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는 일본에 살면 잘 할 수 있게 될까? 일본인과의 전화 한 통에도 진땀을 뺐던 나날들. 일본회사에서 일본어 때문에 겪었던 우여곡절을 기록했습니다.
대학 때 일본학을 전공했다. 일본어를 기반으로 일본 사회, 정치, 역사, 문화 등을 탐구하는 학문. 그 중심에 일본어가 있어 일본어 성적이 늘 화두였다. 졸업자격도 일본어능력시험(JLPT) N2(급) 취득. 이미 2학년 때 자격을 충족시켰다. 교수님들도 일본어만 잘하면 사회 나가서 걱정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잘하는’의 기준이 무엇인지 몰랐다. 대학 졸업 전 최종 성적은 JLPT N1과 JPT 890점. 이 정도 점수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첫 직장에서 일본행을 결심하게 했던 건 다름 아닌 일본어. 일본인 바이어 앞에서 한마디도 못했던 나. 일본어 점수가 일본어를 잘하는 것과 동일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토익도 그렇다.)
일본에 가면 일본어 잘한다?
일본에 와서는 24시간 언제고 일본어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티비를 틀어도 일본어, 밖을 나가도 일본어, 사방팔방 일본어 천지다. 단 한 곳, 예외가 있었으니 (전) 직장. 한인 회사에 한국인 직원들로 구성된 사무실. 주로 한국말을 썼다. 우스갯소리로 일본어보다 한국어가 더 늘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직장에 전직했다. 한인 회사라고 하지만 내가 속한 부서는 전부 일본인. 회사에서 한국어를 쓸 일이 많지 않았다. 아침 9시 출근하면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일본어로 모든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아직 일본어 사고회로가 갖추어지기 전이라 한국어로 생각했다가 일본어로 번역해서 내뱉었다.
영업부 특성상 발주가 들어오면 신속히 재고를 확인하고 물건이 나가야 한다. 신제품이 발매될 때면 ‘빨리빨리’가 중요했다. 일본이 느린 것만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거래처 전화. 재고와 납기일정 파악하고 발주서를 보내온다. 눈앞에서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과 전화만으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나의 일본어 회로는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회사에 전화벨이 울리면 바로 볼펜과 메모지를 준비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면 일본어가 들려왔다. 최대한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필사적으로 메모를 갈겨 적었다. 재고도 찾아야 하니 컴퓨터 화면에서도 눈을 뗼 수가 없다. 가까스로 통화가 끝나고 나면 내용을 정리해서 업무를 처리한다. 그런데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단편적으로 적은 내용들이 조립되지 않았다. 이때까지 납기 필수인 건지, 아니면 희망사항인 건지.

통화가 끝나고 나면 영업담당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보통은 별 탈 없었지만 간혹 뉘앙스의 차이나 중요한 단어를 놓치면서 내용을 잘못 전달하는 일도 발생했다. 거래처에서 영업에게 컴플레인 전화가 걸려온다. 그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는 건 당연하다. 영업지원팀이 지원하는 주체가 아니라 관리받을 대상이 되어버렸다.
일본어 회로의 탄생
계속 피해를 끼칠 수만은 없기에 매일 같이 일본어 공부를 했다. 회사 출, 퇴근길 그리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문장을 익혔고 소리 내어 말하기 연습을 했다. 파면 팔수록 모르는 단어와 표현이 속출한다. 입으로 수십 번 내뱉어도 금세 붙지 않아 답답하기만 상황. 일본어가 당연한 일본인들과 그것이 숙제인 외국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일본 전직 첫 이력서를 거절 통보 한 회사도 이런 상황이 우려되어서 그랬던 것일까.
이때부터는 취미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일본어를 공부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명색이 영업지원팀장인데. 일본인들도 어려워하는 경어표현에서부터 각종 유통업계 용어들을 찾아 정리하고 소리 내어 말해보고 메일이나 전화통화에서 신분 활용했다. 다른 직원들이 대화에서 쓰는 표현들 중 새로운 것들은 틈틈이 메모했다가 찾아보기도 했다.

다행히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사고회로가 한국어 → 일본어 2단계가 아니라 일본어 1단계로 작동을 개시했다.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은 아직 부족했어도 회로가 바뀌니 비로소 일본인들과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단전에서부터 일본어가 올라왔다. 한국어를 떠올린다? 그건 사치였다.
일본어가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실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통화내용을 잘못 전달하는 일도 줄어들었고 창고에 협조요청 전화도 걸어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도 했다. 옆 자리에 있는 일본인 스텝과도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전직한 지 5개월이 지났다. 전임자는 퇴사했지만 재고관리표를 만드는 시간도 제법 단축되었고 업무 루틴도 몸에 익었다. 일 끝나고 직원들과 문화활동을 즐기거나 맥주 한잔을 하기도 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차기 사장에 대한 야심도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방심하는 순간 찾아오는 법이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매일 같이 처리하는 발주 관리 업무에 조금 지쳐있었다. 때마침 회사에서는 핸디 선풍기 테스트 판매를 준비 중이었다. 지금은 일본에서도 대중화된 아이템이지만 당시는 생소한 것 중 하나였다. 영업팀에서도 사활을 걸고 있었다.
하루는 점심 식사 후 출하담당팀 오피스로 이동하는 길에 영업사원 M과 마주쳤다. 그가 본인 거래처 납기 일정을 물어 왔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어바웃 한 일정을 전달했다. 그렇게 10~20초 남짓한 짧은 대화를 나누고 각자 갈길을 갔다. 그로부터 며칠 뒤, 사장님으로부터 호출 연락을 받았다. 한껏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