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5일. 오늘로 일본 땅을 밟은지 만 8년이 되었다.
지난 2013년, 27살의 나이로 해외인턴쉽 프로그램을 통해 도쿄에 왔다. 그리고 벌써 9년째. 대학교때 일본학을 전공 하기는 했지만, 사정상 3박 4일정도의 짧은 여행 3번정도가 일본을 경험한 전부였다. 그랬기에 일본 생활에 대한 동경은 늘 클 수 밖에 없었다. 교환학생이나 워킹을 다녀 온 선후배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리고 지금은 내가 아는 다른 사람들보다 장시간에 걸쳐 일본에 거주 중이다. 2,922일 이라는 시간을 일본, 도쿄에 있으면서 나도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었고 이제는 이곳이 고향 같은 느낌도 든다. 최근에야 코로나로 한국을 2년째 들어가지 못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종종 한국 출장길에 오르고는 했는데 국내 공항에 내리면 왠지 우리나라가 외국처럼 느껴질 정도 였다.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고 하는 일본에서 지난 8년간의 추억은 너무도 소중하고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가장 큰 자산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고 모두 좋았던 것만은 아닌 것도 사실. 이상과 현실은 별개라는 말이 있듯이.
그렇다면 일본생활은 어떤 것이 좋았고 어떤 것이 별로 였을까? 지난 8년간을 되돌아 보며 갈무리해보고자 한다.
#장점1. 자유가 있다.
내가 일본 생활에서 가장 큰 만족을 느꼈던 것은 바로 ‘자유’다. 물론 이게 꼭 일본이 아니라도 가능 할 수는 있겠지만, 먼저 한국에서 얽혀 있던 다양한 관계의 끈들을 잠시 내려놓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특히나 우리나라보다 개인주의가 강한 일본이다보니 대체로 주변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아마 도심 쪽으로 갈수록 이러한 현상이 심할텐데, 나는 그런면에서 일본, 특히나 도쿄가 생활에 맞았다. 어쩌면 심하다고 할만큼 조용하기도 하지만 정신 없는 것 보다는 낫다.
#장점2. 서비스가 좋다.
일본 살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서비스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서비스질이 많이 올라갔다고 하지만 일본은 서비스 질은 기본 중의 기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식당의 경우, 우리나라는 테이블 위에 물수건이나 물, 그릇 등을 그냥 툭툭 놓고 가는 경우들이 많았다. 나도 그런 것들에 대해서 특별히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었다.
그런데 일본에 오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물을 주건 그릇을 주건 혹은 음식을 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던 하나하나 친절, 성의를 다해 놓아 주었다. 작은 요청 하나에도 극도로 친절하게 반응하니 오히려 이쪽이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다. 물론 매장이나 직원에 따라 서비스 질이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퀄리티는 확실히 좋은 것 같다. (그만큼 직원들 최저임금도 높고, 음식값도 비싸기는 하다.)
#장점3. 치안이 좋다.
어디에 살건 중요한 건 치안일 것이다. 연일 뉴스에서 흉악범들의 소식을 들으면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 그렇다면 일본은 과연 안전할까?
일본이라고 흉악범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에도 전철내에서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연쇄살인 등 사건 사고가 생각보다 적은 것 같다. (통계적이 아니고 느낌상이다.) 그 이유는 아마 지역 곳곳에 코방 (交番:こうばん)이 많아서 인 듯 싶다.
내가 사는 지역은 도쿄 중심부에서 벗어난 작은 도시인데도 길가 편의점 수 정도로 코방이 있는 것 같다. 밤이면 자전거를 타고 지역 곳곳을 순찰하는 경찰관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들의 존재가 있는 것 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된다.
이 외에도 많은 장점들이 있겠지만 살면서 가장 좋았던 것들이다. 그렇다고 다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요즘은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가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일본에 살면서 불편한 부분이었을까?
#단점1. 느리다
일본의 단점 중 단연 1위는 일 처리가 느리다는 것이다. 특히 행정에 대한 부분이 그런데, 우리나라는 인터넷으로 처리 할 수 있는 공공행정 관련 업무들이 많지만 일본은 아직도 구약소에 방문해서 일을 처리하고 또 그로부터 몇일을 기다려야 일이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지나치게 메뉴얼에 의존한 일 처리를 하다보니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유도리가 없는 경우도 많다. 누가 생각해도 ‘A’를 선택하는게 맞는 상황에서도 메뉴얼에 없다는 이유로 기존의 방식인 ‘B’ 대로 처리한다. 좋게 보자면 행여 생길지 모르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지만 나쁘게 보자면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건 일반 기업들의 일처리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모습이기도 한데, 얼마전에 렌트 예정이었던 쉐어카가 사고나는 바람에 다른 지역에 있는 주차장으로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쉐어카 업체에서는 주차장까지 이동비용은 줄 테니 택시를 타라고 하면서 영수증을 보내 달라고 한다. 그런데 영수증을 첨부할 자료를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접수부터 환급까지는 최대 3주 이상이 걸린다는 말과 함께. 요즘 같이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게 많은 세상에서도 우편이 중심이다.
#단점2. 교통비가 비싸다.
지금은 적응되기는 했지만 교통비가 정말 비싸다. 전철/지하철의 경우 우리나라도 많이 오른 것 같지만 일본은 그 이상인 것 같다. 내가 출퇴근 하는 거리는 편도 440엔인데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조건 (1시간 정도 거리) 이라면 2천원이면 갈 수 있을 정도다.
택시는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승차시 기본료가 1.052km까지 410엔 정도다. 바로 역 하나 더 가는 정도(3.4km 약 11분 소요)는 무려 1,700엔 정도가 나온다. 그래서 택시는 정말 급하거나 짐이 많을 경우가 아니면 거의 이용하지 않는 편이다.
최근에 운전을 하다 보니 고속도로도 이용하게 되는데 고속도로 또한 통행료가 비싸다. 서울에서 양양(약 155km)까지 통행료가 1종 기준 11,700원 정도인데 그보다 가까운 거리 (예: 도쿄→군마 133km)가 3,150엔이다.
교통비가 워낙 비싸다보니 알바나 직장인의 경우 회사에서 교통비 정액권 비용을 지급해준다. 자기 월급으로 교통비를 감당하라고 하면 금새 교통비로 다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단점3.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존재한다.
같은 동양권이고 생김새도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존재한다. 예전에 식당에서 한국말을 했었는데 뒤에 있던 테이블에 있던 한 일행이 “韓国人、大嫌い!(한국인 완전 싫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이 말을 듣고 당연히 화가 났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괜히 사고라도 나게 되면 일본에서 살기 어려워 질 수도 있으니까…
간혹 있는 경우인데, 서비스 시설을 이용할 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반말을 하거나 일본 사람과는 다르게 다소 불친절하게 하는 경우들도 있다. 물론 이런 가게들은 클레임 하고 안가면 그만이지만 같은 돈을 내고도 제대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부분이다.
그리고 취업에 제한이 당연히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격이나 일본 생활 경력 (일본 학교 졸업 등), 그리고 직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면접 기회 조차 주지 않는 회사들이 상당히 많다. 내가 예전에 전직 컨설턴트를 통해서 이력서를 냈던 기업에서 서류 탈락 연락을 받았을 때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외국인이라서 우리와 업무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이건 세계 어느나라를 가도 있을 법한 일이기에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같은 노력이 있다면 기왕이면 일본인을 뽑는게 어쩌면 고용주 입장에서도 편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이런 정도의 차별을 감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상이 지난 8년간의 생활을 돌아보며 느낀 일본생활의 대표적 장단점 들이다. 나열하자면 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니까. 누군가에게는 최고로 좋은 나라가 될 수도 최악의 나라가 될 수도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지난 8년이라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앞으로 몇년을 이곳 도쿄에서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최대한 만끽하고 살고 싶다. 아직도 일본에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