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사회생활 하며 처음으로 방 계약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도쿄 고토구에 위치한 월 7만엔 정도 원룸으로 외국인 계약 OK에 보증금(시키킹:敷金)과 사례금(레이킹:礼金) 0인 이벤트 물건이었다.
그곳에서 계약대로 약 2년정도를 살았다. 구조는 상당히 심플한데 방과 주방이 하나로 트인 원룸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런 형태를 1R이라고 부른다. 1R과 비슷한 형태로는 1K, 1DK가 있는데 주방과 방이 분리되어 있는지 차이다.
이번에 일본 출장으로 에어비엔비를 통해 원룸을 예약했다. 도쿄 스기나미구(杉並区)에 있는 곳으로 5층짜리 신축건물이다. 한 층당 5개룸이 있다. 다행이 엘레베이터가 있다. 이전에 살던 건물은 엘레베이터가 없어서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각 룸 현관문 앞에 인터폰이 달려있다. 문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번호식 출입문이다. 보통 임대물건은 열쇠나 카드키를 많이 쓴다. 집 계약때 받은 열쇠 중 일부를 잃어버리면 집 퇴거할때 열쇠 장치 교체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나도 물어주고 나왔었다 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펼쳐지는 일본 원룸(1R)의 향기. 이게 끝이다. 대략 4조(量)정도 되는 것 같다. 싱글침대 두개와 작은 테이블 하나로 방이 가득찼다. 자고 TV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던 일본 원룸생활 시절. (참고로 이 방에는 TV가 없다.)
현관 출입문을 기점으로 화장실문, 세탁기, 싱크대가 있다. 이곳은 인덕션(IH)를 쓰는 룸이다. (이곳은 룸 관리차원에 사용을 금지한 상태. 그 위에 작은 미니 냉장고가 놓여져 있다.) 원룸은 보통 1구짜리가 많다.
일본 집은 보통 세탁기 놓는 위치가 정해져있다. 세탁기를 올려 놓을 수 있는 발 받침(?)과 수도, 배수관이 설치되어 있다. 오랜만에 보는 일본 통돌이 세탁기. 메뉴는 많지만 세제 넣고 전원 키고 스타트(スタート)버튼 누르면 끝!
여기는 화장실. 세면대와 좌변기가 붙어 있는 독특한(?) 구조다. 전에 살았던 곳은 화장실은 따로 떨어져 있었다. 참고로 일본 집은 건식 화장실이 많다.
이곳은 신축이어 그런지 건식 세면대가 있다. 세면대에는 거울과 드라이기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 각종 위생용품을 비치할 수 있는 수납함이 달려있다.
대망의 샤워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깔끔한 내부가 등장한다. 바닥은 우리나라와 달리 플라스틱 질감이다. 무엇보다 샤워실에 달린 저 세로로 긴 거울이 가장 마음에 든다. 면도할때도 편하고 가끔 물에 젖은 내 모습에 자아도취 되기도…ㅋ
작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욕조까지 딸려있다. 반신욕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작고 아담한 욕조. 느닺없는 일본스러움이 느껴진다.
이곳에는 없지만 자동으로 물을 받아주고 데워주는 시스템이 있는 욕조도 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미리 욕조 물 받아놓게 세팅해두고 욕조에 물이 찼다는 알림음이 울리면 목욕을 하고는 했다.
한편 이곳 샤워실을 보면 창문이 없다. 환기는 천장에 달려 있는 환기구를 통해서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환기구보다 창문이 있는 욕실이 좋다. 관리 잘못하면 욕실 곳곳에 곰팡이가 ㅠㅠ
환기구가 있는 샤워실에는 보통 이런 버튼이 달려 있다. 24시간 환기는 기본으로 건조(乾燥), 양풍(涼風), 난방(暖房), 환기(換気) 등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이 중 옷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건조버튼은 정말 빨래를 건조시킬때 쓴다!
샤워실에 그래서 봉(걸이)이 있다. 옷을 걸어 놓고 건조버튼을 누른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빨래가 뽀송뽀송 잘 마른다.
이제 다시 룸으로. 보통 일본 집에는 벽걸이형 에어컨이 달려 있다. 여름에는 냉방, 겨울에는 난방 모드를 작동시킨다. 일본에 살면서 한국식 온돌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겨울에 에어컨 난방을 키고 있으면 얼마나 건조하던지…ㅠ
벽면에는 인터폰과 전등 스위치 그리고 에어컨 리모컨이 달려 있다. 현관에 암호키를 누르거나 키로 잠금을 해제하고 들어가야 하는 곳들이 많은데 이곳도 그렇다. 치안이 그만큼 좋으니 혼자사는 여자들도 안심할 수 있다.
그 앞으로 크로젯이 자리잡고 있다. 원룸은 대체적으로 수납공간이 부족하다. 이곳 원룸의 경우 크로젯 안이 오시이레(押入れ)처럼 위, 아래 두칸으로 공간구분이 되어 있다. 하지만 살다보면 이것만으로는 당연히 공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별도로 행거를 설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걸로 도쿄 원룸 구경 끝. 이게 다다. 이 원룸의 경우 역까지 도보로 3분거리여서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아마 월세(야찡)였다면 8만엔대 이상은 했을 것 같다.
교통이 편하면 방이 좁고 금액이 비싼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차이가 없다. 발코니도 없으니 빨래는 방안이나 샤워실에서 말려야 한다. 둘 이상 사는건 어림도 없을 듯. (아마 1인 거주자만 계약해주지 싶다.)
그나마 창 밖으로 높은 건물이나 가로막고 있는 벽이 없어서 시야가 트여있고 햇빛도 잘 들어서 답답하지 않다.
일본에서 원룸 살이 했을 때는 집안에서 할 수 있는게 제한되다보니 자주 밖으로 돌아다녔다. 그러다 거실이 딸린 1LDK룸으로 이사하면서 점점 집돌이가 되어 갔다. 그래도 좁디좁은 일본 비즈니스 호텔보다 이곳에서의 1박이 더 매력적이었다. 오랜만에 옛향수에도 젖어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