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본 1인 창업으로 시작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1인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퇴사 전부터 일 의뢰가 들어왔다. 노트북만 있으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온라인’ 기반 사업. 노트북이야 오랫동안 써오던 맥북이 있었고 인터넷도 광케이블 계약을 해두어서 속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소위 말하는 무자본 창업이다.
돈이 들지 않으니 시작이 쉬었다. 어차피 모든 건 집에 갖추어져 있다. 클라이언트가 맡긴 일만 제때제때 처리하면 된다. 혼자서 하니 보고해야 할 사람도 없고 결재라인도 없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면서 묵묵히 일을 처리하면 된다.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하면 그만.

매주 월요일에는 온라인 미팅으로 클라이언트와 주간 미팅을 했다. 그 외의 날에는 집에서 모니터 화면을 보며 작업을 이어 나갔다. 오랜 기간 다져진 재택근무 경력을 이런 데서 써먹는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도 있어 무자본 1인 창업하기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달이 지났다. 클라이언트에게 청구서를 보냈고 결제 기일에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다. 세금을 제하더라도 모든 수익은 내 몫이다. 이런 일거리 하나, 둘 늘려나갈 수만 있다면 이보다 완벽한 창업이 또 있을까.
정말 무자본 창업 맞아?
창업 두 달쯤 지났을까. 우체통에 꽂혀 있던 공과금 고지서를 펼쳐 들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숫자가 적혀있었다. 평소의 두 배에 가까운 요금이 나온 것이다. 하루 온종일 집에서 전기를 쓰고 있으니 전기세가 올라갈만하다. 회사 다닐 때는 사무실에 출근하기에 거의 전기세가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 근무할 때는 재택근무 수당이 나오니 그런대로 커버가 됐다.
그런데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1인 창업을 하고 나니전기세조차도 내 부담이 되었다. 그게 전기세뿐일까. 인터넷 요금, 수도 요금, 그리고 디자인을 위해 사용하는 어도비 포토샵과 일러스트 구독료 등 모든 것들이 비용이 되었다. 맥북도 점점 저속화되는 게 느껴진다. 감가상각이 피부에 와닿는다.

무자본 창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돈이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업이라는 게 무자본일 수가 없다. 적어도 소자본이다. 나라는 사람이 투입되는 것도 시간당 비용으로 생각하면 무자본일 수 없다. 요즘 같이 Ai로 자동화된다고 한들 유지비가 들어간다.
1인 창업 초기였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크지는 않았지만 매달 같이 발생하는 고정비가 눈에 들어왔다. 매출에서 고정비 등이 포함된 영업비용을 뺀 영업이익을 체크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회계 수업 때나 들여다봤던 수치를 이제는 매일 같이 체크한다.
소자본 창업의 장점과 단점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무자본이 아니라 소자본 창업이라고 다시 정의를 내렸다. 상품을 사입하지 않는 무재고 창업이기에 자본도 거의 들지 않는다. 소정의 고정비만 발생할 뿐.
초반에 목돈이 들어가지 않으니 부담 없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게 소자본 창업의 장점이다. 우리나라처럼 창업 관련 정책 (지원이나 대출)이 잘 마련된 나라에서는 시작이 비교적 수월하다. 나도 일본에 있으면서도 클릭 몇 번으로 손쉽게 한국에 법인을 설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이 적다는 건 그만큼 기반이 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이 잘못 틀어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무너지기 쉽다. 첫 클라이언트와 계약이 종료되었을 때 매달 들어오던 고정 수입이 없어지면서 한동안 당혹스러웠었다. 다음 일거리를 찾을 때까지 수입이 0원에 수렴했다. 자본금 100원인 회사와 1억 원인 회사가 사업을 이끌어 가는 힘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그나마 투자한 비용이 적기 때문에 사업 방향성을 쉽게 전환할 수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 업무대행에서 해외구매대행으로 넘어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상호 보완적 관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업을 이끌어 온 지 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소자본이기는 하지만 1인에서 2인 기업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소자본 창업에서 벗어나 더 큰 도약을 하고 싶다. 자본이 커질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신규 아이템 개발에도 과감하게 투자해보고 싶다. 소자본 창업으로 시작했다고 소(小)에만 머물러 있지 말자. 우리는 대(大)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