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업을 해야해
존경하는 사업가 중 한명은 일본 굴지의 대기업, 소프트뱅크를 일군 ‘손정의’다. 그의 성장기와 창업에 대해 다룬 ‘손정의 창업의 젊은 사자(孫正義起業の若き獅子)’라는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590쪽이나 되는 분량이지만 읽는 내내 감탄사 연발이었다.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사업이란 으레 비범한 사람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사업가 DNA가 있으리라. 손정의를 비롯해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등 분명 일반인과는 다르다. 그들의 영상이나 글을 보며 나도 세상에 한 획을 긋는 ‘사업가’가 되겠노라며 출퇴근길 기차 안에서 여러 번 다짐하고는 했다.
사업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한대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분명 더 좋은(또는 나은) 방법이 있음에도 상사나 경영진은 애써 어려운 길을 가는 듯했다. 하물며 30대 초반 애송이의 의견은 들어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내 생각이 맞았던 일들이 많았다. 어쩌면 내가 그들보다 비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창업을 결심했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고 회사를 나와 사업을 시작했다. 첫 시작은 인터넷을 통해 한국 상품을 일본에 판매하는 일이었다. 일본 사회생활 중 이루었던 성과와 더불어 코로나 때 절정을 맞은 이커머스 열풍 덕에 자연스럽게 배를 띄울 수 있었다. 일본 현지에서 인터넷 쇼핑몰 A부터 Z까지 경험한 사람은 경쟁 업체들 이력을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차별성이 있었다.
회사를 나오면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끊기는 일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다행히도 퇴사가 결정 난 시점부터 일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매달 수입이 확보되었다. 홍보라고는 홈페이지 개설과 블로그 글이 몇 개였는데 매일 같이 사업문의 전화와 이메일이 들어왔다. 월급 정도 수입으로 많은 사람이 꿈꾸는 ‘월 천 버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리고 10년 일본 생활을 마감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업하고 알게 된 것
전국에 있는 고객들을 만나 사업 미팅을 하고 매출을 올려 사업가로서 승승장구하는 일. 매일 같이 상상하던 모습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달라졌다. 문의 수가 뜸해지기 시작했고 계약까지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기존에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들도 기대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사업 후 첫 위기가 다가왔다.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고 코로나 기간에 급성장한 이커머스는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소비의 흐름이 다시 오프라인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코스피가 3,300원까지 찍고 2,500원대까지 내려온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사업이 풀리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다. 비범한 사업가들이라면 위기 때 기발한 해결책을 들고나왔겠지만 그러한 것이 없었다.
이익이 있어야 회사는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 그런데 가장 윗단인 매출이 막혀버리니 하루 하루가 빠듯해졌다. 당장 내 월급도 가져가기 어려운 상황. 매달 같이 월급을 주던 전 직장(회사)들이 얼마나 대단한 곳이었는지 새삼 실감했다. 다행히도 정부 대출과 파트너와 시작한 해외 구매대행사업에서 매출이 나와주면서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특출난 기술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학벌이나 인맥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보통’인 사람이다. 그런 내가 사업을 한다. 비범할 줄 알았지만 회사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오니 사회 초년생과 매한가지다. 물어볼 곳도 없고 책임져줄 사수도 없다. 전쟁터에서 나 홀로 각개 전투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없어졌다. 뉴스에서 대규모 해고나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투잡, 쓰리잡을 해서 돈을 모으건,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금융소득을 얻건 필연적으로 무언가는 해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그 중 사업을 택했다.
사업은 나에게 가장 맞는 옷이다. 앞으로 여러 위기와 마주하겠지만 비범하지 않은 사람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다. 회사를 성장시키고 이익을 남겨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을 많이 하고 싶다. 비범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사업을 하기 때문에 꿀 수 있는 비범한 꿈이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