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하게 김치 먹고 싶다.

2013년부터 시작한 일본 생활이 어느덧 만 9년차에 접어 들었다. 처음 6개월을 생각 했던 이곳 생활이 곧 10년을 맞이하고 조금 더 있으면 이곳에서 평생 살아 갈 수 있는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을 만족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일본을 떠나려고 한다.

도쿄 시부야 스크램블 모습
2013년경의 도쿄 시부야 스크램블. 이때의 설랬던 감정들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일본은 살기 좋은 곳인가?

나는 이 질문에 Yes!라고 대답하고 싶다. 일본은 살기 좋다.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갈하고 조용하다. 주변 신경 쓸 일도 그다지 없다.

일본 지역 풍경
동네 공원에서 바라 본 주변 풍경. 높은 건물들이 많이 없고 조용한 분위기다.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주변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 (人に迷惑をかけないで)”라는 교육을 받다 자라오다보니 나와 타인에 대한 구분과 그 영역을 존중하고자 하는 정서가 깔려 있다. 그래서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살아 갈 수 있고 나 또한 타인으로부터 간섭 받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인간관계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가면 주로 연장자가 계산하는 것이 왠지 모르게 암묵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고 그에 대해 그다지 위화감이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나이가 많건 적건 자기가 먹은 값은 자기가 지불하는 와리깡 (割勘)이 일반적이다. 처음에는 이런 일본인들이 왠지 정(情) 없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오히려 편하다. 오히려 상대방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나도 그에게 뭔가 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생겨버린다.

위의 예시들은 물론 상대적인 것이기는 하다. 일본인이지만 한국 사람보다 유대관계를 더욱 중시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9년간 피부로 느껴온 일본은 대체로 이러한 인상이었다. 그래서 만약 주변 관섭이나 인간관계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면 일본은 정말 살기 좋은 나라이다.

#일본을 떠나고 싶은 근본적인 이유

나는 개인적으로 조용히 살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직접 나서서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 가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다. 그래서 일본은 정말 좋은 터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의 매력이 점점 반감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일본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4년경이었는데, 그 당시 나에게는 문화나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일본은 확실히 대한민국보다 앞서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면서 일본어를 배우고 대학 전공도 일본학을 선택하고 일본에서의 삶을 꿈꾸었다.

일본에 처음 온 2013년에도 일본은 신선했다. 역시 세계 3위의 경제대국(명목 GDP기준)이라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는 일본과 달리 매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모국, 대한민국의 존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문화 컨텐츠면이 그러했다. J-POP 아이돌은 컨셉이나 무대연출 등이 2000년 초반에 머물러 있는데 비해 K-POP 아이돌은 한국을 넘어 전세계 시장에서 그 존재감을 더욱 키워 나가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커머스(E-Commerce) 업계도 마찬가지다. 2021년 기준 대한민국은 소매판매 중 온라인쇼핑 비중이 27%이상인데 반해 일본은 아직 10%이하에 머물러 있다. (거래금액은 140조원대로 비슷한 수준) 물론 규모적으로 일본은 향후 성장 가능성이 우리나라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을 뒷받침 해 주는 기술적 백그라운드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라이브 커머스가 빠른 속도로 침투하고 있다. 그에 비해 일본은 아직은 소수에 의한 베타 테스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오프라인 시장에서도 비슷하다. 대다수가 카드나 어플 결제를 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아직도 현금 결제 밖에 되지 않는 상점이 많다. 2018년 소프트뱅크-야후재팬 계열사로 탄생한 PayPay에 의해 캐시리스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수수료 무료 및 캐쉬백 등 막강한 물적공세로 시장이 확대되었고 이제 도심지에는 많이 보급 되었지만 여전히 현금 소지를 하지 않으면 생활이 불편하다.

leave japan 2
일본 한 식당의 메뉴판. 밑에 “우리 가게는 신용카드 사용이 안됩니다”라고 쓰여 있다. 아직도 신용카드, 전자결제가 안 되는 곳이 많다.

일본이 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성장속도에 익숙해지면 나의 성장 속도도 거기에 맞추어져 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도 나의 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자유롭게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한국사람인지라 역시나 한국 음식이 제일 좋다. 물론, 일본에서도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도쿄의 경우 신주쿠 옆에 위치한 한인타운 신오쿠보에만 가도 다양한 한국 식당이 있고 맛도 크게 뒤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체감가격은 역시 비싸다. 한국에서 3만원 정도면 먹을 수준이 이곳에서는 대략 5~7만원은 나온다. 매일 갔다가는 통장이 금새 바닥 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국 음식은 주로 다진 마늘이 많이 들어가는데 일본은 마늘은 선택사항이다. 특히 아침과 점심에 다진 마늘을 넣거나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피한다. 이 역시 일본인들의 주변에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것도 한 몫 할지 모르겠는데 마늘 냄새가 의외로 강하다. 우리나라에서야 아침에도 자연스럽게 김치를 먹고 대다수가 마늘 들어간 음식을 섭취하다보니 냄새가 거슬리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금새 티가 난다. 예전에 한 작은 호텔에 한국 손님들의 체크인 접수를 도와 드린 적이 있는데 그 곳 지배인이 “방안에서 김치 섭취는 삼가해주세요”라는 당부를 받은 적도 있다.

leave japan 3
일본 음식의 대표격인 스시(초밥).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 일본음식의 미덕이다. 마늘이나 간장, 와사비는 이를 복돋우는 서브 역할일 뿐이다.

한국 음식 먹고 싶을 때 배달 시키거나 근처 식당가서 아무때나 먹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이 그립다. 코로나로 한국에 가지 못한지 3년이 되어서 그런지 뒤 늦게 향수병이 생긴건지도 모르겠다. 경제, 성장 문제만큼이나 음식 문제도 중요하다.

소주에 족발 먹고 싶을 때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곳. 결국 한국 밖에 없다.

5 Comments

  • Passerby
    2022년 8월 24일 at 2:05 오전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한국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 다른 목적지들을 알아보고 있고, 일본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계속 조사하고 있습니다. 역시 먼저 일본에 살고 계신 한국분들이 느낀 점이 많이 도움이 되네요. 잘 읽고 갑니다. 다른 감상들도 써주시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ㅎㅎ

    Reply
    • 김형민
      2022년 8월 24일 at 7:57 오전

      댓글 감사합니다 🙂 저는 미국생활이 역으로 궁금해요~ 전세계 중심을 달리는 미국이란 나라는 어떤 곳일까 하고 말이죠 ㅎㅎ 일본도 분명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저도 만약 살아보지 않았다면 평생 후회했을지도 몰라요~ 궁금한 것 있으시면 또 연락주세요!

      Reply
      • Passerby
        2022년 8월 24일 at 10:08 오전

        응답 감사합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긴 하지만 추가로 (한국인의) 연애/결혼 측면에서 일본은 어떤지 개인적으로 느낀점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지요? 저의 경우 남자고, 한국에서는 평범하게 연애 했습니다만 (5년/1.5년/짧게 약간) 미국에서는 영 힘드네요 ㅠㅠ 사실 이게 일본이 좋아보이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합니다. 이대로 가면 졸업 후 일본어 N1, 대학 조교수나 박사급 Data Scientist 직업으로 스타팅할듯합니다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지 궁금합니다. (한국인의 (디)메리트 측면에서) 혹시 더 자세한 정보가 도움이 된다면 메일 드리겠습니다 ㅎㅎ

        Reply
        • 김형민
          2022년 8월 24일 at 10:16 오전

          연애/결혼은 사람에 따라 다른거기에 뭐라고 답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저는 이곳에서 비슷한 또래의 한국인 여자친구를 만나 지내고 있고 지인 중에도 한일 커플 또는 부부도 많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리적으로나 언어적으로도 가까운 부분이 있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대중 문화 영향으로) 개선되었기 때문에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지 않을까… 추측은 해봅니다 ~~

          Data Scientist 좋은 분야인 것 같습니다! 일본내에서도 필요로 하는 직업군일 것 같네요. 미국 대학 출신이시기도 하니 미국보다는 경쟁이 덜 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추측해봅니다.

          Reply
    • Passerby
      Passerby
      2022년 8월 24일 at 10:40 오전

      조언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부부 두분 다 한국인이시다보니 한국으로 돌아갈 이유가 더 충분하시겠군요. 친절한 응답 감사드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셔도 원하는 대로 일 잘 풀리시길 빌겠습니다 ㅎㅎ

      Reply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