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회사에 입사해 수습기간을 거쳐 정사원이 되기까지, 그리고 재택근무로 이어진 일본 직장생활의 현실. 긴장과 적응, 고립 속 성장을 함께 기록한 이야기.
경력직이어도 새 회사 적응은 힘들다. 입사 후 3개월간은 예외 없이 수습기간이다. 이 기간을 잘 헤쳐나가야만 다음이 있다. 군 생활은 자대 전입 후 첫 3개월이 가장 힘들었다. 한편 첫 직장은 수습기간 적응 실패로 3개월 만에 퇴사. 이런저런 경험의 실타래들이 얽히며 잔뜩 긴장하게 만들었다.
입사 2개월만에 정사원이 되다
도쿄 긴자 옆 유락초에 있는 모바일 액세서리 회사. 패션 브랜드 라이선스(IP)를 활용한 스마트폰 케이스를 제조 유통하는 곳이다.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던 영업지원팀장으로 있던 회사와 동종업계. 두 번의 실패는 없으리라 다짐하며 매일 전철에 몸을 실었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에는 온라인 쇼핑몰팀 소속이라는 것.
회사까지는 세이부 신주쿠선과 JR야마노테선을 타고 1시간 정도가 걸렸다. 바로 전 직장이 있던 고탄다(五反田)보다도 멀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코로나19 팬더믹 사태로 대부분 회사들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는 사실. 대부분을 앉아서 갈 수 있었다. 가는 동안 전날 사내 메신저에 올라왔던 대화내용들과 메일들을 살펴보며 놓치고 있는 게 없는지 체크했다.
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건물 10층에 회사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출입카드로 출입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피스는 크게 두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회의공간과 사무공간. 회의 테이블에 앉아 면접을 봤었는데 이제는 사원증을 걸고 있다. 창 밖으로는 신칸센을 비롯 JR열차들이 지나가는 철도가 내려다 보인다. 아침에는 사람이 없지만 오후부터는 미팅하는 사람들도 테이블이 가득 찬다.

다시 한번 출입카드를 대고 문을 열어 사무공간으로 들어간다. 안쪽에 사장실을 시작으로, 인사/총무팀, 해외영업팀, 영업팀, 온라인팀, 매장팀, C/S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회사도 재택근무가 진행되고 있어 절반 넘는 사원이 출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널찍한 공간이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황량한 느낌도 들지만 오히려 다행이다. 40여 명이 넘는 직원들 얼굴과 이름 매칭하는 일을 잠시 미뤄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특이한 점은 오피스 출근과 동시에 핸드폰 포함 개인 소지품은 사물함에 넣어두어야 한다는 것. 예전에 일본인 친구에게서 회사에서 일할 때 개인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이런 문화가 익숙한 듯 모든 직원들은 사물함에 가방을 넣고 사무용품만 간단히 챙겨 자신의 데스크로 향했다. 만에 하나 급한 연락이 오면 어쩌려고 그러지…?라는 의구심이 들긴 했으나 어느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업무 체크를 한다. 머지않아 업무개시 시간인 9시 30분이 되자 조례를 시작한다. 조례 당번이 ‘조례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외치면 다들 자리에서 일어난다. 임원들이 차례대로 팀별로 업무지시사항을 전파한다. 뒤이어 인사총무팀에서 사내 공지를 발표한다. 마지막으로는 담당 구역별 청소 여부를 체크하고 조례를 마친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업무시간. 온라인팀은 나를 포함해서 4명. 수습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한 명 이상은 출근해서 업무를 설명해 줬다. 전날 매출 결과를 확인하고 주문에 문제가 있으면 고객에게 연락을 취한다. 급한 일들이 끝나면 신규 상품 등록하거나 기존 상품 개선 작업을 이어 나간다. 온라인팀 하루 일과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입사 첫 달은 긴장 속에 보내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몰랐다. 어느 정도 안정을 잡아가던 두 달 차. 그 달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 임원으로부터 1:1 미팅 요청을 받았다. ‘혹시 내가 일 하는 게 기대에 못 미쳤던 걸까…;’ 불안이 엄습해 오는 가운데 1차 면접때와 마찬가지로 그와 회의 테이블에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김상 성과가 우수하고 팀원들이 만족해하고 있어서 바로 정사원으로 임명하기로 결정했어요.”
예상치 못한 제안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입사 때 목표로 세웠던 ‘임원까지 올라가 보자!’는 목표의 첫 관문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달 일찍. 다행히도 수습기간을 끝으로 짐을 쌌던 경험은 더 이상 재연되지 않았다. 그날 바로 인사팀을 통해 정사원 근무 계약서를 작성했다.
재택근무의 희노애락
2020년이 저물어 갈 무렵, 여전히 코로나19는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그동안은 재택근무자는 팀에 지급된 노트북을 들고 퇴근했다. 하지만 회사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1~2명 나오기 시작했고 재택근무를 확대하는 쪽으로 사내 방침이 정해졌다. 컴퓨터는 데스크톱에서 전원 노트북으로 교체되었다. 나 역시 수습기간을 끝마치고 재택근무자 명단에 추가되었다.
생애 첫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출퇴근 시간이 없어지다 보니 하루에 최소 2시간 이상은 아낄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 수면 시간도 늘어났다. 청소 당번도 전화를 받을 필요도 없다. 옷도 적당히 편한 것 입으면 된다. 이런 게 재택의 매력인 걸까. 전 직장에서 풀지 못했던 갈증이 이렇게 해소되었다.
반면 재택을 하는 대신 일부 규율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감시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크게 두 가지 룰이 생겼다. 첫 번째는 각자 노트북에 F-Chair(에프 체어)라는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했다. 이 프로그램은 무작위로 10분에 한 번씩 컴퓨터 화면을 캡처한다. 캡처된 화면은 본인, 그리고 사내 관리자가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동일한 화면이 두 차례 연속 캡처 되었다면 문제가 된다. 화장실 시간이 10분 이상 걸리는 나에게는 조금 불편한 프로그램이다.

두 번째는 매일 일과 종료 전에 시간대별 업무내용을 사내 메신저에 보고해야 한다. 8시간 근무시간에 맞게 근무 내역을 기재하고 팀 리더급에게 승인을 받아야 한다. F-Chair나 업무보고 중 문제 소지가 있는 날의 경우 무단결근 처리. 그 외에 온라인 미팅 시에는 재택근무자는 반드시 얼굴을 비쳐야 한다거나 사내 미팅은 30분 이내라는 것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금세 이러한 규칙에 익숙해졌다.
딱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인터넷. 집에 사용 중인 인터넷은 소프트뱅크 히카리(光)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이 간헐적으로 끊겼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비 오는 날은 이 현상이 더 두드러졌다.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해서 물어봐도 뚜렷한 개선책이 없었다. 몇 차례 연락 끝에 인터넷 단말기를 최신형으로 교체했다. 이전보다 개선되기는 했지만 간헐적 끊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회사에서는 이런저런 사소한 문제를 총무팀에서 해결해 주었다면 재택근무는 모든 걸 직접 해결해야 했다.
한 달에 회사 출근은 한두 번.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두세 달은 그럭저럭 재택근무의 묘미를 제대로 느꼈다. 인터넷만 되면 그곳이 꼭 집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물론 급한 일이 있을 경우는 출근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어야 했지만. 출근이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었다. 회사에 없는 동안 입사자와 퇴사자가 번갈아 생겼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기에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도 힘들었고.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대략 반년 정도가 되었을까. 일종의 후유증 같은 것이 찾아왔다. 사람이 그리워진 것일까. 매일 같이 집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답답해졌다. 전에는 일 하면서도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식사도 하고 퇴근길에 술도 한잔하고 했는데. 전직하고 나서 가졌던 입사 환영 런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 하고도 식사조차 한 적이 없었다. 출근 테이블에도 팀 내 인원이 겹치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는 대부분 가상공간에서만 이루어졌다.
집에 있어도 퇴근 시간이 기다려지는 건 매 한 가지였다. 그래서 일이 끝나면 반드시 주변 공원을 뛰었다. 그렇게라도 답답함을 이겨내고 견뎌냈다. 이렇게 집에 박혀 일만 하다가 죽을 바에 한국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었다. 잠깐 잊고 있던 향수병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 자체는 능률이 올라갔다. 재택 중에도 야근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업무시간 내에 모든 걸 해치우고 싶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집중을 발휘했다. 매일 8시간을 전력질주했다. 10분의 흔들림도 없이. 그 덕분이었을까. 분기 실적 마감 때 팀 내에서 유일하게 성과목표(KPI)를 120%로 초과 달성했다. 그렇게 반년만에 팀 리더급으로 승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