의 국제 전시장인 ‘도쿄빅사이트’가 있다. 홈페이지에서 미리 전시회 정보를 확인하고 사전방문신청을 해두었다.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기업들과 제품들을 사진과 글로 기록해 왔다.
인턴이 작성한 보고서는 상사들의 검토를 거쳐 한국기업(정확히는 기관)에 제출되었다. 한 편, 두 편 시장보고서 작성이 마무리될 때면 그 뿌듯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첫 직장에서 매일 같이 실수로 욕먹었던 나지만 이곳에서는 칭찬을 받았다. 일이 재밌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도쿄 하라주쿠, 메이지신궁 주말 여행기
평일은 인턴 모드였다면 주말은 관강객 모드. 아침 6시에 일어나 씻고 백팩 하나를 둘러메고 밖으로 나섰다. 여행이 아니니 시간에 쫓기듯 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저 체력이 닫는 만큼 걷고 보면 됐다. 장소만 정할 뿐 시간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도쿄에 온 지 한 달이 되어 처음으로 하라주쿠(原宿)를 가게 되었다. 하라주쿠는 젊은이들의 패션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다. 다양한 일본발 스트릿 브랜드가 시부야, 하라주쿠에서 태동했다.
하라주쿠역에서 내려 바로 건너편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는 것으로 유명한 다케시타 도오리(竹下通り)가 있다. 무서우리 만큼 길에 사람들이 한가득 몰려있다. 사진으로만 보다가 직접 보니 신기하기도 하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양 옆으로 다양한 샵들이 늘어서 있다. 주로 패션 관련 매장들이다. 그 외 다이소나 크라페 전문점들도 자리하고 있다. 사람이 물밀듯 몰려드니 제대로 구경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케시타도오리를 따라 주욱 걸어 내려갈수록 조금씩 인파가 적어지고 보통의 여유를 되찾게 된다. 이곳에도 다양한 패션 매장들이 있다. 판매하는 옷들도 갸루 스타일에서 점점 캐주얼 쪽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우라하라주쿠(裏原宿)에 온 것이다.
매장에 들어가 아이쇼핑을 해본다. 한국에서 옷 쇼핑할 때도 일본 스타일 패션몰에서 주로 사고했었는데 도쿄에 왔으니 우라하라주쿠에서 직접 입어 보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 옷 살 때 들를 매장도 몇 개 정해 놓았다.
하라주쿠 일대를 둘러보고 나서 바로 옆에 있는 메이지 신궁(明治神宮)에 들러보았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신사, 번화가 바로 옆에 커다란 신사가 있는 것이 신기했다. 전체 넓이도 70만 평방미터로 신사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도심 숲에 가깝다.
메이지신궁 입구의 토리이(鳥居)를 지나 안쪽 산책로를 따라 본전까지 가는데 대략 10분 정도 소요된다. 가는 길목에 술통으로 이루어진 벽을 볼 수 있다. 메이지 신궁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이들은 신사 내 행사 때 쓸 목적으로 양조업체에서 기증한 것이라고.

경내에는 다양한 인파들로 북적였다. 나와 같은 관광객은 물론 전통 혼례를 치르는 사람들도 더러 볼 수 있었다. 크기가 큰걸 제외한다면 여느 신사와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메이지신궁은 조선 침략의 원흉인 메이지천황(일왕)을 신격화한 곳이다. 그래서 에마(絵馬) 등 명패에 소원을 적어 걸거나 기도를 하는 행위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
메이지신궁 구경까지 마치니 제법 피로가 몰려왔다. 이 정도만 보고 다시 돌아가기로 한다. 도쿄에 있는 동안 몇 번이고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북적이는 도쿄 시부야의 한 지점에 내가 서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도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