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쉽다. 컴퓨터만 다룰 줄 안다면 개인사업자는 물론 법인도 쉽게 설립할 수 있다. ‘온라인법인설립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일본에 있으면서도 국내에 법인을 설립할 수 있었다. 개인인증과 공인인증서만 있다면 나머지는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기본 포맷을 활용하면 된다. 등록에 문제가 있어도 담당자가 친절히 연락을 주니 별다른 지식이 필요 없다.
단번에 회사를 설립 했고 직원 아무개에서 대표(사장) 김형민이 되었다. 초고속 승진이다. 창업하지 않았다면 평생 경험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으로 직원 수십, 수백명을 어우르는 카리스마 있는 대표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너무 짜릿하다. 창업을 하고 맞이하는 첫 기쁨이다. 이제 현실로 만들면 된다.
운이 좋게도 창업전부터 업무 의뢰가 들어왔다. 액수는 크지 않았지만 적어도 회사 다닐때 받던 급여수준은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창업초 가장 어려운 점이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끊기는 점이라고 했다. 그래서 6개월 내지 1년간은 수입이 없을 걸 각오하고 여유자금을 모아두라는 조언이 많았다. 다행히도 이런 고충 없이 순조로운 스타트를 할 수 있었다.
매일 한시간씩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없어졌다. 출근 체크, 청소 당번, 조례, 업무보고 등등. 회사 다닐때 의례적으로 하던 것들이 없어졌고 9-6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내 의지대로 움직이면 된다. 아직 회사 다닐때 습관이 남아 있어서 9시경부터 업무를 시작했지만 오후 5시면 일단 일을 멈추고 1시간정도 공원에서 운동을 했다. 월차를 썼을때나 가능하던 일들이 매일 같이 가능해졌다.
창업이라는 열매는 그 첫 맛이 너무나 달콤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진작 창업할걸 그랬다며 자조섞인 농담도 여러번 했다. 상사 눈치보거나 결재 받을 필요도 없으니 일도 척척 진행되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일 년이 지났다. 대박은 없었지만 꾸준히 ‘평타’를 이어갔다. 추가로 1~2개 정도 프로젝트 수주만 한다면 적어도 중박까지 성장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창업전부터 진행했던 컨설팅이 계약 연장 없이 종료 되었다. 소정의 성과는 달성했지만 신규채용 등 사내 변화가 있었던 것이 요인이다. 그리고 계속 이어오던 크라우드펀딩 대행도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시장성장 둔화와 함께 의뢰가 줄기 시작했다. 자본과 인프라를 갖춘 경쟁사도 늘어났다. 이러한 외부환경 변화에 면밀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그나마 일본 온라인 판매대행 상품에서 반응이 나오면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매월 20일은 월급날이었다. 회사사정이 어떻든(!) 꾸준히 정해진 날에 계약된 액수가 입금 되었다. 6개월에 한번씩 상여가 있고 연말에는 다음년도 연봉협상이 있었다.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돈의 양을 늘리는게 최대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회사를 만들고나니 ‘고정’이라는 것은 없었다. 하루, 하루가 급등과 급락을 왔다 갔다 하는 주식차트 같다. 그나마 (국내)주식이야 상한선, 하한선이라도 있지. 사업에는 그런게 없다. 모 아니면 도다.
창업을 한지 1년이 되서야 비로서 깨달았다. 내가 다녔던 회사들이 얼마나 대단한 곳이었는지를. 수십, 수백명의 매월 급여에 기타 각종 비용들을 감당하고도 이익을 내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새내기 대표는 아직 갈길이 멀다. 직원고용은 커녕 사장 인건비 확보조차 불투명하다.
언론, 정부 할 것 없이 창업의 단맛을 강조한다. 하지만 단맛보다 쓴맛, 매운맛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대신 얼마나 건강한 쓴맛, 맛깔 나는 매운맛을 낼지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행하고 보완해 나가야 한다. 창업 2년차를 맞이한 지금,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