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어렵게 이직한 회사에서 다시 퇴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 독립을 꿈꾸며 개설한 일본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경험과 다시 재취업하게 된 과정을 담았습니다.
2018년 10월 31일 수요일, 그날은 이직한 회사 마지막 출근날이었다. 이직 후 반년만의 퇴사. 첫 직장 3개월에 이은 두 번째 0년 차 퇴사다. 차기 사장은 무슨. 돌아갈 때 없는 낙동강, 아니 도쿄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퇴사를 결정하다.
그날 사장님 호출을 받고 오피스 2층에 있는 사장실로 내려갔다. 업무 미스가 있을 때마다 여러 번 불려 가고는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먼저 내려간다고 했다. 유선상으로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이랬다. 내가 일본인 영업사원 M에게 대략적으로 말한 납기 일정을 믿고 거래처에 안내를 했던 모양이다. 실제로는 그 시점에 원하는 재고가 나갈 수 없었다. 이에 격분해 사장님께 이 사실을 보고했던 것이다. 100% 내 잘못이다.
“영업 직원들이 형민 팀장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어요.”
사장님의 그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출근해서 막차를 타고 퇴근하기를 반복했다. 입사 초기부터 해왔던 실수들을 만회하고 팀장으로서, 차기 리더로서 당당히 인정받고 싶었다. 욕심이었을까. 내 앞에서 서로 웃고,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 기울였던 사람들의 진짜 속내를 알게 되었다.
사실 사장님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넌지시 힌트를 주고 있었다. 한 번은 이런 메일을 받았다. ‘전체를 보세요.’ 그게 무슨 말일까. 그날그날 업무 쳐내기가 바빠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없었다. 또 한 번은 공유하고 싶은 글이 있다며 ‘슈하리 (守破離:しゅはり, 수파리)’라는 문구를 보내왔다.
슈(守) : 틀을 지킨다. (기존의 방식을 따른다.)
하(破) : 틀을 깬다. (기존의 방식을 개선한다.)
리(離) : 틀을 떠난다.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것을 만든다.)
그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했던 것은 회사의 ‘현재’를 보지 못하고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왜 그랬을까.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였을까. 내가 잘났다고 착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사장님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지만 머리가 멍해져 제대로 앞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만두겠습니다.”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지 않던 그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성적 판단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대담고 싶지도 않았다.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에 잠시 당황한 듯 말을 잊지 못했던 사장님. 그러나 이내 이성을 찾고는 대체 인력이 확보될 때까지만 일을 맡아 달라 주문했다.
사장님과의 미팅을 마치고 터벅터벅 3층 내 자리로 돌아왔다. 팀 리더(チームリーダー)라고 적힌, 아직 색도 바라지 않은 명함이 놓인 책상. 낮과 밤에 다른 풍경을 자아내던 창밖 풍경. 그리고 옆에서 묵묵히 업무를 하고 있는 팀원들.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만 했다.

일본 온라인 쇼핑몰 도전과 다시 찾아온 기회
자발적 실업자가 되었다. 내친김에 내 사업을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일본 온라인 쇼핑몰. 퇴사가 확정된 이후 지인의 도움을 받아 야후재팬에 쇼핑몰을 개설했다. 일본에서는 스이카(suica), 파스모(pasmo)등 교통카드를 사용한다. 신용카드 사이즈로, 케이스를 끼워 패션아이템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첫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었다.
인터넷 도매사이트를 통해 여러 종류의 카드 케이스를 사입했다. 아마존재팬에서 배경지와 조명 등을 구매했다. 집 안에서 하루 종일 사진 촬영을 하고 포토샵으로 편집 후 쇼핑몰에 올렸다. 상품 개수는 금세 10개, 20개를 넘어섰다. 내친김에 한국 사이트에서도 토트백 등을 사입해 가지고 왔다. 자본이 많이 없어 초기 사입수는 아이템별 10개 이내로 했다.

이제 할 일은 팔리기만을 기도하는 일. 상품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1개, 2개씩 팔리기 시작했다. 역시 나의 감각이 맞았다. 5개쯤 팔리면 추가로 사입해서 재고를 보충할 계획까지 세웠다. 그리고 기다렸다. 당시는 할 줄 아는 게 상품을 올리고, 보내는 일 말고는 없었다. 검색엔진최적화(SEO)며 광고 같은 건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
당시 한인회 활동을 하고 있었다. 온라인 사업을 하고 있는 선배에게 안부인사도 할 겸 겸사겸사 연락을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한숨부터 내쉬었다. 초보가 섣불리 야후재팬 쇼핑을 시작 단계부터 건드리는 게 아니라고. 그도 그럴 것이 비용이 드는 라쿠텐이나 아마존재팬과 달리 무료라서 경쟁이 치열했다. 아직 플랫폼별 차이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 사실을 말하는 선배에게 괜히 서운함만 느꼈다.
그래도 주문은 들어왔다. 길거리 빨간 우체통에 들어갈만한 작은 사이즈. 매번 넣을 때마다 기도했다. 제발 사업이 번창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다. 일전에 읽었던 시크릿이라는 책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다. 사실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두 달이 지났다. 마지막 급여까지 통장에 들어왔다. 당장에 아껴서 지내면 되지만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전달 매출은 고작 2~3만 엔 수준. 여기서 20% 남긴다고 해도 6천엔 정도다. 마트에서 장 한번 보고 나면 금세 사라질 가벼운 돈. 월급 수준으로 돈을 벌려면 150만엔은 팔아야 했다. 지금보다 자그마치 50배 수준.
덜컥 겁이 났다. 누구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 하면 잘 될 줄 알았다. 차기 사장을 꿈꿨던 것처럼 무모한 도전일까. 아니면 견뎌내면 이뤄 낼 수 있는 목표일까.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지만 희망이 가까이에 있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형민아, 우리 회사에서 온라인 사업 키워보려고 하는데 같이 하지 않을래?*
여느 때처럼 상품 리서칭을 하고 있던 중 알고 지내던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뜻밖에도 취업 제안이었다. 그의 말속에 내 귀를 솔깃하게 하는 내용이 하나 있었다. 라쿠텐 쇼핑몰 운영 컨설팅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가장 가려워하던 부분을 단번에 긁어주는 말이었다. 이건 분명 기회였다. 망설임 없이 제안에 응했다.
그 해 12월 두 차례의 면접 끝에 새로운 회사에 입사가 확정되었다. 퇴사 이후 3개월간의 짧은 독립 시도는 잠시 멈추었다. 팀장이 아닌 평사원.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먹고사는 게 더 급선무였으니까. 어쩌면 지난 직장에서 실패한 것들을 이곳에서 만회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새 출발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