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왜 지금이야…!?”

언제나처럼 분주한 아침 출근길, 그리고 1분 1초라도 빨리 집에 닿고 싶은 저녁 퇴근길. 주로 전철(電車)로 이동하는 일본 도쿄에서의 생활에서 가장 큰 불청객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인신사고’ 일 것이다.

일본에서 지진만큼이나 피하고 싶은 존재(!)가 바로 인신사고이다. 인신사고가 발생하면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이상은 발목이 잡힌다. 사실 지진보다 더 자주 마주하는 그 존재, 그래서 더 피하고 싶은 그 사실.


인신사고가 뭐야?

인신사고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안쓰이는 표현 같은데 人身事故라고 쓰고 진신지코(じんしんじこ)라고 읽힌다. 일본어 사전에서는 ‘인사 사고(다치거나 죽거나 하는 사고)’라고 뜻 풀이가 되어 있다.

일본에 왔을 무렵 역 전광판에 보이는 이 낯선 표현에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했다. 한국에서 배웠던 단어나 JPT 같은 일본어 시험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단어이다.

“인신사고라는거보니 누가 역에서 다친건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전철 운행 중간에 갑자기 아픈 사람(急病人)이 있어 대응으로 잠시 열차가 정차한다는 아나운스를 수시로 접했기 때문이다. 눈 앞에서 사람이 픽픽 쓰러지는 경우도 이따금씩 목격한다.

다만 아픈 사람 대응과 인신사고 대응에는 상당한 시간차가 발생했다. 전자는 대략 10분~30분 이내로 마무리가 되는데 반해 인신사고는 짧아도 1시간 이상이었다.

하루의 피로를 끌어안고 퇴근하는 길, 집에 가는 열차가 인신사고로 지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불현 듯 야후재팬을 켰다. 그리고 실시간 검색 기능에는 트위터(일본사람들은 트위터도 많이 쓴다.)에 올라오는 인신사고 현장 사진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아… 자살이구나!”

일본 열차 운행이 재개되자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몰려드는 인파
열차 운행이 재개되자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몰려드는 인파

내가 탄 열차가 인신사고가 나다

일본에 인신사고가 많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역시나 스크린 도어가 적은 것이 한 몫 할 것이다.

도쿄 역(駅)들 중 일본 사람들에게도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신주쿠역(新宿駅)에는 스크린 도어가 없다. 정말 금방이라도 선로에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수많인 인파가 몰리는 역이다. 이따금 운행중인 열차가 ‘신주쿠역에서 비상 정지 버튼이 눌려 잠시 열차를 멈춥니다’라는 아나운스와 함께 긴급 정차를 하는 일도 수시로 있다.

내가 주로 이용했던 세이부센(西武線)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세이부 신주쿠역(西武新宿駅), 다카다노바바역(高田馬場駅)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 되었지만 그 이후로부터는 보기 힘들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JR다카다노바바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JR다카다노바바

그날은 회사일을 마치고 와이프와 함께 JR다카다노바바역에서 만나서 세이부센으로 갈아탔다. 그리고 열차의 가장 첫 번째 차량(両)에 탑승했다. 둘 다 회사일로 지칠데로 지친 상태. 빨리 집에 도착해서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나 한잔 들이킬 생각이었다.

열차가 다카다노바바역을 출발한지 한 10여분 지났을까?!

‘덜커덩!’

갑자기 열차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평소에 느껴본 적 없는 흔들림. 분명히 좌우로 흔들린 것이 아니고 살짝 위로 떴다가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미묘한 신음소리 같은 것이 함께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기분이 쎄했다.

열차 안에 있던 사람들도 비슷한 소리를 들었는지 다들 웅성 웅성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분 후 ‘인신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열차 안에서 대기해주세요.’라는 아나운스멘트가 흘러 나왔다.

열차가 멈추어 선 곳은 철도 건널목 근처. 일본에 가면 도심 곳곳에 철도 건널목이 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인신사고가 많을 수 밖에 없는 두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밤에는 사람의 침입여부 확인이 더욱 어려운 것 같다.

도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도 건널목
도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도 건널목

가장 첫량이었기 때문에 기관실에서 관제실과 주고 받는 다급한 무전소리가 어느정도 새어나왔다. 그리고 잠시뒤 안전헬멧을 착용한 철도 직원들이 다급히 선로로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후로는 구급차, 그리고 경찰까지 차례로 왔다.

우리는 물론 10량으로 된 열차안에 모든 승객들이 갇혀 있었다. 이러한 급작스러운 상황에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느낀 사람들은 어지러움증을 호소하며 열차에서 내려달라고 비상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하지만 사건 정리가 마무리 될 때까지는 그 누구도 열차에서 내릴 수가 없나 보다.

그렇게 아수라장이 된 열차안과 밖. 약 1시간 30분가량을 아비규환 속에서 보내고 나서야 간신히 열차가 출발했다. 하필이면 내가 탄 열차가 인신사고를 당하다니…! 일본생활 10년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아마 평생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평화로운 일본 역사(駅舎)
평소에는 평화로운 역사(駅舎). 그러나 인신사고가 나면 모습이 180도 달라진다.

어떤 연유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했는지 모르겠고 마음 아프지만 수 많은 수단 중에 하필이면 선로(線路)를 선택했을까? 어쩌면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열차에 뛰어 들거나 선로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경우 사실상 그자리에서 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부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고 자살보다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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