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누가 내 돈들여서 창업해?”
“0원으로 바로 부업(창업) 가능!”

한참 창업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던 2021년. 인터넷 여기저기서 이러한 말들이 보이고 들렸다.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일본에 살고 있었는데도 피부로 와닿았다. 당장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만 켜도 부업으로 월 0천만원 벌어 퇴사했다는 이야기가 넘쳐났고 크라우드펀딩에는 부수입 만들기 교육 프로젝트가 수억대 이상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일본은 조용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2022년 여름, 퇴사 후 3개월만에 창업을 했다. 한국에 돌아갈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한국 법인회사를 만들었다. 인터넷으로 클릭 몇번이면 손쉽게 법인회사를 만들 수 있다. 역시나 인터넷강국다운 면모다.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자본금 100원만 있어도 설립이 가능하니 개인사업자, 법인사업자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이다.

2014년경부터 이커머스(온라인쇼핑몰)로 경력을 쌓아왔다. 퇴사때 최종 직책은 이커머스팀 리더(팀장). 일본 온라인 쇼핑몰 A부터 Z까지 해본 경험과 연이은 매출실적 달성에 자신감이 차 있던 상태였다. 창업을 생각하고 있던 찰나 전 직장으로부터 온라인 쇼핑몰 컨설팅 의뢰, 한국 업체의 일본 크라우드펀딩 업무대행 의뢰가 들어왔다. 이걸로 먹고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 길로 사표를 제출했다.

‘인터넷=무자본’이라고 쉽게 연상이 되는 이유는 대부분 컴퓨터(노트북)를 가지고 있고 어디서나 손쉽게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서 일하는데 굳이 사무실도 필요없어졌다. 맨 몸과 컴퓨터(또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사업이 가능하다. 무자본 창업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돈 안들이고 돈 버는 느낌은 짜릿하고 플렉스하다.

인도네시아 길리섬 한 카페에서 영상작업을 했다. 인터넷과 노트북만 있다면 어디든 오피스가 된다.
인도네시아 길리섬 한 카페에서 영상작업을 했다. 인터넷과 노트북만 있다면 어디든 오피스가 된다.

사업 시작과 동시에 급여 수준으로 수입이 생겼다. 일본 온라인 마케팅에 대해서 썼던 블로그 글을 보고 여기저기서 업무 문의가 들어왔다. 당장 예상 매출만 환산해도 월 수천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전국 방방곳곳에 있는 업체들을 만나로 다니고 이들과 함께 일본 온라인 진출 성공신화를 만들어 나가리라는 상상을 했다. 그래서 초창기 사업목표도 ‘이커머스 연합군’이었다.

그러나 시장(市場)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2023년 봄, 코로나 19 펜데믹은 종식선언을 맞았다. 봉쇄 되어 있던 국내는 물론 하늘길도 열렸고 그동안 억눌려 있던 소비심리가 오프라인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앞다투어 온라인 사업에 투자하던 회사들도 다시 오프라인으로 눈길을 돌렸다. 돈이 방향을 튼 것이다. 관리하던 업체들 매출은 정점을 찍고 정체 또는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요란히 울리던 전화벨 소리와 메일 알림도 조용해졌다. 그나마 사이드로 하던 온라인 위탁판매(일부 아이템)만이 꾸준히 실적을 내주고 있었다.

일본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오래 해왔지만 한국,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쿠팡 경험은 전무했다. 각 플랫폼마다 운영정책이 다르기에 공부가 필요했다. 그래서 와디즈에 들어가서 스마트스토어 매출 비법서 펀딩을 구매했다. (이 펀딩도 억대 성과가 났다.) 여기서 기본적인 상품 등록 노하우나 운영팁을 습득했다. 사입할 여력은 안되기에 무자본 판매인 위탁판매를 선택했다. 고객 주문이 들어오면 상품을 대신 구매해서 보내주는 방법이다. 중개거래를 통한 마진이 이익이 된다. 지금은 해외구매대행으로 방향을 전환했지만 근간은 같다.

매출이 적을 때 위탁판매는 무자본 창업처럼 보였다. 내카드로 먼저 결제하고 대금 정산 받아 카드대금을 내면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스마트스토어는 정산주기가 빨라 (고객 구매확정 후 1영업일) 위탁판매나 해외구매대행 운영에 적합하다. 그런데 매출이 커지면서 이 사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월 수천대로 매출이 올라가고 해외구매 / 배송에 따른 리드타임 증가와 자동구매확정(배송완료일로부터 8일 째 되는 날)건수가 늘어나면서 묶이게 되는 자금규모도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카드대금은 정산금 + 다른 자금으로 메꾸게 되었다. 유(有)자본이 된 것이다.

스마트스토어 정산목록 엑셀 파일. 아직 정산 대기중인 금액이 0천만원대다.
스마트스토어 정산목록 엑셀 파일. 아직 정산 대기중인 금액이 0천만원 있다.

사업을 한지 2년이 지났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직 생존해 있다. 그러는 사이 ‘무자본 창업’에 대한 시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무자본 창업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맨 처음 창업했던 그때로 가보았다. 김형민(나), 노트북, 인터넷이라는 삼체가 있었다. 나는 인력이다.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건비가 들어간다. 노트북 구매에도 비용이 들어가거나 이미 들어갔다. 인터넷은 매달 사용료(통신비)를 내야 한다. 여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교통비, 식대, 각종 세금 등까지 포함하면 무자본이라고 퉁치기 어려워진다. 매출이라도 나오면 다행이지, 매출이 없다면 모아둔 돈으로 먹고 살거나 대출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사업을 하려거든 최소 반년정도 먹고 살 돈은 통장에 넣어두고 시작하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었다.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무자본 인터넷(온라인) 창업에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직장 생활만으로는 미래를 대비하기 어려워지고 코로나19로 가정 경제에 직격탄을 맞았던 우리들. 무자본 창업 성공 신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동앗줄로 보였을지 모른다. 인터넷을 할 줄 알고 그림판만 다를 줄 안다면 손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이런 ‘쉬움’만을 강조하고 시작 이후에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 하려 하지 않는다. 업계 경력자들도 간신히 살아 남는 치열한 세상이다. 그래서 아직도 인터넷 곳곳에 무자본 창업이라느니, 이걸로 월 0천 가능이라느니 하는 류의 광고나 이벤트를 보면 사람들을 속이는 것 같아 불쾌하다.

올 봄, 모 스마트스토어 전문가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본인을 소개하면서 월 매출 0억대 스토어를 운영중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본인이 컨설팅 하고 있는 업체의 매출이었다. 대단한 것이 맞다. 매출을 더 잘 나오게 만드는 것은 굉장한 능력이다. 다만,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니 원래 매출이 나오고 있던 상품이었다.

만일 신생 상품으로도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는 ‘찐’ 전문가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하늘의 별따기급으로 어렵다. 이날 강연한 전문가 역시 처음부터 자기 상품을 키워본 적은 없었다. 강연회 참석한 사람들이 대체로 이제 막 자기상품으로 판매를 시작한 사람들이었으니 모객이 한참 잘못된 것이다. 이런걸 느끼고 깨닫는 것도 시행착오라는 비용이 발샡한다.

쉽게 온 것은 쉽게 떠난다(easy come, easy go.)라는 미국 속담이 있다. 무자본이라는 말에 쉽게 인터넷 쇼핑몰을 시작했지만 시간과 비용을 들여도 반응이 나오지 않아 실망하고 이곳을 떠난 이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아무리 그럴싸한 룰이나 툴이 있더라도 결국 매출을 만들어 주는 것은 소비자다. 소비자 마음을 얻지 못하면 빈 손으로 떠나야 한다. 인터넷 세상은 모든 결과가 숫자로 보여지기에 잔인하고 냉정하다. 이곳에서 비법은 없다. 무자본은 더더욱 없다. 주는 만큼도 열리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업계 10년 경력인 나도 이곳에는 언제나 초보다. 오늘도 이 사실을 염두하며 온라인 속 고객을 찾아 나선다.

구매 의뢰 받은 아디다스 원피스. 이제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사입출장이다.
구매 의뢰 받은 아디다스 원피스. 이제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사입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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