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사는 한국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일본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들에 대한 기록. 그리고 도쿄에 첫 집 구했던 에피소드까지 일본 취업과 생활에 대해 공개합니다.
아직 일본에 관심이 없던 중, 고등학교 시절.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위 ‘오타쿠’라는 인식이 강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제이팝을 좋아할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홈스테이도 다녀오면서 일본에 흥미를 느끼면서 꼭 그러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막상 일본에 와보니 그런 사람은 열 명 중 두세 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취업, 창업 또는 해외에 살고 싶어서 온 경우였다.
일본에서 만난 한국사람들
취업비자를 받은 그 해 여름, 매년 여름 있는 한인 비즈니스 네트워크 모임에 참석했다. 일본에서 수십 년 사업을 한 사업가부터 이제 막 일본사회에 발을 내디딘 (나 같은) 사회 초년생까지 다양한 한국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리어카에 테이프를 싣고 다녔습니다. 길거리 노점이 저의 첫 사업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차에 야채를 싣고 배달을 다녔죠. 일 끝나고서는 바로 어학교로 향하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지금은 사장님, 회장님 호칭을 듣는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한국에 대한 인식도 좋아졌고 제도적 개선도 많이 되었지만 그들이 처음에 왔을 때는 너무도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일본에 오게 된 이유는 저마다 제각각이었지만 ‘잘 살아보고 싶어서’라는 이유는 동일했다.

그렇다고 새롭게 일본땅에 발을 내디딘 ‘뉴커머’라고 해서 순탄한 길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일본어라는 문턱을 넘어야 하고 일본인, 한국인, 동남아를 비롯한 전 세계 인들과 경쟁해야 한다. 경기침체기라는 점도 큰 장애물이다. 일본에 가면 높은 월급 받으며 편하게 살 것 같은 환상이 있다면 산산조각 내는 게 낫다.
일본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에겐 공통적으로 강인함이 느껴졌다. 오타쿠로 시작했더라도,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생존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일본생활이 언제나 장밋빛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도쿄에서 원룸 구하기
일본에서 비자를 받고 처음 부딪힌 장벽은 다름 아닌 부동산이었다. 도쿄에 오고 반년동안은 셰어하우스에서 지냈다. 여럿이 쓰는 시설이다 보니 동선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빨리 씻고 나가야 한다거나 급한 볼일이 있을 때 누군가 사용 중이라면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개인 원룸을 구하기로 작정했다.
일본 길거리에는 편의점만큼이나 부동산이 많이 보인다. 부동산 입구에는 물건 도면과 야칭(월세)이 붙은 게시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쿄에서 성인 남자 1명이 지낼만한 원룸은 대략 6~8만 엔 사이가 필요해 보였다. 길을 오가며 보았던 부동산 체인점에 주말을 이용해 방문해 상담을 받아보았다.
일본에서 흔히 보이는 직사각형 구조 사무실과 길게 늘어선 책상. 그 사이에 영업사원과 고객이 마주 앉아 상담을 나눈다. 대략적인 조건을 설명하면 그가 예상 리스트 몇 개를 추려 제안해 주는 식이다. 나의 조건은 월 8만 엔 이하, 역에서 도보 10분 거리 등이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집주인에게 방문확인 연락을 하고 견학(시타미:下見)을 가는 식이다.
부동산이 장벽이 되었던 이유는 집값도 있겠지만 ‘외국인 사절’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20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물건은 그대로 방치하고 월세도 안 내고 소리소문 없이 자취를 감춘 외국인이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고 했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남아 외국인과는 계약 안 하는 물건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인 OK인 경우만 찾아보았다.
일본에서 집을 구할 때는 초기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보증금에 해당하는 시키킹(敷金)과 집주인 사례금인 레이킹(礼金), 그리고 부동산 중개 수수료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시키킹 1개월, 레이킹 1개월일 경우 수수료와 한 달 치 월세 포함해서 4개월치 월세가 필요하다. 월세 7만 엔이라면 28만 엔 정도가 초기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몇 주 정도 발품을 팔다가 운이 좋게도 시키킹, 레이킹 0인 캠페인 물건을 발견했다. 역까지는 도보로 15분이었지만 버스 정류장까지는 3분 거리였다. 금액도 광열비 포함해서 월 7만 엔 초반이어서 감당 가능한 수준. 그래서 냉큼 계약을 해버렸다.
서울 고시방에서 시작한 사회생활. 1년이 지나 도쿄에서 나만의 온전한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 순간의 감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여운히 강하게 남은 영화처럼.
⬅️ 이전글 살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