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재빨리 발신자 정보를 확인한다. ‘010-0000-0000’… 다행히도 아는 번호다. 붉게 물들었던 얼굴이 이내 평온을 되찾는다. 지난 10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갖게 된 일종의 직업병이자 트라우마다.

처음부터 전화 통화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문자보다 전화가 편했던 적이 있다. 수화기 너머로 오가는 웃음 가득한 대화가 좋았다. 일씹이라고는 없던 시절, 문자는 보내고 나서 답이 올때까지 기다리는 게 너무나 답답했다. 하지만 전화는 연결만 되면 바로 반응을 알 수 있었기에 굳이 할 얘기가 있다면 전화로 하거나 만나서 했다.

그러다 사회로 나왔다. 그랬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어리바리 하던 시절. 막내라면 으레 전화를 받기 마련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재빨리 메모지와 볼펜을 준비한다. 수화기를 든다. 

“OO상사 김️▲️▲입니다. 이번에 발주한 XX원단 가공 문제로 늦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건 한국말이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름도 긴가민가하고 중간중간 업계 용어가 있어 도저히 받아 적을 수가 없었다. 영어 듣기평가보다 한국말 듣기가 더 어려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두 번, 세 번 되묻기도 뭐해서 이해한 내용으로 상사에게 보고했다. 돌아오는 건 당연하겠지만 꾸중뿐이었다.

전화 통화 울렁증이 생기다

일본으로 건너가서도 전화는 복병이었다. 회사 특성상 나이 든 바이어들이 전화를 많이 걸어왔다. 고령에 그것도 사투리까지 섞인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면 더욱 알아듣기 힘들었다. 아직 일본어 말문이 트이기 전이었고 업무도 이제 막 익힐 때이기도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회사에 있을때를 제외하고는 일본어 음성을 하루 종일 들었다. 거기에 추가로 내가 전화를 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당시, 회사 비품 주문은 전화나 팩스로 했다. 평소에는 주문 용지에 상품번호와 개수를 적어서 팩스로 보냈지만 이때부터 일부러 주문 전화를 걸었다. 과연 내 일본어가 통할까? 라는 걱정이 앞섰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았다. 주문하고 싶다고 말하고 회사연락처와 주문 할 상품번호, 개수를 말했다. 상담원이 복창(復唱)한다. 다행히 내 말을 알아들은 듯했다. 며칠 뒤 필요로 했던 비품들이 문제없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인 후 다시금 전화가 편해지기 시작했다. 전화벨 소리에 흠칫 놀라던 모습은 온대간데 없이 사라지고 전화벨이 울리면 가장 먼저 수화기를 들었다. 말귀 좀 못 알아들으면 어때? 전화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물론 ‘사장님(社長)’이라고 전화기창에 뜨면 긴장하기는 했지만.

전화 통화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업무 효율도 올라갔다. 덕분에 회사에서 좋은 평가도 받았고 인턴에서 정사원이 되었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이직의 기회도 찾아왔고 몸값을 높여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복병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이직 후 내 자리(좌). 전화는 울리지 않아야 이쁘다.
이직 후 내 자리(좌). 전화는 울리지 않아야 이쁘다.

당시 맡은 일은 해외 온라인 쇼핑몰 업무 대행이었다. 한국 중소기업 상품을 일본 온라인쇼핑몰에 올려주고 홍보하는 일이다. 계약과 상품정보 수집을 위해 업체들에 매일 같이 전화를 돌렸다. 100개 이상 업체나 되기에 양적 부담은 있었지만 심적 부담은 없었다. 무사히 목표수치는 달성했고 순조롭게 업무를 이어 나갔다. 그러다 반년 이상이 지났을까 다시금 전화벨 소리가 날카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당신들이 하는 일이 뭐야? 이거 사기 아니야? 고소할 줄 알아!“

아직도 기억나는 멘트다. 실적이 업체들 기대 성과에 못미쳤는지 클레임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다른 곳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10통 중 6통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클레임이 한, 두 건일때야 의견도 들어주고 최대한 해결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양이 늘어날수록 그럴 여유조차 생기지 않았다. 사과만 하다 하루가 다 지나간 적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그 사이 팀원도 보강되고 업무 위탁을 하는 등 상황이 개선되어 갔다. 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가 남은 것인지 전화벨 소리만 울리면 긴장과 스트레스가 동시에 몰려왔다. 이러한 증상은 회사를 옮기는 내내 따라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절정을 달하는 상황이 닥쳐왔다.

전화 통화 울렁증이 공포증으로

때는 2020년 5월, 코로나로 전 세계가 마비되었던 시기.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발 빠르게 알코올 핸드젤을 일본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물건은 일본열도 전국 드럭스토어, 대형매장 등에서 팔려나갔다. 코로나로 도산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우리 회사만은 가파른 매출상승곡선을 그려 나갔다.

그러다 일본뉴스에서 ‘한국산 알코올 핸드젤 알코올함량 거짓 표기’라는 뉴스가 터졌다. 모 회사에서 수입한 한국산 핸드젤에 알코올 함량이 71%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일본 소비자청에서 샘플 조사 결과 최소 5%밖에 들어있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그 화살은 Made in Korea 제품을 팔고 있는 우리 회사로도 향했다.

아침 9시 업무 시작과 동시에 회사 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울렸다. 처음에는 직원 한, 두명이 대응했지만 이내 전 직원이 전화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사회생활하면서 사내 전화회선이 모두 사용 중이었던건 이때가 처음이다. 입에 신물이 나도록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으면 또다시 걸려 왔다.

“내가 이래서 한국산을 못 믿어!” 
“너도 한국사람이잖아? 일본사람 당장 바꿔!”

전화 울렁증 최고조에 달했을때. 사무실 전화기 회선에 대부분 빨간불(통화중)이 켜졌다.
전화 울렁증 최고조에 달했을때. 사무실 전화기 회선에 대부분 빨간불(통화중)이 켜졌다.

짧으면 몇분에서 길게는 수십분. 마치 자동응답기인냥 전화를 받자마자 ‘일본 법적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서 만들었으며 이번에 보도 된 상품과 관련이 없음’을 설명했다. 이미 의심의 눈초리로 전화를 걸어 온 일본 소비자들에게 들릴리 만무했다.

간혹 ‘타지에 나와서 고생이 많다, 전화 통화하고 나서 안심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어서 그나마 마지막 남은 정신줄 한 가닥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이 대략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다행히 일본 내 관련 규정 정비와 함께 상품안정성을 입증할 자료들이 마련되면서 상황이 일단락 되었다. ( 그 후 얼마 뒤 이 회사를 퇴사했다.)

핸드폰을 언제나 진동상태로 해 둔다. 가끔 진동을 인지하지 못하고 전화를 못 받기도 한다. 하지만 불편함은 없다. 필요하면 상대가 다시 전화를 걸어 올 것이고 아니면 내가 다시 걸면 된다. 무방비 상태로 전화를 받는 것보다 이편이 낫다. 간혹 전화통화로 이야기 하자는 지인들도 있다. 못할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카카오톡 같은 텍스트 기반 연락 수단이 편하다.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답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놈의 지독한 전화 울렁증은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평생 안고 가야 할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핸드폰 화면은 매일 같이 쳐다본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