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지지 말고 살아라”
어릴 적에 은연중에 부모님께 들었던 이야기다.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것이 은행 ‘빚’이라는 의미다. 부모님이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IMF 금융위기가 찾아왔었고 뉴스에서도 연일 도산, 신용불량 등의 주제가 다루어졌다. 당시 초등학생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무서운 광경이었다.
그렇게 빚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지내다 20살이 되어 빚에 내게 되었다. 바로 학자금 대출이다. 대학 4년 중 대부분은 학자금으로 학비를 충당했다. 일본에 취업해서 갈 때도 보증인을 세우고 떠나야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상환에 들어갔다. 매달 수십만 원씩 상환을 이어갔다. 상여 등 목돈이 생기면 상환 금액을 올려 납입했고 서른 중반에 들어서기 전에서야 간신히 완제를 할 수 있었다. 학자금 대출잔액 0원을 확인하던 순간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빚, 그러니까 대출을 받게 되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다. 온라인 쇼핑몰 창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한동안은 무자본 창업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대출이 불가피했다.
일본 생활이 오래되어 한국에 신용이 없는 상태에서 대출받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제도권 은행에서는 대출이 거절되거나 제2금융권 등에서도 10~15%가 넘는 고리 대출만 가능했다. 머리를 질끈 싸매고 있을 때 ‘청년전용 창업자금’을 발견했다. 최대 1억, 금리 2.5%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지원제대가 많다. 이번 대출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주관하는 사업이다. 내가 일본에 건너가게 된 것은 동 공단의 해외인턴십을 통해서였다. 여러모로 인연이 깊다. 인터넷을 통해 대출 신청을 했고 곧 대출전문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본격적인 대출 심사에 들어갔다.
1차 서류제출, 2차 현장실사, 3차 대면발표까지 한 달여 정도가 걸렸다. 이것마저 안되면 사업, 한국으로 귀국은 접고 재취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준비했다. 다행히 간절함이 통했는지 무사히 대출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대출금이 회사 계좌에 입금되었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대출을 받고 나서 한국으로 귀국했고 사무실도 계약했다. 새로운 컴퓨터를 장만했고 함께 일 할 파트너도 고용할 수 있었다. 자금적 여유가 생기니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심적으로도 안정되었다. 해외구매대행 사업도 시작하면서 새로운 매출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대출은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현재 대출 조건은 2년 거치 3년 상환이다. 지금은 매달 이자를 납입하고 있고 내년부터는 원금 상환이 시작된다. 매출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현시점 가장 큰 미션이다.
빚에는 좋은 빚과 나쁜 빚이 있다. 나쁜 빚은 소비만 되고 아무런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좋은 빚은 일종의 레버리지로, 빚의 힘을 이용해 더 큰 이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빚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지는 본인의 선택과 행동에 달렸다.
사업을 하는 동안은 필연적으로 비용이 발생한다. 당장 출퇴근 때 쓰는 교통비부터 핸드폰 통신비, 컴퓨터 전기세 등 모든 것이 비용이다. 하나, 하나는 작아 보이지만 모이면 큰 금액이 된다. 스스로 비용을 감당할 자본이 있다면 대출이 필요 없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대출이 필요하다.
나는 대출을 받았기에 신용 없이 시작한 한국 생활을 2년째 이어 올 수 있었고 매달 매출을 만드는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원금 상환에 대한 부담은 회사 재무제표 부채항목에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되는 일이다. 삼성전자도 부채가 있다.
빚지지 말고 살라던 부모님의 당부에 살을 덧붙여서 ‘빚을 빚으로 끝내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사업을 함에 있어 빚은 선택이지만 필수이기도 하다. 빚을 활용해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인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돈이 없다고 시도조차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도 새로운 대출을 활용해 사업 아이템 발굴에 몰두하고 있다. 부디 이번 대출이 좋은 빚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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