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비자 받고 집 계약하기까지

일본에 있을 때부터 추억을 꾸준히 쌓아온 이 블로그. 200여 편의 글이 올라와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읽히는 글은 [일본 9년 차. 일본생활을 통해 겪은 장단점 돌아보기]이다. 2021년 9월 5일에 올렸는데 일본생활 만 8년이 되는 순간이었다.

일본에는 2013년 9월 5일, 도쿄 나리타 공항으로 입국한 이래로 2023년 10월 1일까지 만 10년을 꽉 채우고 쭈욱 살았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강원도 도합 15년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 산 곳이 도쿄다. 그래서 도쿄는 제2의 고향이다. 얼마 전 도쿄에 다시 갔을 때는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돌아갈 집이 없다는 사실에 조금 쓸쓸하기는 했지만.

가깝지만 먼 나라라고 하는데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비행기로 3시간, 바다를 건너 날아가면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나리타로 도착한다면 치바현의 농장들이 눈 밑에 들어온다. 그 주변으로 아담한 2층집들이 보일 것이고 줄일 때로 줄인 일본식 경차들이 달리는 도로 모습도 포착할 수 있다. 인천공항 착륙 전 마주하게 되는 아파트 숲은 보이지 않는다. 풍경만큼이나 일본은 한국과 다른 곳이다.

대학교 때 일본학을 전공했기에 일본을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책 밖의 일본사회는 많은 것들이 달랐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도쿄 시내는 활력이 돌고 있었다. 시부야역에서 내리면 마주하게 되는 교차로인 스크램블은 매 신호가 켜질 때마다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건너갔다. 그 모습을 담기 위해 건너편 츠타야 2층 스타벅스 창가자리에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나마 들어맞는 것이 있다면 매뉴얼 사회라는 점이다.

외국인이 일본에서 살아가려면 유학비자, 취로비자 등이 필요하다. 일본에 있으면서 총 4번 취로비자를 발급받았다. 비자는 1년, 3년, 5년 등으로 기간이 나뉘는데 모두 3년짜리였다. 비자를 한번 갱신하려고 하면 서류 준비가 필수다. 회사를 옮기지 않는다면 단순하지만 이직이 잦았기에 매번 처음 준비하는 것만큼 서류를 준비했다. 한 번은 40장이 넘는 회사 매출 관련 자료를 제출한 적도 있다.

시나가와에 있는 도쿄출입국재류관리국(뉴칸)은 아침 일찍부터 비자발급이나 갱신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서류 접수까지도 시간이 꽤 걸리지만 접수 완료 후 결과를 통보받기까지도 한 달 이상은 소요된다고 보는 것이 좋다. 신청서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용으로 나뉜다. 첫 비자를 발급받을 때 고용주 항목에 있는 피고용인 정보에 있는 전화번호를 공란으로 두었다. 실제로 번호가 없기도 했다. 서류를 유심히 살피던 직원은 공란으로 두면 안되고 ‘없음(なし)’이라고 적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적으려 했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서류는 회사에서 작성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다시 적어서 받아 오세요.”

서류는 이미 회사 대표날인도 되어 있고 직접 전화로 확인까지 해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서류접수를 거부당했다. 만일에 있을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원칙을 중시하는 것은 백 번 옳은 일이다. 다만, 이 정도는 유도리를 발휘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일본 관공서뿐만 아니라 많은 회사들도 매뉴얼을 중시한다. 매뉴얼에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답답함은 일본 사는 내내 느꼈다. 아니, 익숙해졌다.

비자만큼이나 애를 먹었던 것은 집을 구하는 일이다. 전세 개념이 없기 때문에 매매가 아니면 월세다. 보통 계약금으로 시키킹(敷金)과 레이킹(礼金)을 낸다. 시키킹은 보증금과 같은 것이고 레이킹은 집을 빌려준 데에 대한 사례금 같은 것이다. 여기에 부동산 중개수수료도 들어간다. 시키킹 1, 레이킹 1과 같은 식으로 표현되는데 각 집세 한 달치를 의미한다. 보통은 세 달치의 월세만큼 초기 비용으로 지불한다. 계약은 기본 2년 단위다.

일본에서 비자를 받고 나서 원룸을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을 기웃기웃거렸다. 일본 도시에 가면 편의점만큼이나 부동산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 들어가서 물어보면 부동산 직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집주인이 ‘외국인 사절’을 표했다고 알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인 즉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소리 소문 없이 자국으로 떠난 외국인들이 많았단다. 월세도 못 받고 집안에 남아 있는 짐을 처리하지도 못해서 일본의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때의 여파가 강한 모양이다.

그래서 부동산에 상담하러 가기 전이면 ‘외국인 가능 물건’을 보여줄 것을 요청한다. 그래야 헛수고할 일이 줄어든다. 마지막 살았던 곳은 일본 부동산 기업인 ‘다이와 하우스(大和ハウス)’가 관리하는 물건이었다. 운이 좋게 신축 건물 두 번째 입주자였고 조금 월세가 오르기는 했지만 갱신해서 같은 곳에서 살았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중교통 접근성 등으로 가격 차이가 나고 관리비(광열비)는 별도인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살았던 마지막 집의 모습
일본에서 살았던 마지막 집의 모습

일본에서 살아가는 모습

당시 살던 지역은 니시도쿄시(西東京市)에 위치한 주택가였다. 지역 내 높은 건물이라고는 5층 규모의 연립주택 정도이고 대부분은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도 역사 주변을 제외하면 한산하다. 집 근처에 큰 공원이 두 개나 있는 것은 축복이다. 낮에는 근처 초등학교(소학교) 아이들이 와서 놀고 저녁에는 일과를 마친 이들이 나와 산책이나 가볍게 러닝을 한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큰 공원은 일주(一周)하는데 약 1.6km, 작은 공원은 0.7km 정도다. 한번 뛰면 보통 5km 이내를 뛰었기 때문에 각 공원을 여러 바퀴 뛰거나 또는 이 공원에서 저쪽 공원으로 이어서 뛰었다. 그러면 목표했던 거리가 나온다. 일본에서도 역세권은 중요하지만 소위 ‘공세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공원 하나로 삶의 질이 달라진다. 매달 빠져나가는 세금으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지다.

매달 급여 300여만 원 정도를 받아도 그중의 30% 가까이는 연금 포함해서 이런저런 세금으로 나간다. 집과 관련된 비용도 월 1백 가까이 빠져나가니 손에 남는 마지막으로 이런저런 생활비를 충당해야 한다. 저축 이자도 0.00% 대가 붙기 때문에 사실상 0에 가깝다. 그래서 돈을 모아서 무얼 하기보다는 그달 벌어 그달 사는 게 어쩌면 현명한 생활 방법인지도 모른다.

일본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일본물가는 체감상 비쌌다. 교통비가 유독 비싼데 회사에서 월 정기권 (대략 1~2만 엔) 비용을 추가로 지급해 주니 출퇴근 루트만큼은 비용절감이 가능하다. 요즘은 대한민국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일본이 더욱 싸다. 많이 줄기는 했어도 원코인(500엔 동전)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들도 있다. 덮밥체인 스키야(すき家)에서 보통 사이즈 소고기덮밥을 먹으면 엔화 430엔이다. 마트에 가도 소분된 식재료가 많다. 일찍이 1인 가정이 퍼져서 그런 것인지 필요한 만큼은 사고 보는 라이프 스타일이 정착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불필요한 장값을 줄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일본에 살면서 바로 옆집 사람과 인사를 나눈 경험은 쉐어하우스에 살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동선이 서로 겹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일부러 옆집을 찾아가서 벨을 누를 일이 없다. 이사를 처음 갈 때 옆집, 아랫집에 인사차 간단한 선물을 한다. 그마저도 부재중이어서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회사에서도 종종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오미야게(선물)로 지역 과자나 기념품을 나눠주기도 하지만 받았으면 돌려줘야 하는 일본 문화가 있다 보니 선물 금지령을 내리는 회사들도 있다. 

주변에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周りに迷惑をかけないように)는 일본식 매너교육이 개인주의를 발달시켰는지도 모른다. 옷깃만 스쳐도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을 내뱉는다. 그저 서로의 공간을 존중해 주면 된다. 한국과는 많이 다른 부분이다. 심지어 연인사이에도 일주일에 한, 두 번 연락하는 경우들도 심심치 않다. 2010년대 초반 한 일본 예능에서 한국 연인의 대화(카톡) 화면을 보여주자 모든 패널들이 놀래기도 했다. 지금은 라인(LINE) 같은 메신저가 보편화되어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출가한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얽히고설킨 대인관계가 피곤해 일본으로 온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난 10년간 일본에서 살면서 느꼈던 바를 주저리 적어보았다. 그동안 일본 내에서 한국의 위상도 올라가다 보니 이전보다 살기 편해졌다. 당장 근처 마트에만 가도 한국산 수입 김치, 신라면, 불닭 볶음면 정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음식으로 인한 향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종종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일본인들도 있다. 우리 집에 택배를 배달하던 야마토운송 아저씨도 “감사합니다.”라며 서툰 한국어로 말하기도 했다.

어느덧 한국에 돌아온 지 2년 차에 접어들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일본에서 있었던 일들이 희미해지고는 한다. 그나마 사진이나 글들이 남아 있어 기억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일본에서의 10년보다 지난 한 해가 더욱 다이내믹했는지도 모른다. 평일에 여유롭게 걷던 공원, 주말에 찾았던 후지산과 강이 보이던 야마나시현 캠핑장. 그런 여유들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일본에 살아볼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무조건 추천한다. 10점 만점에 9점, 다시 살기에도 충분한 매력을 가진 곳이다.

후지산이 바라보이는 풍경
후지산을 바라보며 새해 첫날을 맞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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