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히가시 신주쿠의 모바일 악세사리 회사에서 진행된 면접과 채용 경험기. 긴장되는 일본 이직 면접 순간과 팀장으로 입사 확정된 전직 스토리를 담았습니다.
일본에 가서 5년간은 한국계 회사에만 있었다. 한국계 회사가 편한 점은 대부분 의사소통이 한국어라는 점이다. 거래처 미팅이나 외부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만 일본어를 사용했다. 사실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동유모에서 찾은 이직 기회
그래서 한국계 회사는 피하고 싶었다. 애초에 동유모 같은 한국 커뮤니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동유모는 동경유학생모임 다음 카페다. 제법 역사도 있고 대학 다닐 때도 워킹홀리데이 준비하던 선배들이 자주 정보를 수집하던 사이트다.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이 필요해서 몇 차례 구인공고를 올린 적이 있었다. 주로 신오쿠보 일대 음식점 관련 내용이 많지만 간혹 IT나 유통회사, 또는 한국인이 필요한 일본 회사 안건들도 올라온다.
연이어 전직 시도가 불발되면서 조바심이 생겼다. 언제까지 돌다리만 두드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동유모 구인 게시판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일본인 비중이 높아 보이는 회사 위주로 찾아보기로 했다. 조금 마음을 고쳐 먹으니 몇 개의 구인공고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바일 액세서리 유통 회사 영업지원 담당 모집’
걔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공고다. 회사 위치는 히가시 신주쿠(東新宿). 지금 회사도 신주쿠에 있고 출퇴근 시간은 40분 정도면 가능했다. 짧게나마 해외영업직을 경험하면서 영업지원부서가 하는 일도 대강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온라인 쇼핑몰이나 마켓 리서치와는 전혀 다른 분야이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바로 이력서를 작성하고 메일을 보냈다. 부디 이번에는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일본 이직 1차 면접
때는 2018년 3월 초. 회사로부터 면접 연락이 왔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면접 준비를 했다. 취업준비생일 때 보다 더 공들였다. 한국계 회사라고는 해도 여기는 일본 아닌가. 일본어와 한국어 양쪽 모두 준비했다.
긴장되는 면접 당일. 그 어느 때보다 구김 없는 슈트. 회사에 도착해 인터폰(우케츠케 뎅와)으로 면접 보러 왔음을 알였다. 직원 안내로 회의실에 들어갔다. 모바일 액세서리 회사답게 스마트폰 케이스부터 여러 가젯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상품들을 둘러보는 사이 두 사람의 면접관이 등장했다.
한국인 중년 여성과 일본인 중년 남성. 각각 회사 사장님과 영업부장님이었다. 사장님과 간단하게 우리말로 스몰토크를 후 일본어로 면접이 진행되었다. 일본인 앞에서 일본어로 오래 말하는 건 홈파티 이후로 처음이다. 긴장도 잠깐, 혀가 잠깐 꼬이긴 했지만 그동안 준비해 왔던 멘트들을 모조리 내뱉었다.
사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정신이 혼미했다. 모든 면접이 그렇다. 그저 그 순간에 내가 이해하고 내뱉은 말이 상대가 원하는 (또는 흡족해할 만한) 답변이었길 바랄 뿐이다. 생애 첫 면접 때 겪었던 압박면접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 있다. 다행히 그날 이후 같은 역사는 반복되지 않았다.
면접을 끝내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길. 히가시 신주쿠에서 세이부 신주쿠역까지는 도보로 10분 남짓. 앞으로 매일 출퇴근하면서 보게 될 풍경이라고 생각하니 느낌이 묘했다. 불과 한 블록 차이인 신오쿠보와는 느낌이 또 다르다. 일본 대표 할인매장인 돈키호테가 있고 그 건너편으로 환락가인 가부키쵸가 있다. 그 사이를 거닐었다.
2차면접과 최종 결과
며칠 뒤 사장님으로부터 2차 면접을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경험상 보통 2차 면접은 채용 전 마지막 점검이다. 다행히 예상대로였다. 1차 때와 같은 회의실에서 이번에는 사장님과 나, 단 둘이 대면했다. 서피스 노트북을 펼쳐든 사장님은 1차 면접 때 인상에 대한 피드백과 함께 근무조건에 대해여 알려주었다. 팀장급 직책으로 바로 시작하자는 말과 함께.
영업지원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해왔던 내게, 좋은 조건을 제시한 대에는 이번 회사 (주식회사 최고) 창업 과정을 높이 평가했다는 이유가 덧붙여졌다. 이 회사에서 많이 배우고 성장해서 회사를 이끌어 가보라는 조언도 함께.
“저도 이제 은퇴해도 되겠어요. 잘 부탁할게요. 형민 씨”
면접 말미에 사장님이 건네온 인사가 너무도 황홀했다. 일본말에 오코토바니 아마에떼(お言葉に甘えて)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 하자면 ‘그 말대로’쯤이 될까. 새로운 분야에서 일하고 역량도 기르겠다고 시작한 전직이었지만 더 큰 욕심이 생겼다.
‘그 말대로 내가 차기 임원, 아니 사장이 된다. 나는 이제부터 사장이다.’
머릿속으로 수 없이 돼 내었다. 반년에 걸친 전직은 더 큰 무대로 나가기 위한 준비였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채용통지 연락을 받았다.
입사일: 2018년 4월 9일 월요일, 부서:영업부 영업지원팀, 직책: 팀장. 이제 앞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기차처럼 성공가도를 달리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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