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때 윤선생 영어교실 등 학습지를 했었지만 영 재미가 없었다. 중, 고등학교때는 매주 같이 있는 단어시험에 진절머리가 났다. 두껍고 재미없는 성문종합영어는 수학의 정석만큼이나 싫었다.
영어 대신 선택한 외국어는 일본어. 일본 애니, 드라마, 제이팝에 관심이 많았고 일본 홈스테이를 다녀오면서 일본어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대학 전공도 일본어 관련이었다. 영어는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놓아 버렸다.
대학 졸업하고 시작한 토익 공부
남들 토익 공부할때 전공따라 일본어 시험만 주구장장 공부 했다. 어차피 일본 영업으로 취업할거니 영어는 필요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가고자 하는 회사들은 모두 ‘토익’성적을 요구했다. 그나마 운이 좋게 일본어 성적만으로 서류합격한 회사 면접에서 발목이 잡히고 만다.
“아무리 일본 해외영업이라지만 무역서류도 봐야하고 기본적인 영어 실력은 필요한데, 점수가 전혀 없네요?”
모범 답안을 얘기했다. 입사전후로 영어 공부 해서 업무에 지장 없도록 하겠다고. 그 말을 순수하게 받아 주는 면접관은 없었다. 결국 첫 면접에서 낙방했다. 그 이후 서류 전형 최소 기준인 토익 점수 800대를 넘기기 전에 이력서를 넣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본격적인 공부에 들어갔다.
점수 달성을 빠르게 하는 방법은 학원에 다니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는 곳이 지방 소도시라서 근처에 토익학원 하나 없었다. 인강이라도 들어볼까 했지만 매달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대학까지 졸업하고 강의료까지 집에 손을 벌리는게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독학을 결심했다.
토익 독학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남들 다 사는 ‘해커스 토익’ 교재를 사는 일이었다. 해커스 토익 리딩(RC), 리스닝(LC), 기출 보카(Voca) 3종 세트를 준비 했다. 우선 문법부터 익혀야겠다는 생각에 리딩 책부터 펼쳤다.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 수식어… 그렇게 싫어하던 영문법을 다시 공부하게 되다니.

영어와 담을 쌓고 지낸지 6년 가까이 되다보니 모든게 새로웠다. 리딩책을 펼치고 1형식부터 5형식 개념부터 다시 익혔다. 부정사며, 동명사며, 도치며. 복잡한 문법 용어가 나올 때면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참고 견딜 수 밖에 없었다. 개념설명이 자세히 되어있지 않아 도서관에서 문법책을 빌려와 내용을 보충했다.
리스닝은 어차피 듣기 실력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스크립트를 보면서 공부 했다. 대략적인 문제 유형을 익혔고 문제지를 해석하는 연습을 했다. 듣기라기 보다 독해 공부에 가까웠다. 인토네이션이나 익히고자
매일 같이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토익 공부만 했다. 눈 뜨면 시작해서 잠들기 전까지 RC, LC 그리고 VOCA 공부를 1:1:1 비율로 공부 했다. 대학까지 졸업하고 자발적 백수가 된 상황. 하루라도 빨리 목표를 달성해야 했다. 그래서 모든 인간관계며 취미를 포기하고 오로지 토익에만 매달렸다.
토익 500 ~ 600점대
토익 실전 감각을 익히기 위해 실전 모의고사집도 풀었다. 시간내에 푸는 연습 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험이기에 타이머도 세팅해 두었다. 정신 없이 LC를 풀고 다음으로 RC로 넘어 갔다. 토익공부하며 읽어 보았던 수기에서 처럼 LC는 신속하게 지문을 읽어두고, 정답을 체크하면 방송이 나오더라도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RC에서는 문제를 먼저 읽고 본문에서 정답 찾고 신속히 넘어가기. 마킹 후 시간이 남으면 아리쏭한 문제 다시 풀기.
시험은 매달 보기로 했다. 근처에 고시장이 없어 시험을 보려면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오전 9시까지 가려면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시험비에 왕복 교통비까지 비용 부담이 되었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그저 이 싸움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수 밖에.
긴장되는 마음으로 치룬 첫 시험. 재미삼아 치렀던 대학 교내 모의고사에서는 400점대 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한달 가량을 토익에만 올인했으니 600점대는 나오지 않을까 기대 했다. 비록 시간안배에는 실패했지만 공부한 보람이 있기를 바랬다. 그리고부터 약 열흘 후 성적이 발표되었다.
‘540점’
실망스러운 점수가 나왔다. 첫 달이니 시험을 응시했다는 대 의의를 두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지난달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눈 뜨면 토익 공부로 시작해서 밤 12시가 될때까지 책을 펼쳤다. 이번에는 전달보다 나아지겠지. 자주 틀리는 유형은 분석해서 오답노트도 만들었다. 그리고 두번째 시험을 치렀다.
‘580점’
뭐가 잘못 된 것일까. 두 달을 온전히 토익에만 갈아 넣었는데 첫달보다 고작 40점 오르고 말았다. 시험지는 회수해 가니 어떤걸 틀렸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토익 성적표 하단에 나와 있는 영역별 평균 추정치를 보고 약점을 대략적으로 확인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세번째달은 아버지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병실에서 간병하며 공부 해야 했다. 병실내 빈자리가 있을 때는 그리로 가서 책을 펼쳤다.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을 때는 아버지 자리와 그 밑 간이침대에서 걸터 앉아 책을 펼치고는 했다. 집에서 했던 것 만큼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지만 별 수 없었다. 그리고 치르게 된 세번째 시험.
‘620점’
미약하기는 했지만 점수가 올랐다. 첫달에 기대했던 600점대에 이제서야 도달 했다. 잠시나마 500점대를 탈출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목표점수까지는 아직 200점 가까이 더 올려야 했다. 병실에서 한달정도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는 공부 방향을 실전형으로 바꿨다. 인터넷 무료강의를 이용했다.

당시 유명한 토익 학원들이 무료 모의고사 해설 강의를 제공 하고 있었다. 물불 안가리고 닥치는대로 무료 강의를 들었다. 모의고사를 모두 프린트 했고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주는 내용, 구두로 설명하는 내용 토씨 하나 빼놓치 않고 필기 했다. 그 중 가장 잘 맞았던 것은 ‘정재현 선생님’ 강의 였다. 사투리가 있는 독특한 억양이 매력적이었다고 할까. 한 강의당 최소 10번 이상은 돌려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험.
‘680점’
토익 700을 넘어 800이 되기까지
미약하지만 성장 했다. 첫달에 비하면 100점 이상 올랐다. 토익공부를 하다 지칠때면 수기를 읽고는 했다. 빠른 경우는 2~3달만에 900점대를 돌파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 아직 나는 네 달째니까 괜찮아. 곧 할 수 있을거야라고 다독였다. 그리고 치룬 다섯번째 시험.
‘720점’
점수는 오르고 있었지만 LC, RC 모두 정체 상태였다. 특히 RC는 마지막 파트인 독해에서 늘 시간이 모자라 애를 먹었다. 이 문턱만 넘으면 800점대가 가능할텐데 아무리해도 늘지 않았다. 그러다 토익 고득점을 가지고 있던 후배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그는 LC가 점수 올리기 쉽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영어 독해도 잘 안되는데 듣기가 잘 될까. 반신반의 했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이때부터 공부 비중을 듣기에 7할을 쏟았다. 지문에서부터 스크립트까지 딸딸 외웠다. 얼마뒤부터 반복 되는 패턴들이 귀에 들리기 시작 했다. 다 듣지 않아도, 또는 반전이 있어도 대략적인 답이 보였다. 그리고 치룬 여섯번째 시험.
‘800점’
됐다! 사실 이날 시험에서 RC 독해 지문을 다 못풀고 찍고 나왔다. 당연히 800점대는 물건너 갔을 터. 집에 돌아오자마자 토익 책을 펼치고 분노의 칼을 갈며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다시 열흘 후 성적 발표날. 기적이 일어났다. LC 435점, RC365점으로 정확히 800점. 후배의 조언 그대로 LC에서 고득점을 한 덕분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성적표를 출력했다. 그리고 책장에 있던 토익책을 모조리 버렸다. 졸업이다! 이후 본격적인 취업전선에 돌입 했다. 토익점수가 있으니 지원 할 수 있는 회사가 늘어 났다. 밤낮없이 이력서를 제출했다. 따끈따근한 토익성적과 함께.
그로부터 두 달후 국내 모 상장사 해외영업팀 일본영업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면접때 토익 800점 만들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설명했었는데 그게 좋아보였나 보다. 훗날, 면접관이었던 이사님으로부터 들었던 얘기다. 비록 얼마뒤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지만.
이미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사회에 나와보니 토익보다 더 중요한건 영어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지다. 물론 토익 900점대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영어로 메일 쓰고, 대화하고 실제로 써먹을 수 있냐가 점수보다 더 중요하다. 영어 정복의 길은 아직 멀었지만 토익 공부를 하고 나서 영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부디 이 글을 읽으신 분들 모두 토익 졸업하고 영어에서도 자유로워 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