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일본 인턴과정으로 왔다가 졸지에 취업을 해버렸다. 예상했던 전개는 아니었지만 정직원 채용은 내심 기대하던 바였다. “언젠가는 일본에 살아 보고 싶다.”는 꿈을 고작 반년만에 끝내버릴 수는 없었다. 대신 필리핀 어학연수의 꿈은 잠시(실은 평생) 미루어졌지만.
팩스와 함께한 일본 인턴 생활
당시 근무하던 회사는 한국 중소기업의 일본진출을 서포트하고 있었다. 공기업 코트라(KOTRA) 역할을 하는 민간기업이다. 한국 기업들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일본 바이어들에게 알리고 매칭을 주선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바이어들에게 홍보할 자료를 만드는 것이 내 업무 중 하나였다.

컴퓨터로 열심히 홍보자료를 만들고 출력했다. 그대로 이메일로 보내면 간단했겠지만, 2013년 당시에도 아직 팩스(FAX)가 주요 업무서신 수단 중 하나였다. PPT를 흑백으로 출력한 뒤 복합기에 있는 팩스 번호자판을 눌렀다. ‘띠리리리~’ 팩스 신호음이 들리면 동그란 송신 버튼을 눌러 바이어에게 자료를 보냈다.
이메일보다 팩스를 선호하는 대표적 이유는 용량 때문이다. 메일계정 용량이 적어 첨부파일이 동봉된 메일이 제대로 전송되지 않거나 용량이 꽉 찬 바람에 다른 메일을 받지 못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는 했다. 가뜩이나 상대에게 피해(迷惑:메이와쿠)를 주는 걸 꺼려하는 일본인에게 팩스는 훌륭한 정보송신 수단이었다.
팩스를 보내다 보면 예전 생각도 난다. 군에 입대할 때 주특기가 기록통신장비운용병, 일명 팩스병이었다. 군사문서를 암호화장비가 연결된 팩스기를 통해 다른 예하사단과 주고받는 업무였다. 그 대상이 일본 바이어로 바뀐 것이다. 모든 경험은 어딘가에 쓸모가 있나 보다.
웹페이지 하나가 만든 정직원 전환의 기적
하루는 바이어에게 보낼 자료에 대한 미팅이 있었다. 그때 문득 원 대리님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고 보니 형민이 너, 홈페이지 만들 수 있다고 했지?” 인턴면접관이었던 대리님은 이력서에 적힌 ‘특기’란을 기억해 낸 듯했다. 홈페이지 만들기는 초등학교 때부터 취미였다. 나모웹에디터로 꽃 흩날리는 사이트를 만들고는 했었다.
매번 팩스나 이메일로 자료를 보내고 잘 받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여러모로 수고스러웠다. 그래서 대안을 물색하던 중 온라인 홍보가 튀어나온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경험이 없어서 시도도 못했는데 내가 등장한 것이다. “네. 취미로 몇 번…” 특별히 디자인에 재능도 없었거니와 (어리석게도) 홈페이지 만드는 걸로 밥 벌어먹고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소 자신 없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상사, 그중에서도 팀을 이끌던 부장님이 눈을 반짝였다. 그러면서 홍보자료를 웹페이지로 만들어 볼 것을 주문했다. 바이어에게 메일 파일첨부 대신 URL 링크만 보내자고 말이다. 10여 명이 되는 팀 안에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텍스트 에디터와 포토샵을 실행시켰다. 텍스트 에디터에는 HTML 태그를 넣어 페이지를 만들었고 포토샵으로 필요한 이미지들을 가공했다. 만들어진 자료는 내가 사용 중이던 호스팅에 올렸다.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그동안 PPT로 만들던 것과 유사한 형태의 홍보 자료가 웹브라우저에 띄어졌다. 이날 이후 모든 자료는 온라인에 공개가 되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본사에 있는 사장님에게도 보고가 되었던 모양이다. 때마침 다른 인턴들과 달리 유일하게 대학졸업까지 마친 상황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친김에 정직원 채용으로까지 이야기가 흘러갔다. 인턴 종료까지 2달도 안 남은 시점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기존에 하던 일과 더불어 일본 최대 온라인 쇼핑몰 라쿠텐(楽天市場)에 한국상품을 올리는 일도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물론, 흔쾌히 수락 했다. 2주에 거친 사내 채용 검토가 있었고 회사 최초 인턴 출신이자 대졸 신입사원으로 입사가 확정되었다. 첫 취업 실패 후 반년만에, 그것도 일본에서 이루어낸 역사적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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