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부터 일본을 떠나기 전까지 7년을 살았던 곳이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가장 오래 지낸 곳이라서 마음속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
도쿄 히가시후시미 마을 탐방

신주쿠에서 세이부 신주쿠선을 타고 약 30분이면 도착하는 이곳은 니시도쿄시 히가시후시미(西東京市 東伏見). 매일 아침을 오가던 이 길은 내가 떠난 이후로도 변함이 없다. 오래된 양장점과 세탁소, 그리고 철도길.

히가시후시미역 남쪽 출구(南口)로 나와 토리이(鳥居) 쪽으로 걸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이자카야. 지금은 테바사키(手羽先) 전문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자리에 있던 이자카야들은 2년을 채 못 버텼는데 유일하게 롱런하고 있다.

앞 쪽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인근에서 가장 큰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이토만 피트니스(イトマンフィトネス). 여러 운동기구와 함께 수영장도 있어 어린이들도 많이 다니는 곳이다. 와이프도 일 끝나고 이곳에서 운동을 하고는 했었다.

그 정면으로는 철도 건널목(踏切)이 있다. 가장 일본스러운 느낌이 나는 장소. 땡땡땡하는 경고음이 울리면 안전바가 내려오고 곧이어 열차가 지나간다. 이따금 한참을 기다려도 안전바가 올라가지 않아 길을 돌아가기도 했다.

피트니스를 지나면서부터는 주택가가 주욱 늘어서 있다. 대부분이 1~2층 정도의 단독 주택이다. 소위 베드타운으로 출, 퇴근 시간은 물론 평상시에 정말 조용하다.

히가시후시미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마을 중간에 토리이(鳥居)가 있다는 점이다. 신사(神社)로 향하는 길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토리이는 이승에서 신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신성한 마을에 사는 듯한 기분이 든다.

토리이를 지나 도보로 5분 정도 걸으면 히가시후시미 초등학교(소학교)가 나온다. 그 마중 편에 내가 살던 3층 맨션이 자리 잡고 있다.
당연히 가던 곳에 가지 못하니 어딘가 마음이 허해진다. 우리 다음으로 들어온 사람도 좋은 기운 얻어 갈 수 있기를!

주택가를 지나 도로로 나왔다. 널찍한 교차로가 나온다. 주중에는 차들의 통행도 그리 많지 않다. 때마침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었다.

‘삐용삐용’하는 경고음과 함께 켜지는 초록불. 보행자와 자전거 전용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일본 스타일 신호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 신호에 의지해 자주 건넜었다.
마을신사, 히가시후시미 이나리 진자

건너편에는 이 지역의 대표 명소이자 토리이가 곳곳에 놓인 이유이기도 한 장소가 존재한다. 바로 히가시후시미 이나리진자 (東伏見稲荷神社)다. 그 입구에도 커다란 토리이가 세워져 있다.

토리이를 통과하면 계단을 통해 본전에 오를 수 있다. 1929년에 지어진 곳으로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지금도 깨끗하고 깔끔하다.

계단을 올라 큰 문 안쪽으로 신사 본전이 등장한다. 평소에는 인적이 드물지만 새해초 기도를 하러 오는 참배객 행렬로 장사진을 이루기도 한다. 장사 번성(商売繁盛)을 비는 곳이어서 사람들이 몰린다.

신사에 가면 볼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얼핏 보면 약수터 같은 느낌이 드는 테미즈야(또는 쵸즈야. 手水舎)다. 신사(본전)에 가기 전 손과 입을 정화하는 곳이다.

테미즈야는 나름의 사용방법이 있다. 이곳은 어린이들도 많이 와서인지 일러스트로 손쉽게 설명이 되어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국자(히샤쿠.柄杓)로 물을 받아 먼저 왼손을 씻고, 다음으로 오른손을 씻는다. 마지막으로 왼손에 물을 받아 입을 헹군다.

절에 가서 기도나 소망을 적은 등불이나 초를 놓듯 일본 신사에서도 비슷한 것이 있다. 에마(絵馬)라고 하는 나무 팻말에 기도를 적어 걸어 둔다. 이곳에도 여러 소망이 담긴 에마가 가득하다.

본전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내려가는 길. 붉은 토리이를 지나 다시 신사의 정기가 담긴 히가시후시미 마을로 나왔다.
📍히가시후시미 이나리진자
주소: 東京都西東京市東伏見1丁目5−38(*클릭하면 지도 이동)
개방시간: 오전 6시 30분 ~ 오후 5시
마을 공원, 히가시후시미공원

신사 바로 옆에는 지역 공원인 히가시후시미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푸르른 잔디가 가득한 공원. 일 끝나고나 주말에 이곳에서 운동을 하고는 했다.

전체 넓이는 약 5.2㎡로 한 바퀴 일주하는데 대략 1.2km 정도다. 러닝 할 때 공원 4바퀴 정도를 달리고는 했다. 낮이나 주말에는 운동기구를 이용해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시설도 있다. 작은 미끄럼틀과 시소도 있어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 공원이기도 하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바로 이 긴 롤러 미끄럼틀. 전체 길이 49ml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아이들의 꺄르르 웃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조카들이 놀러 왔을 때에도 연속으로 열 번 가까이 타기도 했다. (따라다니면서 자연스레 운동이 된다. ^^)

사람이 없을 때는 미끄럼틀 계단 위에 올라가 주변 경치를 바라보고는 했다. 날이 좋으면 저 멀리에 후지산도 보인다. 일본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이 많은 것을 꼽을 수 있다.
📍히가시후시미공원
주소: 東京都西東京市東伏見1丁目(*클릭하면 지도 이동)
개방시간: 24시간 상시 개방
라멘 맛집, 키치쇼 라멘

공원 구경까지 마치고 마을을 떠나기 전 점심을 먹으러 왔다. 히가시후시미역 북쪽 출구(北口)에서 도보로 3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자양탕(滋養湯的秘力)이라고 쓰인 라멘 가게, 키치쇼라멘(吉笑らーめん)이 있다.

우리 부부가 자주 갔던 돈코츠 라멘가게다. 한 그릇에 900엔대. 여느 돈코츠라멘 가게처럼 면 삶기(茹で方), 맛 진하기(味), 기름 양(油)을 선택할 수 있다. 초심자라면 보통(후츠-,普通)으로 달라고 하면 된다.

주문하고 2분 정도 지나니 돈코츠 라멘이 나왔다. 우리는 항상 라이스도 함께 주문한다. 그럴 이유가 있다.

라멘 위에는 차슈와 멘마, 마른 김 3종 토핑이 올려져 있다. 여느 돈코츠라멘과 비교했을 때 크게 특색 없는 비주얼.
하지만 국물을 먹는 순간 얘기가 달라진다. 마치 진한 설렁탕 국물을 먹는 느낌이다. 그래서 밥이 필요하다.

키치쇼라멘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채 썬 파를 듬뿍 넣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돈코츠 국물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사각사각 거리는 식감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여기에 더해 갓김치(타카나 기무치)도 얹어 먹는다.

정신없이 면을 흡입하고 난 후에 드디어 밥을 투하한다. 돈코츠 국물을 한가득 머금은 밥을 한 수저 떠먹으면 정말 설렁탕을 먹는 기분이 든다.
한국음식에 대한 향수가 강할 때, 또는 자양강장이 필요할 때면 항상 이곳을 찾아왔다. 여전히 맛있다.
📍키치쇼라멘 히가시후시미점
주소: 東京都西東京市富士町4丁目16−6 エクセル東伏見 1F(*클릭하면 지도 이동)
영업시간: 오전 11시 ~ 오후 11시 30분
코멘트: 담백한 느낌의 돈코츠 라멘. 국물은 흡사 설렁탕을 먹는 기분이다. 테이블 위에 있는 파와 갓김치를 듬뿍 넣어 먹으면 맛이 배가 된다. 라이스는 필수! (★★★★★)

라멘까지 다 먹고서는 바로 옆에 있는 엔틱 한 느낌의 카페, 이름도 심플한 ‘킷사텐(喫茶店. 일본어로 카페)’에 들렀다. 진한 드립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곳에서 지냈던 지난날들을 회상해 본다.
정말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이곳, 히가시후시미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