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원하던 일본 비자를 손안에 넣었다. 적어도 3년 동안은 일본에서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다. 리턴 티켓을 예약할 필요도 없다. 월급 받을 자유도 생겼고 집을 계약할 자유도 주어졌다.
일본 행정처리의 시작은 전입신고다. 비자를 발급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사를 가면 주민센터에 가서 주소지를 옮기듯 일본에서도 전입한 지역에 14일 이내 주소지 신고를 해야 한다. 성격이 급한 나는 입국관리국에서 나와 바로 구약소(区役所)로 향했다.
일본 행정처리의 시작! 전입신고
이날 전입신고를 한 곳은 도쿄 고토구(江東区). 구약소 1층 책상에는 각종 신청 서류가 비치되어 있었다.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지 외국어 서류 작성 예시문이 여럿 보였다. 걔 중 한국어도 있었다.
전입신고서에 인적사항과 거주지 주소를 적었다. 도쿄도 고토쿠 스미요시… 서류 작성을 끝마치고 대기표를 발급받고 기다렸다. 외국인 전용 상담 코너도 있었지만 일본어를 써먹어 볼 요령으로 일반 대기를 선택했다.
의자에 앉아 상담 부스에 내 번호가 뜨기를 기다린다. 천장에 달린 모니터를 통해서도 번호 확인이 가능하다. 평일 낮시간대로 사람이 적다. 얼추 10분이면 끝나리라 예상했던 기다림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일본이 행정처리가 느리다던데 정말인 걸까.
추가로 수 분을 기다린 후 내 차례가 되었다. 어색하게 적은 일본어가 담긴 전입신고서와 재류카드를 담당 공무원에게 전달했다. 서류를 이것저것 살펴보더니 어디선가 두꺼운 파일철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파일철을 펼치니 주소지별 구역도가 나왔다. 내가 신청하려는 주소지가 이 위치가 맞는지 확인했다. 동일한 번지수에 여러 집이 있을 수 있기에 확인하는 절차인 듯하다. 집 위치야 이미 반년을 살았기에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공무원이 가리킨 곳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으라는 안내를 받은 뒤 10여분이 흘렀다. 부스에 내 번호가 떴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앞서 건넨 재류카드를 다시 돌려받았다. 재류카드 앞면에는 주소지 ‘미정(未定)’이라고 기재되어 있지만 뒷면에는 공무원이 손 수 적어준 주소지가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고토구민이 되었다. 전입을 축하한다며 한글로 적힌 ’ 고토구 생활 가이드’도 한 권 건네받았다. 도쿄에 온 지 반년만에 정식적인 신분증과 주소지가 생겼다. 일본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일본 인감증명 만들기
전입신고를 끝마치고 나서 곧바로 인감증명 신청을 했다. 일본도 도장 문화다. 은행이나 각종 거래를 위해서는 인감이 필요하다. 일본 오기 전에 미리 만들어 두었다. 아무래도 값이 한국이 저렴하니까. 일본 인감도장 사이즈는 13.5, 15.0, 16.5, 18.0mm가 일반적이다. 8mm이상 25mm 이내여야 한다.
방금 주소지 기재까지 마친 재류카드와 인감도장을 가지고 인감등록 창구로 갔다. 마찬가지로 구비된 서류에 내용을 기재하고 창구에 제출했다. 인감카드에 사용할 비밀번호 입력을 제외하면 별다른 절차는 없다.
인감도장 등록을 마치고 곧이어 건강보험 가입을 진행했다. 보통은 회사에서 4대 보험 가입을 하기 때문에 구약소에서 별도로 신청할 필요가 없다.

다만 나의 경우는 아직 4대 보험 가입 전이었고 언제 회사에서 가입 처리를 해줄지 미지수였다. 그래서 구약소 온 김에 신청을 했다. 인감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대략 1~2시간 걸려 구약소 행정처리가 마무리되었다. 일본오기 전 예상했던 것만큼 악명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다른 나라 경험담을 들어봐도 그렇다. 일본 행정처리가 느리다기보다 우리나라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다고 보는 게 맞다.
일본 통장개설하기
마지막으로 통장개설을 하러 은행으로 향했다. 일본 대표은행으로는 미츠비시UFJ은행, 미즈호은행, 미츠이스미토모은행 등이 있다. 내가 최초 개설한 곳은 미츠비시UFJ은행.
대게 회사마다 급여 받을 은행을 지정해준다. 첫 회사는 미츠비시 또는 미즈호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버스타고 오가며 자주 보왔던 미츠비시UFJ를 선택했다. (광고 모델이 이시하라 사토미였던 이유도 있다.)
미츠비시 은행은 일본에 거주한지 얼마 안된 외국인에게 통장 발급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봤었다. 그래서 비교적 발급을 잘해주는 유쵸깅꼬(우체국 은행) 통장을 발급 받으라는 조언도. 내심 통장을 안만들어 주면 어쩌나 걱정했다.
따끈따근한 재류카드와 인감증명, 그리고 회사 명함 등을 지참해서 집 인근에 있는 미츠비시UFJ 은행으로 향했다. 통장개설 하러 왔다고 말하고 얼마뒤 계좌 개설 상담을 받았다. 걱정과 달리 회사 급여를 받을 목적이라고 하니 금새 통장을 발급 받았다.

은행원에게 일본은행 거래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이어 들었다. 보통 오후 3시면 은행업무 마감인데 이 시간 이후 입금분은 (특히 타행계좌일 경우) 익일 영업일에 송금이 완료 된다고 한다. 만약 금요일 오후 3시 이후에 입금한다고 하면 실제로 송금이 완료되는건 다음주 월요일이다. 우리나라 같은 실시간 계좌이체 개념이 아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불편한 부분이지만 일본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본에 살기로 했으니 익숙해져야지. 이곳에서 한국의 대단함을 새삼 실감한다. 빨리 빨리 문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