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일 월요일. 도쿄 닛뽀리에서 나리타공항행 스카이라이너에 올랐다. 캐리어 하나로 충분했던 그동안과 달리 와이프 몫과 가방까지 포함해서 총 4개. 길고 길었던 일본 생활에 작별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13년 9월 5일(목). 지마켓에서 산 커다른 이민가방에 옷, 책, 노트북, 냄비 등 조리도구 일부를 가득 담아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혼자 낑낑거리며 이민가방을 끌고 미리 해 온 메모를 참고해가며 쉐어하우스로 향했다.

도쿄에서 처음 살았던 쉐어하우스 주변. 도쿄 고토구.
도쿄에서 처음 살았던 쉐어하우스 주변

정부지원 해외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6개월 일정으로 왔던 일본. 인턴 중이던 회사에서 정사원 제의를 받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일본에 정착하게 되었다. 남들은 처음 취업비자를 1년짜리 부터 받는다고 하던데 나는 운이 좋게 단번에 3년짜리를 받았다. ‘아, 일본에 오래 살아도 된다는 계시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어릴때부터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고등학교 2학년때 일본 홈스테이를 체험하고 난 이후다. 대학때도 ‘일본학’ 전공을 했다. 원래는 일본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교직 이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복학하고 나서 교환학생 추천을 받았는데 내손으로 거절했다. 취업은 해외영업팀 일본 담당으로 했는데 정작 일본 바이어 앞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이때 너무도 부끄러웠고 내 자신이 한 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더 늦기전에 일본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멀리 돌아오기는 했지만 마침내 일본행 티켓을 손에 거머쥐었다. 그래서 였는지 일본에서의 하루 하루는 너무도 소중했고 즐거웠다. 일이 없는 주말이면 아침 6시부터 집(쉐어하우스)을 나섰다. 기차를 타고 도쿄 근교 여기저기를 바삐 돌아다녔다. 인턴때는 일본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에 미리 지도를 프린트해서 다녔다. 데이터 난민이었지만 행복했다. 그렇게 2년, 3년이 지나는 동안 일본의 매력에 흠뿍 빠졌고 사랑하는 와이프와도 만나게 되었다.

일본에서 10년이상 거주(재류) 하게 되면 영주권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2022년 12월 4번째 비자를 받았다. 영주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선배들이 늘 부러웠었다. 일반 취로 비자와 달리 영주권은 참정권을 제외하고는 일본 사람과 거의 동등한 법적대우를 받을 수 있다. 어떤 일을 해도 상관 없고 사업을 해도 된다. 주택대출도 수월해진다. 그런데! 고지가 코 앞인 시점에서 돌연 한국행을 선택하게 된다.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취로비자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취로비자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일본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변함 없는 모습 때문이다. 처음 갔을 때와 1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모습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살기 편하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스펙터클하게 변하고 있었다. 선진국 반열에도 올라섰고 K-POP을 시작으로, K-CONTENT, K-BEAUTY, K-FOOD 등 전세계에 ‘K’열풍을 몰고 왔다. 단적인 예로 BTS 같은 그룹의 가창력과 퍼포먼스는 예술에 가까운 경지에 올라섰다. 그에 비해 많은 J-POP 그룹들은 여전히 2000년대 초반 감성 그대로다.

일본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이 ‘한결 같음‘ 때문이 아닐까. 바닥이 깊고 단단하다. 하지만 잔잔하고 고요하다. 왠만해서는 물잔이 흘러 넘치는 일이 없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무렵부터 여러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고요한 사람인가?’

적어도 2013년 당시까지는 ‘고요함’을 원했다. 그래서 취업난이다 뭐다 정신 없는 대한민국보다 일본이 적합했다. 하지만 20대에서 30대, 3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오면서 고요 보다는 ‘변화’를 더욱 갈망하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코로나19를 겪으며 ‘자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앞으로 몇 번의 팬데믹을 더 맞이하게 될까. 이때 흔들리지 않으려면 변화하고 진화하고 깨우치고 모아서 자산을 증식시켜야 한다. 그러기에는 일본보다 대한민국이 더욱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본을 떠나는 비행기에 안.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나리타공항과 치바(千葉県) 일대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10년간의 여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제2의 고향이라고 여겨왔던 도쿄를 완전히 떠난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모르게 뭉클해진다. 하지만 이도 잠시.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금새 담담해졌다.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나리타공항.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에 돌아온지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일본과 다른 라이프스타일에 적응하느라 정신 없었다. 이제야 간신히 한숨 돌리는 중이다. 그동안 일본이 그리웠던 적은 없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다만 이따금씩 집 근처에서 먹었던 새우향 가득한 츠케멘(つけ麺)과 주말 산책 후 먹었던 초밥이 생각난다. 일본에 다시 가게 되면 시원한 나마비루(生ビール)와 함께 꼭 먹고 와야겠다.

2 Comments

  • 라이언
    라이언
    2024년 4월 29일 at 10:49 오후

    고요보단 변화를 갈망하는 점진적인 모습이 보기 좋네 ㅎㅎ 나도 배워야 할 듯. 무엇보다 그 변화를 함께 고민하고 끌어안아 줄 수 있는 배우자가 바로 옆에 있다는게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싶다! 늘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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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민
      2024년 5월 1일 at 2:10 오후

      저도 라이언님 항상 응원합니다 🙂 변화를 갈망하지만 실상은 커피 마시면서 고요하게 있는걸 좋아하는 INFJ라는 사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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