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비자 받고 도쿄 오다이바에서 시작한 일본회사 생활 이야기. 자존감 회복하고 한국과 일본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느낀 성취와 행복을 기록했습니다.
일본회사 취업 후 일상

일본에서 취업비자도 받고 집 계약도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그토록 바라던 일을 이루어 냈으니 이보다 행복할 수가 있을까. 시간을 거슬러 고등학교때, 일본 홈스테이 이후 일본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인생 첫 목표가 생겼고 대학에서 교직 이수 실패 후 방황했었다. 첫 취업은 일본 해외영업이었지만 일본어도 제대로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내리막만 있을 줄 알았던 내 인생에도 드디어 봄날이 찾아 온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일요일 밤만 되면 월요일병으로 심장이 요동을 쳤는데 오히려 다음날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회사에 가서 나의 쓸모를, 그것도 일본에서 보여줄 수 있으니까.
오전 6시, 출근 준비를 위해 몸을 일으켰다. 당시 살고 있던 도쿄 고토구 스미요시에서 회사가 있는 오다이바까지는 버스로 1시간 이상 걸렸다. 직행하는 버스가 없어 몬젠나카쵸에서 갈아타야했다. 이동시간은 편도 1시간 10분. 하지만 그 여정이 결코 힘들지 않았다. 가는 길에 일본어 공부를 했다. 외국어를 공부 하자마자 바로 쓸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한편 오다이바는 매립으로 만들어진 인공섬이다. 다이바는 방어 목적으로 만든 포대라는 뜻으로 이곳은 1980년대 버블 경제 시기에 매립되어 신도시로 조성되었다. 1990년대 이후 상업 및 거주 시설 등이 대거 들어서기 시작했다. 후지TV를 비롯 산토리 등 여러 기업 본사, 다이바시티 등 쇼핑시설 들이 들어서 있어 도쿄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북적이는 주말과 달리 평일에는 다소 한산하다. 낮시간대는 회사원들이 보이지만 밤 8시만 넘어서도 주변이 어둡고 왕래하는 사람들도 적다. 늦은시간까지 하는 식당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야근이 있는 날이면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와서 먹고는 했다.
그럼에도 그런 것들이 하나도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근무 시작시간인 오전 9시보다 30분 일찍 도착해 사무실 문을 열고는 했다. 회사 바로 앞은 도쿄만(東京湾)이 자리잡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불기는 해도 어릴적 느끼던 바닷바람 냄새를 맡으며 걸을 수 있는 것도 큰 축복이었다. 이른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에 느꼈던 오다이바의 공기는 미세하게 달랐다. 그 차이를 맡보는 것만으로도 업무에서 오는 피로를 달래기 충분했다.

회사내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부장님을 포함한 6~7명의 소수정예 멤버로 독립 되어 움직이는 팀으로 서로 허물없이 지냈다. 간혹 실수해서 혼나기도 했지만 금새 으쌰으쌰 할 수 있는 구성이었다. 가끔 주말에 모여 술 한잔 하기도 했다. 위계질서가 엄격했던 첫 직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한국과 일본을 잇는 일
일도 재밌었다. 한국 중소기업의 일본진출을 서포트(소위 무역 컨설팅)하는 일로 시장조사, 바이어 섭외, 홍보자료 작성, 전시회/상담회 운영 및 서포트 등이 주요 업무였다. 일본어 선생님과는 다르지만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목표와도 잘 맞아 떨어졌다.
업무중에는 시식판촉회도 있었다. 회사 본사는 도쿄 한인타운인 신오쿠보에 위치해 있었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한국슈퍼마켓을 운영중이다. 컨설팅 상품 중 식품의 경우는 이곳에서 일본인 손님을 대상으로 시식과 앙케이트를 진행했다. 아직 K-POP이나 K-FOOD가 대중적이지 않았던 때라 ‘쌈장’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다. 오이 등 야채에 찍어 간단한 시식을 권해도 10에 6은 거절했다.
“색깔이 빨개서…”
붉그스름한 색상탓에 매울 것 같아 거부감이 든다는게 이유였다. 쌈장은 맵지 않고 오히려 구수하고 고기나 야채맛을 복돋아 주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시식을 권했고 막상 먹어보니 꽤 먹을만 하다며 일부는 그 자리에서 쌈장을 구매해 가기도 했다. 아이랑도 함께 먹어보겠다며.

쌈장 외에도 도시락김, 미숫가루 등 식품부터 이미용 제품, 아이디어 상품까지. 일본 소비자들의 반응을 들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세한 차이마저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상품이 일본에서 인정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항상 염두해두며 업무에 매진했다.
만약 일본에 가지 않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들고는 했다. 첫 직장 퇴사 이후 자존감이 바닥 났었다. 군대 이등병때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잘한다고 생각 했던 것들이 사실은 형편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알았던 그 순간. 지난 십여년간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일본행을 통해 이 모든 좌절을 극복해 냈다. 그리고 하루 하루가 즐겁기까지 했다. 일본에서 평생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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