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살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취업해서 경제적 활동을 하려면 ‘기술 / 인문지식 / 국제업무’ 취업(취로) 비자가 필수다.
무난한 비자 코스는 워킹 홀리데이로 와서 아르바이트와 취업 활동을 한 뒤 일본 취업비자로 전환하는 쪽이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관광비자에서 바로 취업비자로 넘어갔다.

일본 워킹홀리데이 떨어지고 입국하던 날
일본행을 알아볼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하는 일이었다. 사증신청 시점에 나이가 원칙적으로 만 18세 이상 25세 이하면 신청 가능하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걸렸다.
당시 회사를 다니고 있어 워킹홀리데이 서류 대행 서비스를 이용했다. 일본어 관련 전공에 JPT와 JLPT N1 자격증까지 있으니 사증은 당연히 나오리라 믿었다.
그러다 사증 발표 날이 밝았다. 주대한민국일본국대사관 홈페이지에서 2013년도 제2사 분기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다. 00000으로 시작되는 번호들. Ctr + F로 신청번호를 검색했다.
‘이상하다, 그럴 리 없는데…’
몇 번을 검색해 보아도 내 신청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여러 차례 고쳐서 다시 검색도 해보고 직접 눈으로도 찾아보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부랴부랴 대행사에 전화했다. 그들 역시 사증 발급이 불허되었다고 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다시 신청한 들 붙일지는 미지수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얼마뒤 지원했던 정부지원 해외인턴사업 서류심사에 합격했다. 이 길 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결국 일본행 티켓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정부 간 비자 협정이 해결되지 않아 관광비자로 입국해야 했다. 관광비자로는 1회 90일 년간 최대 180일까지 체류 가능하다.
그런데 입국하던 날, 입국심사에 문제가 생겼다. 워킹홀리데이 사증 불합격 이력이 일본 입국관리국 전산에도 반영된 모양이었다.
“왜 비자에서 떨어졌죠?”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워홀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했다. 마치 나를 범죄자인 마냥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이어 다른 직원이 와 나를 사무실 한켠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취조를 시작했다. 왜 사증에 떨어졌는지 이유를 다시 물어왔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고 불합격 사유에 대해서 대사관에 물어봤지만 알려주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여전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직원까지 합류해서 둘이서 사유를 계속해서 추궁했다. 입국관리국 직원이면 기본 지식은 갖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얼마뒤 족히 수천 페이지쯤 되 보이는 법전을 하나 들고 나타났다. 그러다 ‘나이’ 항목에 집중했다. 내 나이는 당시 만 25세였다. 아마도 나이 때문에 불합격한 것 같네…라고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략 한 시간에 걸친 취조 후 여권과 리턴 티켓을 확인하고 입국을 승인을 해주었다.
드디어 받은 재류자격인정증명서, 그리고 비자 승인
그로부터 반년이 지났다. 관광비자가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신입 사원으로 채용이 되었다. 일본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시선은 디시 비자로 향한다.
회사와 고용 계약서를 작성하고 취로비자 신청에 들어갔다. 순서는 우선 일본에 있어도 된다는 허가증서인 ‘재류자격인정증명서(在留資格認定証明書)’를 발부받고 업무와 관련된 비자인 인문지식 / 국제 업무 비자를 신청하는 순이다. 일본 입국관리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필요한 서류들을 체크했다. 회사도 비자를 내 준 경험이 많아서 서류들을 척척 준비해 주었다.
문제가 있다면 나의 심리상태였다. 워킹 비자에 떨어졌고 공항에서 심문을 받은 점이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만에 하나 비자 발급이 불허된다면 취업도 물 건너간다.
그래서 이유서(理由書)를 준비했다. 이는 회사에서 왜 이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술하는 편지다. 필수서류는 아니지만 심사관의 감성을 건드리자는 전략이었다.
심사결과 통보는 짧게는 2주, 길게는 3달까지도 걸린다. 서류 접수할 때 함께 제출했던 반송용 봉투나 엽서로 회신이 온다. 만약 비자 만료 전에 비자 발급이 되지 않는다면 한국으로 일단 출국해야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도하는 것 뿐.
신청 후 매일 같이 우체통을 열어 보았다. 원하는 소식이 쉽사리 들려오지 않았다. 혹여라도 심사에 문제가 있거나 부족한 서류가 없는지도 걱정되었다. 그래서 일본인 스텝을 통해 입국 관리국에 종종 확인 전화를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아직 심사 중입니다.’라는 뻔한 답변 뿐이었다.
주말이면 방방곳곳을 돌아다녔지만 비자 신청 이후 방에만 갇혀 지냈다. 도저히 여행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보름이 지났다.
여느 때처럼 입국관리국에 전화를 했지만 심사중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여차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도 습관처럼 우체통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회신용 봉투가 들어가 있었다. 흥분된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내 사진이 박힌 ‘재류자격인정증명서’가 동봉되어 있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의 우여곡절들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만큼 이 종이 한장이 너무도 값졌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날 취로 비자를 신청하러 다시 입국 관리국에 방문했다. 그로부터 2주 뒤, 3년 유효기간이 적힌 인문지식 / 국제업무 비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보통 첫 비자는 1년이라고 하던데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럴려고 마음고생 시켰던 걸까. 이제 일본을 떠나지 않아도 돼! 걱정 끝 행복시작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실감했다.
일본 취업비자 발급과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밑의 포스팅을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