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어떤 회사생활을 했는지 들려주고자 글을 적기 전에 그나마 진짜 일본 회사였던 마지막 회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찾아봤는데 단 한장도 없다!

사진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구글포토에는 회사 출입구 사진, 점심시간에 찍은 음식 사진, 회사 퇴근 후 주변 풍경…그것 말고는 없었다. 회사 동료들과 찍은 사진 조차도 없다니… 나는 정말 회사를 다녔던게 맞는 걸까? 사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본회사 명함 일부
마지막 회사 명함. 그래도 명함이라도 남아 있어 다행이다.

출근 후 핸드폰은 사물함에

예전에 한국계 일본회사에 다녔을 때 알고 지내던 일본 지인들은 주간에는 이상하리만큼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사정을 들어보니 출근하면 개인 핸드폰 등 사적인 물건 사물함이나 서랍에 넣어 두고 업무 중에는 절대(!) 만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핸드폰으로 거래처에서 연락이 올 수도 있고 집에서 급한 연락이 오면 어쩔려고…?’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다지 그럴 일들이 없없었나보다. 외부 연락이 필요한 경우는 회사 전화로 하거나 업무용 핸드폰을 지급 받으니 개인용은 별로 만질 일이 없는 것이었다.

개인 카톡으로 사적 대화도 업무도 하던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사적(프라이빗) 영역과 공적 영역이 구분이 되어 있어 개인 휴대폰 번호를 외부에 노출 시키는 경우가 적다. 간혹 일본인 명함에 핸드폰 번호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일부러 넣지 않거나 또는 그정도로 외부활동이 없는 경우이다. 회사에 출근하면 자동적으로 디지털 디톡스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일할 때는 정말 일만 한다.)

일본 회사 퇴근할 때 엘레베이터에서 찍은 사진.
퇴근할 때 엘레베이터에서 찍은 사진. 그렇게 핸드폰이 반가울 수가 없다.

청소 당번과 전화 당번

매일 아침 출근하면 당번표를 먼저 확인했다. 날에 따라서는 비번인 경우도 있지만 코로나 이후로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부터는 아침 출근은 곧 청소를 의미했다.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닐때 열심히 하던 청소를 회사에 와서까지 할 줄이야… (물론 공동공간을 깨끗이 쓰자는 것이니 나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점심시간 전화당번(뎅와방:電話番)을 하는 날도 있다. 이날은 평소보다 점심시간이 한시간 늦춰진다. 다른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러 간 동안 걸려오는 전화를 대응 하는 것이다. 어차피 다른 회사들도 오후 12시경에는 점심시간이어서 그리 많이 걸려오지는 않지만 간혹 전화가 쉴 새 없이 올때도 있다.

전화를 받고 용건을 확인한 후 해당 담당자에게 구두 또는 사내 메신저로 사실을 통보하고 나서 뒤늦은 점심시간을 맞이한다.

아침 9시. 조례와 함께 시작

“조례 합니다. (朝礼です)”

당일 조례 진행 담당자가 모두에게 외친다. 그럼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리 또는 지정 장소에서) 조례에 참가한다. 주로 각 사업부별 간부들의 중요사항 전달과 총무/인사팀의 공지사항 전달이 있다.

조례 진행 담당자는 열심히 조례 사항을 메모하고 혹시라도 개인사정 또는 외부 일정으로 조례에 참석하지 못한 직원들에게 해당 내용을 공지한다.

코로나 이후로는 사내 메신저 화상채팅 기능을 이용해 조례를 실시간 중계(!)했다. 그래서 조례 진행 담당자는 아침에 일이 하나 더 늘어났다. 미리 회의용 노트북을 실행해서 카메라와 마이크 상태를 점검하는 일이다.

대략 5분 이내로 짧게 진행되는 만큼 조금이라도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 있으면 잘 들리지도 않고 내용을 놓치기 십상이다. 간혹가다가 공지에 조례내용이 잘못 올라오면 여러 사람들의 코멘트가 달린다.

화상으로 참가하는 아침 조례


퇴근 후는 사요나라

회사 일이 끝나면 다들 테이블에 올라와 있던 짐을 책상 밑 또는 사물함에 가져다 넣는다. 자기 자리를 열심히 꾸미는 우리나라의 데스크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그렇다고 따로 파티션으로 나뉘어 진 것도 아니니 도서관 긴 테이블 같은 느낌이다.

”먼저 실례 하겠습니다. (先に失礼致します)”라고 인사를 하고 지하철 시간에 맞추어 다들 서둘러 회사를 탈출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친한이들끼리는 일 끝나고 저녁이나 술 한잔을 함께 하는 경우들도 있다.

나는 팀원이 전부 여자였던지라…따로 술을 마시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코로나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외부 술자리는 없었다. 정말 회사→집→회사→집의 연속이었다. 다행이 다른 팀에 같은 한국인 선배가 있어서 출근날이 겹치거나 퇴근시간이 맞는 날에 간혹 술 한잔 했던게 전부였다.

퇴사날의 풍경

회사 이사(取締役)에게 퇴사의사를 내비쳤고 이내 퇴사날짜를 조율 했다. 남은 연차를 이 기간에 몰아서 쓸 수 있다. 마치 군대 말년휴가처럼.

그렇게 마지막 출근날이 밝으면 먼저 회사에서 지급 받았던 비품들을 모조리 반납한다. 노트북은 초기화를 해서 전달하고 회사 출입카드도 반납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사 곧곧을 돌며 신세를 졌던 (お世話になった) 동료들에게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총무/인사팀과 마지막 시간을 갖는다. 퇴사 서류를 작성하고 퇴직후 필요한 행정처리 등에 대한 안내도 받는다. 당일 제공 받지 못하는 서류는 후일 우편으로 집으로 보내준다.

마지막날 일본회사에 제출했던 퇴직원
마지막날 회사에 제출했던 퇴직원

그렇게 한 회사에서의 여정이 마무리 된다.

지금까지 적은 이 이야기는 모든 일본 회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정말 자유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회사들도 있고 쌍팔년도 군대 같은 느낌의 회사도 있다. 아쉽게도 내가 마지막에 경험했던 회사는 후자에 가까운 쪽이었다. 다만 내 얘기에 공감하는 일본인 지인들이 많은걸 보면 크게 독특한 것은 아닌가 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회사 분위기야 어찌되었던간에 안에 있던 동료들과 좀 더 친밀하게 지냈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한국에서 회사를 다녔어도 마지막 소감은 비슷했겠지?


2 Comments

  • 라이언
    라이언
    2024년 1월 12일 at 7:52 오전

    타지에서 그냥 생활하는 것도 힘든데 일본회사에서 업무까지 하느라 이래저래 정말 고생 많았구나. (토닥토닥)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어찌 없을 수 있겠냐먄 저런 일들이 있었기에 내적으로 더 단단해지지 않았으려나..하고 생각해봐. 오늘 하루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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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민
      2024년 1월 14일 at 9:22 오후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 어제의 내가 있으니 오늘, 그리고 내일의 내가 있다는 믿음으로 계속해서 힘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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