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무대, 그리고 나의 초심

도쿄에 살면서 편했던 점은 집 주변으로 크고 작은 쇼핑센터들이 여럿 있었다는 점이다. 도보로 10분 이내만 해도 이토요카도, 이온몰 등 3~4층 규모로 들어서 있었다. 주말에는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고 쇼핑센터를 가고는 했다.

하루는 유니클로에서 셔츠 하나를 사고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다 야외 상설무대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대에는 여성 6인조 그룹이 나와서 춤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름 J-Pop을 꾸준히 들어왔는데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음악소리와 관객들의 박자를 맞춘 박수소리가 야외무대를 넘어 쇼핑센터 안쪽까지 울려 퍼졌다. 이러한 호응에 반응이라도 하듯 무대 위 여성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무대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느껴졌다. 땀이 송글 송글 맺힌 게 보일 정도.

무대에서 열창중인 일본 지역 아이돌
무대에서 열창중인 일본 지역 아이돌

어느덧 노래가 끝나고 한 멤버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껏 높아진 텐션이 스피커를 타고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되었다. 힘이 들었는지 숨소리도 가빠왔지만 거기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노래보다 그녀의 멘트가 더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다.

저는 20대 후반입니다.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아직도 메이저 데뷔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나이도 있어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의 호응을 들으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이크를 잡은 20대 후반 일본 아이돌 멤버
마이크를 잡은 20대 후반 일본 아이돌 멤버

일본에서 말하는 아이돌은 우리나라와 조금 이미지가 다르다.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아이돌도 있는가 하면 지역 아이돌, 언더 아이돌 등 소규모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주로 소규모 공연장에서 활동하며 팬들과의 연대를 중심으로 성장한다. 지금은 유명한 AKB48도 지역(아키하바라)에서 출발한 아이돌이다.

이날 무대를 선보인 아이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여태 보아온 무대 중에 가장 감동적인 무대였다. 나와 비슷한 나이임에도, 모두가 늦었다고 생각하는 나이임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멘트가 심금을 울렸다.

내가 일본에 온 이유도 결국 꿈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일본 여행 중 받았던 감동에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일본과의 인연. 비록 첫 직장에서 뼈아픈 실패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20대 후반에 일본 인턴으로 다시 출발했다. 그래, 어떻게든 꿈을 이루자.


인턴에서 정사원까지, 꿈을 향한 터닝포인트

당시 일본 인턴으로 했던 업무는 시장조사, 상담회 행사 보조 외에도 홈페이지 관리가 있었다. 그동안은 일본 바이어에게 한국 상품 정보를 전달할 때 PDF나 엑셀 등을 이메일로 보내거나 팩스로 보내는 식이었다.

내 이력서에 ‘홈페이지 만들기’가 취미인 것을 발견한 부장님이 온라인에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라는 미션을 주었다. 다른 인턴들도 포토샵은 다룰 줄 알았지만 HTML이며 워드프레스이며 하는 툴을 달아본 것은 내가 유일했다.

회사 홈페이지가 있었기에 툴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홍보 중인 상품 소개자료를 웹페이지로 만드는 작업을 이어갔다. 엑셀로 만들어진 자료는 보기 좋게 이미지로 만들었다. 전문적으로 웹디자인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기에 완성도가 낮았지만 사내에서 반응이 꽤 좋았다.

이때부터 기존 매체와 더불어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행사안내도 별도 페이지를 만들어 소개했으며 아직 대용량 메일 첨부가 어렵던 일본이었기에 자료를 다운 받아야 하는 부담도 덜어 줄 수 있었다.

당시 만들었던 일본어 상품 소개 페이지
당시 만들었던 일본어 상품 소개 페이지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일본 온라인 쇼핑몰인 라쿠텐(楽天市場)에 상품을 올리는 일도 겸하게 되었다. 주말이면 별도 스터디를 만들어 온라인 쇼핑몰에 대해서 공부를 이어 나갔고 세미나나 서적, 유튜브 영상도 시청했다.

이런 노력들과 크고 작은 성과물을 높게 평가했던지 부장님이 본사에 계셨던 사장님께 ‘정사원 채용’ 제안을 했던 모양이었다.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부장님 제안에 응한 지 며칠 후 본사가 있는 신주쿠로 면접을 갔다. 그때까지 사장님은 1~2번 정도밖에 만난 적이 없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사장님실 가죽 소파에 앉았다. 사장님을 비롯한 임원진 몇 사람이 함께 자리에 동석했다. 취준생일 때 준비하던 것처럼 면접준비도 해간 터였다. 긴장이 바짝 들어 있었지만 주로 인성에 대한 질문이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면접을 마무리 지었다.

면접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금방 채용 여부를 결정해서 알려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온라인 업무를 담당하는 별도 부서가 있어 그쪽으로 배속시키는 것이 맞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다이바에 있는 이 팀이 좋았다. 그래서 지금 팀이 아니라면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야속하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인턴종료까지 한 달이 남은 상황. 몇 주가 지나도 본사에서 연락이 없는 것을 보고 일본 생활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당초 계획하고 있던 영어 어학연수를 서둘러 알아보았다. 때마침 지인 중 한 명도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던 터였다.

“형민아, 축하해!”

사실상 귀국을 준비하던 그때, 결과 통보 연락이 왔다. 사장님이 내 의사를 존중해 지금 팀에 남아 있어도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가슴 깊숙이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꿈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한편, 첫 취업 전후로 겪었던 말 못 할 고생들을 한 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실패는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일본에서 평생 내 꿈을 펼쳐보리라. 그렇게 나의 일본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일본 캔맥주와 피자
입사 확정 축하기념 소소한 축하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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