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선택한 이유
회사를 퇴사한 건 지난 2022년 3월 31일(목). 일본 F사, 이 커머스팀 팀장으로서 역할을 끝마치는 순간이었다. 이전에는 이직(전직)을 위한 퇴사였다면 이번에는 창업을 위한 자발적 퇴사였다.
언제나 그랬지만 퇴사날은 동료들과 함께 했다. 나보다 석 달 먼저 퇴사해 카레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미즈노(가명)가 있는 곳으로 팀원들과 향했다. 그는 알바로 경력을 쌓은 뒤 직접 카레집을 창업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회사 선배, 퇴사 선배, 그리고 창업 선배다. 그곳에서 지난 직장 얘기들 나누며 맥주 마지막 맥주 한잔을 기울였다.

다음날부터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인이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 준비 할 필요도 없다. 오전 9시 30분에 있던 조례도 없고 업무보고를 할 필요도 없다. 퇴사 후 느끼는 가장 큰 행복이다. 해방이자 독립. 퇴사 후 한동안 이 만족감은 극에 달한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하게 살아왔던 거야?
거기다 단순한 도피성 퇴사가 아니었다. ‘창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경력을 살려 ‘일본 온라인 쇼핑몰 운영 대행’을 무기로 꺼내 들었다. 일본에 진출하고 싶어도 경험이 없는 소상공인들을 위한 서비스. 한국인으로서 일본 쇼핑몰 A부터 Z까지 경험한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이기도 했다.
때마침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에서도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 진출을 준비하는 업체들도 많았다. 소개에 소개를 타고 제법 일이 들어왔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지! 그게 퇴사를 단행한 결정적인 이유다. 나름 대책 있는 퇴사였다.
이제부터는 직장인 때처럼 품의서다, 보고서다 뭐다 누구 눈치 볼 필요 없다. 오로지 내 경험과 판단에 근거해서 일하면 된다. 스트레스 생길 일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창업할걸. 하루에도 몇 번이고 되뇌며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창업 초기 생활 변화
퇴사 전부터 이미 업무 의뢰가 들어왔고 급여 수준 수입을 만들 수 있었다. 독립했으니 홍보만 열심히 하면 급여의 몇 배로 돈을 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 되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대부분이 그러는 것처럼 지나치게 장밋빛 미래를 그렸던 것이다. 누군가 퇴사 후에 최소 6개월은 버틸 수 있는 여유 자금을 마련해 두라고 했다.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두 달치 월급 여유는 있었다. 대략 세 달 차까지는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여유자금과 업무 의뢰비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업무 문의가 들어오기는 하는데 견적을 듣고서 발 빼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나름 시간당 비용과 업계 표준 금액을 참고해서 설정한 견적이었다. 도대체 한국에서는 얼마나 싸게 일을 한다는 거지? 일본에서 일하다 보니 한국의 기준을 잘 몰랐다. 그렇다고 비싼 금액도 아닌데. (정말 시급 수준 견적인데…)
매출액의 0%를 주겠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나쁜 제안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 작업비 + 매출 로열티는 가능하지만 매출 로열티만으로 하기에는 부담이 갔다. 일본 온라인 쇼핑몰 운영 경험상 최소 6개월은 저 매출 구간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지나서도 잘 팔릴지 여부는 미지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장에 생활이 빠듯해졌다. 매달 진행하던 컨설팅이 있어 생활비는 충당할 수 있었지만 급여 절반 수준으로 수입이 떨어졌다. 퇴사 첫날 느꼈던 해방감은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못했다. 오히려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얼마나 달콤한 존재였는지 창업을 하고 나서 오히려 절실히 깨달았다.
퇴사 전에 생각할 일
퇴사한 지 어느덧 4년이 다 되어간다. 지난 시간들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창업이 주는 달콤함 보다 현실의 매서움을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여기저기 문 닫는 점포나 폐업하는 회사들을 볼 때면 어찌나 기분이 아찔하던지. 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
만약 타임 슬립해서 퇴사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창업은 했을 것이다. 대신, 퇴사 시점을 미루었을 것 같다. 3월이 아니고 적어도 연말까지는 버틸 거다. 그 기간 동안 먼저 반년 이상 생활비를 충당해두고, 하고자 하는 일이 계속 수요가 있는 사업인지, 시장 적정 가격은 어느 정도인지, 만약 일거리가 줄어들었을 때 어떤 대안을 세울 건지 등…여러 대비책을 마련해 두면서.
그러니 회사를 떠날 마음을 먹고 있다면 조금 더 냉정해지기를. 어차피 평생직장이 없기 때문에 이직을 하든 창업을 하든 길을 택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꼭 지금을 필요는 없다. 적어도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는 해두어야 한다. 나는 그 지점을 너무 낮게 설정했다.

회사만 나가면 난 뭐든 할 수 있어! 더 잘할 수 있어! (또는, 좋은 데 갈 수 있어!) 이런 자신감은 무조건 필요하다. 적어도 마인드셋이 그 이후의 자신을 이끌어 줄 테니까. 하지만 약효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충분히 계산해야 한다. 세상만사,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지금은 구매대행이 메인 사업이다. 퇴사할 당시 머릿속에도 없던 일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일찍 이런 우여곡절들을 경험해 봐서 다행이다.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고. 50-60이 넘었을 때 같은 시련이 왔다면 받아들이는 충격은 다르지 않았을까.
퇴사는 단순히 회사를 그만두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그만큼 인생에 대한 책임이 뒤 따른다. 다음 직장이 되었든 사업이 되었든, 또는 가족이 되었든. 그래서 충분히 신중하되 ‘언젠가, 언젠가’로 기약 없는 일로 둘 것이 아니라 인생 타임라인을 세우고 그 계획에 맞게 준비해야 한다. 회사를 떠나 4년 동안 깨달은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