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이용해 서울 홍대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상영 중인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보았다. 정확히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후지노 토모아키가 조현병에 걸린 친누나,그를 돌보는 부모님의 모습을 20년 동안 촬영한 기록물이다.
러닝타임은 101분으로 일본에서는 2024년 개봉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 늦은 2026년 7월 개봉되었다. 조현병이 무언지, 그를 돌보는 가족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담은 영화일까?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주요 줄거리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누나가 조현병에 걸린 이유를 조명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조현병이란 어떤 병인가를 설명하는 것도 목적이 아니다’라고 전제를 붙이고 시작한다.
조현병.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다. 조현병은 환각, 망상, 행동이상 등 정신증이 반년 이상 지속되는 사고장애라고 한다. 과거에는 정신분열증이라고 불리었으나 부정적인 인식을 조장할 수 있어 2011년 개정을 통해 ‘조현병’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통합실조증(統合失調症:とうごうしっちょうしょう)라고 불린다.
조현병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조현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머리말에 조금은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검은색 화면에서 젊은 여성이 괴성을 지르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아마도 조현병 당사자인 누나인 걸로 추정된다.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1966년 태어난 감독, 후지노 토모아키. 의학 연구자인 부모, 그리고 8살 연상인 누나 마사코가 있었다. 총명하기만 했던 누나는 의대 재학 중이던 24살, 갑자기 조현병 증상을 보였다.
아버지는 누나를 정신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온다. 이후로 누나는 세상과 단절된 채 집안에서만 지내게 된다. 특별한 치료랄 게 없이 부모의 보호 아래 사실상 방치된다.
동생인 후지노 감독은 피를 보는게 무서워 의학이 아닌 다른 길을 택했고 홋카이도대학 졸업 후 요코하마 주택 메이커 영업사원으로 활동하다 1995년도에 영화학교에 입학한다. 이 영화는 그가 집에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귀성한, 2001년부터 영상으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해가 지날수록 누나의 조현병 증상은 심각해지지만 부모님은 그저 괜찮다고 한다. 의학 연구자라는 자부심이 있어서 인지 몰라도 우리가 이 병에 대해서 가장 잘 안다며 집 안에서만 지내게 한다.

그러다 누나가 나 홀로 미국에 갔던 일을 계기로 현관에 자물쇠를 채우게 되면서 완전히 세상과는 단절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조현병 발병으로부터 20년이 지났고 중년이었던 부모님도 어느덧 노년을 맞이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얼마뒤 숨을 거둔다.
아버지 혼자 누나를 돌보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누나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그런데 입원한 지 3개월 만에 치료가 끝나 퇴원한다. 그 이후 누나는 거의 정상인으로 돌아왔다. 이전처럼 소리 지르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이는 일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기대가 될 무렵 암 4기 진단을 받는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하며 아버지 옆을 지키고 있던 누나는 병상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90세를 넘은 듯한 노년의 아버지는 딸의 장례식에서 딸과의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딸과 함께 작성 중이던 논문이 있었다며 자신이 죽기 전에 공동저자로 발표하는 게 목표라는 포부를 밝힌다.
영화의 마지막은 아버지와의 인터뷰로 끝을 맺는다. 당시 의료 수준으로는 만족할만한 치료를 기대할 수 없어서 누이를 병원에 안 보낸 것인지? 가족 중에 조현병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창피해서 숨긴 것인지 등.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예고편 영상
정말 어떻게 해야 했을까? 가족, 그리고 인생
이 영화는 조현병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조현병을 둘러싼 가족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의학 연구자로 만난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누나(59년생). 1960년대에 가족이 독일로 유학을 가는 등 유복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다. 이후 일본에 돌아와 둘째인 토모아키가 태어난다.
부모는 아이들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의학자의 길을 걷길 원했다. 일본은 집안 대대로 직업을 대물림하는 문화가 있어서 그런 걸까. 누나는 그런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 의대에 진학했지만 결국 국가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처음부터 원치 않았던 일(삶)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스트레스가 겹쳐 결국 조현병으로 발현된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완고한(고지식한) 부모는 자신들의 의학적 재능을 믿은 나머지 딸의 병을 제일 잘 아는 건 본인들이라고 자부한다. 병원에서도 우리 아이는 멀쩡하다고 했다며. 누나가 조현병 증상을 보일 때 대응책이라고 건네준 건 고작 ‘설탕물’이었다.
미래가 총망했던 20대 여성은 세상과 단절되기 시작하면서 모습이 변해갔다. 단정 했던 얼굴은 신경질 가득하게 바뀌었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옷은 그저 걸치는 용도. 하루 종일 ‘멍’ 때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흰머리는 늘어나고 움직임이 없으니 몸에 살도 붙었다. 누나가 늘어가는 사이 부모님도 (감독도) 늙어갔다.

어머니가 돌아가고 나서 병원 치료 후 가까스로 정상인에 가까운 삶을 되찾은 누나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지역 불꽃놀이 관람, 복권 구매 같은 게 전부였다. 이미 그의 인생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해있었다. 그마저도 오래갔으면 좋으련만. 암이라니.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장면은 누나의 장례식. 딸의 죽음 앞에서도 ‘논문 공동저자’를 추도문으로 말하는 노년의 아버지 모습에서, 아직도 부모가 만들고 싶은 딸의 모습을 내려놓지 못한 것 같은 인상이었다.
젊은 시절의 부모님 모습에서 시작해 아내와 딸의 초상화가 걸린 벽면이 비추어지고 이제는 기력도 없어 보이는 아버지 (인터뷰) 장면으로 끝난다. 한 가족의 일대기가 담긴 영화 속에서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부모가 원하는 모습대로 자식이 인생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옳은 것인가. 만약 부모가 의대를 고집하지 않고 딸이 원하는 방향대로 살아가게 두었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부모가 고집을 내려두고 조현병을 제때 치료하는 길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후지노 마사코의 인생은 다른 국면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저 방 안에서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는 사람에게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영화의 제목, 어떻게 헤야 했을까?(どうすればよかったか)는 이런 복잡한 심정을 담은 것이 아닐까. 어쩌면 감독 본인도 가족으로서 영상을 남기는 것 외에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만약 당신이라면 우리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하는 걸지도.
나는 어떤 가정을 만들어 나가야 하고, 나갈 수 있을까. 과연 그게 올바른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았고 살게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죽는 그 순간, 웃으며 V 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쿠키영상 속 누나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가족,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 영화였다. 아쉽게도 OTT로는 상영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DVD나 유료 영상집으로라도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다.
추가: KT&G 상상마당 시네마 후기
상상마당에서는 청춘 공연이나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 정도로 알고 있었다. 설마 극장이 있을 줄이야! 일반적인 극장은 아니고 독립 / 예술영화가 주로 상영된다.
이번에 보기로 한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도 상영작으로 올라왔다. 홍대역 9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1층 매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수 있지만 계단을 택했다.

좁은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서 내려가면 극장 입구에 도착한다. 9월 2일부터는 [제18회 대단한 단편영화제]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가끔은 대형 극장대신 이런 독립 영화들을 보는 시간도 갖아야겠다.
상상마당 시네마 내부는 소극장답게 작고 아담 했다. 상영관은 1관 하나로 영화 시작 15분 전에나 입실이 가능하다. 화장실과 작은 대기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예매한 티켓은 입구에 마련된 티켓 발권기를 통해서 출력하면 된다. 생년월일과 휴대폰번호를 조회하면 된다. 현장발권도 가능한데 예매하는 게 여러모로 안전하다.
영화를 기다리며 다른 상영작 정보들을 살펴보았다. 월요일 휴관을 제외하면 매일 3편 정도의 영화를 상영 중이다. 홍대에서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을 때 들러보기 좋을 것 같다.