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살면서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매운 음식이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매운 음식을 즐기는 문화가 아니어서 일 수 도 있다.
이날도 어김없이 퇴근을 하고 가부키쵸(歌舞伎町) 쪽으로 들어설 때 였다. 오쿠보공원에서 무언가 행사를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서보니 게키카라 구루메 마츠리(激辛グルメ祭り)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게끼카라는 우리말로 하자면 불맛정도?!
배가 고프기도 했고 호기심도 생겨서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한참 저녁 먹을 시간대여서 인지 행사장안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오쿠보공원 입구쪽으로 다양한 종류의 매운 음식 부스가 자리잡고 있었다. 일본 우동에서부터 태국 똠냥꿍, 네팔 카레, 그리고 한국 곱창볶음까지 다양한 종류의 메뉴가 내걸려 있었다.
나는 그 중 가장 매워보이는 우동 (무사시노우동 후지와라)을 선택했다. 기왕 도전하는거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얼마나 매울지 모르겠지만 우동에 해골표시가 그려져 있다. 이름하여 도쿠로 우동(ドクロうどん). 가장 매운 DEATH UDONG은 행사장 운영방침상 제공이 안된다고. 얼마나 맵길래 도대체!!
그동안 여러번 일본 식당에서 매운맛 음식을 도전해 봤지만 사실 그리 맵지 않았다. 아마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이 생각하는 매운맛의 기준이 달라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리 맵지 않겠거니 생각하고 번호표를 받고 메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메뉴를 기다리는 동안 옆에서 드링크를 따로 팔고 있길래 맥주를 하나 살까 싶었다.
알고보니 메인 요리와 달리 드링크는 이곳 전용 판매기에서 별도 구매해야 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줄을 빠져 나와서 자판기로 직행.
생맥주(프리미엄 몰츠)는 600엔이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맥주가 빠질 수는 없지! 😎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게키카라 도쿠로 우동이 등장했다. 우동 면말 위에 자세히 보면 해골 모양으로 고춧가루가 뿌려져 있다.
우동면을 찍어 먹는 소스는 빨갛다 못해 시뻘겋다. 그 위에 떠 있는 고추는 아 진짜 매워보이기는 하다. ㅎㅎㅎ
함께간 여자친구는 한국 코너에 가서 물냉면을 주문했다. 매운 우동을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서 선택하기 무난한 음식이었다.
이제 맥주까지 나왔으니 본격적으로 먹어보자! 과연 얼마나 매울까?!
면 발 위에 뿌려져있던 고춧가루를 면에 골구로 비빈 후 시뻘건 소스에 푸욱 담갔다가 입으로 후루룩 소리를 내며 흡입했다.
“아… 망했다!!!”
순간 입에 매운 기운이 올라오면서 이내 재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맵다. 진짜 맵다. 그런데 얼큰한 매운맛이 아닌 그냥 진짜 매운 맛이다. 거의 벌칙게임 수준 😭
너무 매웠던 나머지 먹고 남은 물냉면 육수에 면을 (헹구어) 먹었다. 사실 냉면도 그저 그랬지만 이것마저 없었으면 큰일 났을 뻔…
얼얼한 속을 달래기 위해 추가로 네팔카레를 주문했다. 막 구워 나와 따뜬한 난과 찍먹 할 수 있는 카레가 담겨져 나온다.
카레도 조금 매운맛이기는 했는데 그다지 맵지 않았다. 우동 때문에 얼얼했던 속이 그나마 부드러운 난을 만나서 조금 중화 된 기분이었다. 😅
이렇게 다 먹고나니 어느덧 밤 8시를 넘어섰다. 9시면 폐장을 한다는데도 공원 안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역시 한국사람에게는 한국 스타일의 매운맛이 최고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마 내년에 게키카라 마츠리가 있어도 또 안올 듯 하다.
📍오쿠보 공원 (大久保公園)
〒160-0021 東京都新宿区歌舞伎町2丁目43
게키카라 구루메 마츠리 홈페이지: https://gekikara-gourm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